[칼럼] 고대 점성술에 대하여

제1장 역사적 배경 _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그리스

1. 점성술이 시작된 것이 메소포타미아(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사이의 지역인지 이집트인지에 대해서, 고대부터 의견이 분분해왔다.

원래 ‘칼데아人’이라는 말은 페르시아의 키프로스 왕조 이전의 바빌로니아를 통치하던 최후의 왕조가 속해있던 민족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로마시대에 점성술사를 의미하는 말이 되었다.

한편 헤로도투스 시대로부터, 이집트를 ‘지혜의 저장고’로 떠받들게 되면서, 점성술사들은 자기들의 근원지를 이집트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점성술사들의 이러한 놀라운 선언은 이 책의 자료에도 반영돼 있다.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의 문명이 비교적 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따라서 아주 오래 전부터 있어온 점성술이 자기들의 문명보다 훨씬 오래된 문명 속에서 발견, 발전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플리니우스(AD 1세기)는, 바빌로니아에서 그리스로 점성술을 전래해준 펠로소스의 주장이라면서, 칼데아에서는 49만년 전부터 관측이 이뤄졌다고 하였다. 그 1세기 전, 키케로는 자신이 들은 ‘47만’이라는 숫자를 믿을 수 없다고 했다. 기원전 1세기에 데오도로스는 “칼데아인은 이집트에서 온 이민자들이었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예언력이 있는 그들의 ‘별의 과학’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면서, 역시 ‘47만3000년’이라는 숫자를 언급(두려워하며)했다.

이집트가 점성술의 발상지라고 생각한 다른 사람들 또한, 프타하(고대 이집트 죽음의 신)로부터 알렉산드로스까지, 4만 8863년 동안 일식 373번, 월식 832번이 관측됐다고 주장했다.

19세기 학자들은 확고한 증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상호 영향에 대한 해묵은 논쟁을 부활시켰다.

19세기 말 ‘pan-바빌로니아人’ 이라는 집단의 학자들은 성서를 포함해 ‘고대의 지혜’ 형식 대부분은 메소포타미아에서 기원한 것이었다고 주장해 광범한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당연히 강한 반발도 초래, 그 반동으로, 점성술이나 천문학 연구자들은 이집트의 역할을 필요 이상으로 강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지적 업적을, 어떤 하나의 문화가 아니라 다른 문화의 영향이라고 간주하는 데는 중요한 이데올로기적 부하가 따르게 된다. (예를 들어 ‘검은 아테네’)

점성술을 빛나는 그리스의 유산 중 하나라고 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리스의 영향력에 대해 높게 평가하는 측면이 있다. ‘조잡한 占’에서 우주와 지구의 관계에 대한 수준 높은 탐구로 전환시켰으며, 적어도 근대 초기까지 과학으로서의 위신을 유지한 것은, 그리스의 천문학과 과학적 방법 덕분이라는 생각 말이다. 여기에는 여전히 문화적 고정관념이 작동하고 있다.

점성술 발전의 역사적 장면을 묘사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다양한 문명들의 기여와 관련한 현실적 문제에 맞붙지 않을 수 없다. 이때, 지금까지 너무나 자주 해왔듯이, 증거의 갭을 메우기 위해 민족 특유의 심적(정신적) 경향을 일반화 해버린다면, 그것은 현명한 방법이 아닐 것이다.     

2. 초기 메소포타미아의 증거

실제로 가장 오래된 증거는 메소포타미아 것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랜 텍스트는 설형문자로 쓰여져 있다. 설형문자를 발명한 것은 수메르인이다. 그들은 적어도 기원전 4000년대부터 이 지역을 지배했다. 지배권은 아카드인이 이어받았으며, 그들이 우세하게 된 것은 기원전 3000년대 후반. 이들은 자신들의 언어를 표현할 기록법을 발명해 사용했다.

수메르인들이 별에 기초한 점을 쳤음을 보여주는 (현존하는) 첫 실마리는 기원전 2122년부터 2102년까지 Lagash를 지배했던 Gudea왕에 관한 것이다. 이 기록에 따르면, 왕은 꿈 속에서 신전을 건설하라는 명을 받았다. 그는 신전 건설 예정지에서 땅을 고르고 있는 여인을 만난다. 그 여자는 별자리를 기록한 점토판을 보여주었다. 여신이 변신한 것이었던 그 여자는 星辰이 명하는 곳에 신전을

짓기 위해 별자리 표를 연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알려졌다.

별의 이름과 관련한 가장 초기의 리스트는 기원전 1800년경 고바빌로니아어로 쓰여진 <밤의 신들을 향한 기도>에서 볼 수 있다. 이 기록에서는, 이 별들이 곧 지상의 일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신들이라고 생각한다.       

밤의 신들이여, 빛을 발하는 불의 별이여, 영웅적인 일라(?)여, 활의 별이여, 멍에의 별이여, 쉬타달(?)이여, 무슈스(?) 별이여, 짐마차 별이여, 산양의 별이여, 뱀의 별이여, 어떻게든 나의 도움이 되시며, 내가 축복한 이 어린양의 내장에 길조를 보여 주소서. (2차 문헌 Dossin 1935 :279) 

어린양의 내장은 공희(供犧)와 그것에 관련된 점의 형식, 즉 내장을 살펴보고 점을 치는 장복(臟卜)과 관계돼 있다. 이것은 기원전 2000년대에 신들의 고지를 받는 지배적인 방법이었다. 천체현상에 기초한 점이 장복(臟卜)에 비해 2차적 지위에 있었던 사실은 유프라테스 중류의 마리에서 발견된 한 점쟁이의 편지에 나타난다. 이 편지는 함무라비시대(기원전 1980년경)로 쓰여진 것인데, 편지를 쓴 사람은 월식 현상을 보고하고 그것이 나쁜 징조는 아니라고 추측한다. 특히 월식을 그 자체로 해석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장복을 사용해 점의 결과를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고바빌로니아시대(함무라비왕조 전반기쯤)의 천체의 징조에 관한 소편람이 발견됐으며, 그중 몇 개에는 <에누마 아누 엔릴>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징조의 집대성’이 포함돼 있다. 그 예는 다음과 같다.

神 ‘달’의 모습이 없어지는 날, 만일 ‘돌연 없어지지 않고’ 공중에 유유히 떠있게 된다면, 그 지방에 한발(旱魃)과 기근이 든다.    

니푸르에서 출토된 카시트왕조(기원전 1500년~1250년)의 텍스트도 있는데, 천궁도를 작성하고자 한 최초의 시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신 ‘별’이 다른 신으로부터 얼마만큼 떨어져 자신의 위치에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8개 별자리 사이의 거리를 측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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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국의 인류학자 Tamsyn Barton이 지은 <고대점성술, 그 역사와 사회적 기능>이라는 책을 번역한 것입니다. 점성학이 어디서 왜 연유했는지, 그 사회적 기능은 무엇이었으며, 언제 어떻게 몰락의 길을 걸었는지 살펴보는 책입니다.

– 까페 아르고나우트에서, S.S. 칼럼 발췌 (정은주, 좋은글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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