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원소란 무엇인가

<헤르메스학 입문>을 선택하신 분들께 이 책은 ‘원소 지배’에 관한 책이라는 이야기를 하면 많은 분들이 당혹스러워 합니다. 일반 상식으로 생각할 때, ‘원소 지배’란 암호 같은 말이니까요. 그렇지 않나요? 일단 ‘원소’라는 단어에서 걸립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것을 어슴프레 떠올려보면, 물질을 구성하고 있는 최소 단위의 입자가 원자이고, 그 원자를 구성하는 순수 속성의 단위가 원소 아닙니까? 그것을 지배한다니? 온갖 장비와 인력을 동원해 물질의 최소 단위를 연구하는 과학이 버젓이 있는데, 가만히 앉아 원소를 이해하고 그것도 완전히 지배하는 것이 목표라니?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들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지요.

어떤 회원님이 게시글에 이런 요지의 글을 남겼던 기억이 있습니다.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소를 언급하면서, 옛날 사람들이 뭘 몰라서 세계가 4원소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발견한 원소의 종류가 얼마나 많으냐고 냉소조로 이야기했다는 겁니다. 따지고 싶었지만 참았다는 얘기였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야기한 4원소를 화학 시간에 배운 원소와 같은 단어라고 생각했다는 이야기인데요. 설마 그 분이 철학 교수님이거나 사회과 선생님은 아니시겠지요?

아무튼 우리가 상식 선에서 또는 학교에서 배운 ‘원소’는 위에 이야기한 정도입니다. 이공계통 전공자들은 훨씬 많은 지식을 갖고 있겠지요. 그 지식의 양이 쌓이면 어떻게 될까요? 의외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현대 물리학이나 천문학 같은 과학을 심도 있게 공부한 분들, 특히 탐구의 최전선에 있는 과학자들이 ‘원소’라는 형이상학적 개념을 일반인보다 훨씬 더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무슨 이야기냐구요?

추상적 사고를 할 줄 아는 동물, 인간이 이 세계의 근원을 탐구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만, 그 중 한 갈래인 과학 분야는 엄청난 수준에 이르렀지요. 스티븐 호킹이 대중을 상대로 쓴 책들(전공서라면 암호문과 다를 바 없으니까요)을 접할 때마다, “아, 결국 궁극에 이르면 하나로 통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자, 본론으로 들어가 봅시다. 우리가 이제 이야기하려고 하는 ‘원소’라는 개념은 바로 이렇게 세계의 근원을 탐구하면서 얻게 되는 결과물입니다. 근대 이후의 과학에서 해온 것처럼, 눈에 보이는 물질을 가장 작은 단위까지 쪼개고 쪼개 보거나, 어마어마하게 큰 단위로 넓히고 넓혀 보는 과정도 있을 수 있겠지요.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최소 단위를 쪼개고 쪼개면 무엇이 남을까요? 순수한 추상적 개념, 즉 형이상학적 개념이 시작됩니다. 이미 과학 발전 단계에서 입증이 된 것처럼 말입니다. 어마어마하게 큰 단위로 인식을 넓혀가다 보면, 역시 순수한 추상적 개념, 즉 형이상학적 개념이 시작됩니다.

사실 우리는 거대한 방사선 가속기나 허블 망원경이 없어도 이 작업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바로 형이상학적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났기 때문입니다.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이야기하는 ‘부조리’의 순간, 우리는 뻔한 일상성의 세계에서 벗어나 근원까지 맞닿아 있는 극한의 작음과 큼으로 비약할 수 있는 것이지요. 멋진 일 아닙니까?

이렇게 하여, 우리는 근원이자 본질인 최소 단위에 이르게 됩니다. 무엇이냐구요? 바로 에너지!=힘!입니다. <헤르메스학 입문>에서 바르돈이 이야기하고 있는 ‘원소’는 바로 이것입니다. 그것도 운동하는 에너지=힘입니다. 
이것이 원소를 이해하는 첫 번째 열쇠입니다.

바르돈은 눈에 보이는 세계와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모든 우주가 바로 이 원소의 영향력 덕분에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헤르메스학 입문> 34쪽과 35쪽을 볼까요? 우리 인간을 비롯해 눈에 보이는 존재와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모든 존재가 원소의 영향력으로 생겨나고 생존하며 사라진다고 말합니다. 우리 인간이 인격화시켜 놓은 수많은 신들까지도 말입니다. 그러니 “원소야말로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인 것이지요.

첫 번째 열쇠를 거머쥐기 위해서는 앞에서 장황하게 설명한, 그래서 가장 근원적 최소 단위는 에너지=힘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면 일상의 틈, 즉 부조리를 경험한 우리는 그 에너지가 어떻게 왜 세계를 창조하고 유지하며 파괴시키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선, 에너지=힘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물리학 분야에 무식한 사람으로서 위험한 단정이지만, 에너지=힘은 파동입니다. 운동성입니다. 아니, 입자라구요? 헤르메스학을 공부하다 보면, 에너지의 파장, 즉 운동성은 입자의 형태로 존재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운동성이 일정한 공간에 놓이면, (눈에 보이든 그렇지 않든) 그 운동성을 담는 틀, 헤르메스학의 용어로 말하자면 흙 원소이자 4극 자석이 되기 때문입니다. 4극 자석에 대해서는 제4강에서 자세하게 생각해 보기로 하고, 여기서는 이 정도로 넘어 갑시다.

아, 한 가지만 언급해야겠어요. 바로 이 때문에 우리는 마법 작업을 할 때 진동 발성을 하는 것이고, 그 진동이 원하는 차원의 원하는 에너지 파동과 일치해야만, 원하는 에너지를 끌어올 수 있답니다.

아무튼 프란츠 바르돈은 원소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시키기 위해 힌두 체계의 타트바와 요드헤바우헤(YHVH)라는 신의 이름, 즉 테트라그람마톤을 꺼내 들었습니다. 33쪽에 보면, “가장 오래된 동양의 경전에서는 원소를 타트바라 부른다.” 라고 말합니다. 타트바는 흐름, 즉 운동을 의미합니다. 에너지의 운동성이 곧 원소라는 이야기지요.

그럼 ‘요드헤바우헤’ =테트라그람마톤은 무엇인가요? 테트라그람마톤은 가장 순수한 추상성이며 형이상학적 개념이자, 근원적 실재이며 본질입니다. 이것이 바로 원소입니다.

결국 어려운 이야기를 하게 되었군요. 이러니, 원소를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지금은 일단 두 가지 사항만 염두에 두고 넘어가도록 하지요.

첫째, 원소란 물질의 최소 단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물질뿐 아니라, 눈에 보이는 세계와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모든 세계 및 존재의 창조-유지-파괴를 가능하게 하는 바로 그것, 즉 에너지의 운동성이자 흐름이 바로 원소라는 이야기입니다.

둘째, 에너지의 운동, 즉 흐름(타트바)은 팽창의 속성(+)과 수축의 속성(-)을 띤다는 것.

이 속성을 각각 불 원소 원리, 물 원소 원리라고 부르기로 하는 겁니다. 그런데 두 개의 양립하는 운동하는 힘은 서로 영향력을 주고 받을 수가 없겠지요. 여기서 중간자, 매개자가 필요하게 됩니다. 두 힘이 영향을 주고받는 지대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매개하는 속성(+/-) 즉 공기 원소 원리입니다. 이러한 에너지의 운동 결과, 이 운동하는 에너지 주변에는 통합된 에너지(±)가 감싸게 되며, 따라서 어떤 공간을 차지하는 실재가 됩니다. 운동을 응축시켜 안에 잡아두는 틀이 생기고 따라서 그 틀에 따라 어떤 양태를 띤 존재가 생겨난다는 말이에요. (그렇다고 눈에 보인다는 말은 아닙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 강의에서 자세하게 살펴 볼 것입니다.

자, 그럼 왜 이러한 에너지의 운동이 시작된 걸까요?

이 문제를 가장 잘 설명하는 상징물이 바로 카발라입니다. 테트라그람마톤=요드헤바우헤=아카샤는 에너지=힘의 네 가지 운동 속성이 생겨난 근원으로, 이 속성 모두를 함축한 채 드러나지 않은 어떤 힘입니다. 이 힘에 대해서는 제3강에서 조금 더 살펴 보겠습니다.

자, 이번 칼럼은 여기까지입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원소란 에너지의 운동성이며 그 운동으로 만들어지는 존재 양태를 가리킨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내 것으로 만들면 성공입니다.


다음 칼럼에는 어쩔 수 없이 카발라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군요. 여러분은 <헤르메스학 입문> 35쪽부터 38쪽 (공기원소)까지 꼼꼼하게 예습하시길 바랍니다.



– 까페 아르고나우트에서, ‘오컬트마법강좌’ 칼럼 발췌 (정은주, 좋은글방 대표)



본 칼럼은 네이버 까페 ‘아르고나우트’에서 연재된 칼럼으로써, 오컬트를 공부하고 수행하는 여러분을 위해 준비된 것입니다. 게시된 글을 퍼갈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셔야 합니다. 원문을 그대로 또는 수정 및 가감하여 강의 및 저작에 이용하는 경우 법적으로 대응할 수 있음을 분명히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