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아카샤 그리고 4원소


탈레스와 헤라클레이토스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려 합니다. 둘 다 그리스 철학자라는 사실은 알고 계시지요? 기원전 6세기 전후를 살았던 인물들입니다. 학교에서 객관식 시험 답안을 쓰기 위해, 만물의 근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탈레스는 물, 헤라클레이토스는 불이라고 했다는 식으로 단순 암기했다면, 그 기억은 지우는 것이 좋겠습니다.

지난 강의에서도 언뜻 비췄지만, 고대 그리스 철학은 과학적 사고를 할 수 없었던 오래 전 지구인의 케케묵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적어도 헤르메스학에 관심을 갖고 있는 우리는 그 가치를 충분히 알아채야 합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이집트의 신비주의 사상(헤르메스학)을 그대로 전수받았으며, 사실은 전수 정도가 아니라 이집트로 달려가 단체에 소속된 채 광분하여 배우고 실천하며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인류의 문명에 그 구체적 내용을 각인시킨 ‘마법사들’입니다.

그럴 리가 있느냐구요? 확인해 봅시다.

탈레스는 기록으로 남아 있는 역사 속에서 만물의 기원, 결코 변하거나 사라지지 않는 본질이자 근원, 제1원인, 즉 아르케Arche는 무엇이냐고 질문한 최초의 철학자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인간 중 최초일 수는 없겠지만, 이 질문에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탐구로 답을 내놓은 ‘철학자’임은 분명합니다. 그는 허무맹랑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정확한 관측과 계산으로 일식과 월식을 예측한 천문학자였고, 수학과 논리학에 능통한 수학자이자 실생활에 그것을 적용한 기술자였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세계 모든 현상의 근원이자 본질을 캐물었습니다. (사실은 깨달아 알고 있는 사실을 논리적으로 풀어 설명할 방법을 찾고 있었겠지요.) 그는 답하길, ‘물’이라고 했습니다.

고민하고 관찰하며 명상하다가 그 근원적 실체에 ‘이름’을 붙이는 그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이렇게 하여 만물을 잉태시키며 생명을 부여하는 ‘음(-)’에 ‘물’이라는 ‘딱지’가 붙여졌습니다. 그가 어떤 이유로 ‘물’이라는 이름을 붙였는지 밝혀놓은 저서는 없지만, 후대의 제자들은 그 물은 ‘습기’의 다른 이름이라고 했지요. 이 습기가 존재해야 온기도 가능하다고 보았으니, 그에게는 만물의 근원이 물인 셈이지요. 어쨌든 그는 수축하는 에너지, 습기로 존재하는 에너지에게 ‘물’이라는 형상을 부여했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그 형상의 장애를 넘어서 수축하는 에너지의 실체와 만나야 하게 되었지만 말입니다.

탈레스의 바통을 이어받은 헤라클레이토스는 ‘불’에 주목했습니다. 불꽃의 타오름과 사그라짐(오르막과 내리막)을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며 변화를 지배하는 ‘능동적 에너지’에 비유한 것이지요. ‘양(+)’은 이렇게 하여 ‘불’이라는 ‘딱지’가 붙여졌습니다. 그는 덧붙이기를, “불의 죽음에서 공기가 생겨난다”고 말합니다. <양(+)의 양(+)>인 불이, 죽음 즉 음(-)의 속성을 띠고 운동할 때, <양(+)의 음(-)> 즉 공기가 생겨난다는 말이지요. 헤라클레이토스는 공기의 죽음(-)이 물을, 물의 죽음이 흙을 만든다고도 했습니다. 결국, 그에게 만물의 근원은 불인 셈입니다. 어쨌든, 이렇게 하여 능동적 에너지, 뜨거움으로 존재하는 팽창의 에너지에게 그는 ‘불’이라는 형상을 부여했습니다.

여기서 둘 중 누가 맞느냐고 따져 묻는다면 곤란합니다. 진짜 근원, 무한자, 유일자, 절대자, 진짜 제1원인은 불이며 물이기 때문입니다. 탈레스와 헤라클레이토스는 그 무한자의 “모든 속성” 중 한 가지에 주목했을 뿐입니다. 탈레스가 “습기의 존재가 온기를 가능하게 한다”고 했다는 윗 줄의 언급을 기억하시죠? 헤라클레이토스는 “내리막이 곧 오르막이며, 이 둘은 같은 것”이라고 했답니다. 아르케를 찾아 고민하고 탐구하는 여러분! 모든 것의 근원은 음이며 양이고 음양이랍니다.

카발라에서는 이 ‘무한자’를 세 겹으로 나누어 <아인, 아인소프, 아인소프오르>라고 이름 붙이고 이 전체를 가리켜 음존재, “테트라그람마톤”이라고 부릅니다. 프란츠 바르돈은 <헤르메스학 입문> 이론편 39쪽에서 41쪽에 걸쳐 <카르마=인과법칙, 아카샤=에테르원리, 빛>(순서가 거꾸로 되어 있습니다만)을 구분해 무한자=절대법칙의 세 겹 속성 즉 카발라의 개념을 적용,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전체를 ‘아카샤’라는 힌두체계의 용어로 통일해 부릅니다. (그가 카발라 개념을 당연하다는 투로 마구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으시면 안됩니다.)

4원소, 즉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만들고 유지하고 소멸시키는 ‘힘의 원리’는 바로 이 무한자의 “모든 것”이 분화하여 발현(나타남)된 것입니다. 왜 분화했느냐구요? 헤라클레이토스가 주장했듯이, 대립자(양과 음)의 대립과 통일을 통해서만 ‘운동’이 가능하며, 운동이 ‘창조’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변할 수 없는 우리 세계의 ‘절대법칙’입니다.

절대법칙=무한자=아카샤는 이러한 <음-양-음양>의 원리, 즉 <수축과 팽창과 매개>, 즉 <물러남과 의지와 운동>이 하나로 통일된 4극 자석입니다. 이렇게 기묘한 에너지 상태를 상상할 수 있나요? 우리의 두뇌로는 절대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요. 그런데, 단 하나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 자신, 소우주인 내가 균형상태에 이를 때, 즉 대립하는 힘이 통일과 균형에 이르게 될 때, 미루어 추론할 수 있습니다. 아카샤, 세 겹으로 나누어 생각하는 <빛, 아카샤, 카르마>에 대해서는 그 순서가 도래할 때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하고 여기서 멈춥시다.

지난 칼럼에서 4원소는 에너지의 운동성이며 그 운동으로 만들어지는 존재 양태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기억하시죠? 왜 세계를 구성하는 근원적 실체가 ‘에너지=힘’인지, 오늘 조금 더 와 닿으시는지요?

팽창하는 운동 에너지는 우리 세계(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우리의 우주)의 물리법칙에 따르면 ‘뜨거움’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불’이라고 이름 붙여진 한 가지 기본 원리입니다. 아카샤=테트라그람마톤=무한자 안에 통합되어 있는 에너지의 한 측면이자, 능동적 에너지 원리입니다. 수축하는 운동 에너지는 우리 세계의 물리법칙에 따르면 ‘차가움’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물’이라고 이름 붙여진 한 가지 기본 원리입니다. 이 또한 아카샤 안에 통합되어 있는 에너지의 또 한 측면입니다. 수동적 에너지 원리지요.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원소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가장 근원적인 에너지의 운동 원리입니다. 헷갈리지 않도록 잠시, 이제부터, 원소를 원리로 바꿔 불러보기로 합시다.

자, 위의 두 원리(불 원리와 물 원리)가 만물의 근원이 되는, 대립하는 근원적 힘, 즉 근본 원리입니다.

그리고 공기 원리는 이 두 원리의 운동으로 ‘파생되는’ 매개적 원리입니다. 불 원리와 물 원리라는 대립자의 ‘통일’을 위해서는 서로 힘을 주고 받을 매개 지대가 필요하니까요. 헤라클레이토스는 불(+)의 죽음(-)으로 생겨나며, 물(-)의 생성(+)을 매개하는 이 원리를 가리켜 ‘공기’라고 이름을 붙였지요.

마지막으로, 대립하는 두 원리가 통일되는 운동성이 바로 흙 원리입니다. 이때 통일은 대립자의 동시적 죽음(-)으로 생겨나는 또 다른 생명 원리, 생명 에너지입니다. 4극 자석이며, 테트라그람마톤의 반영물이고, 매트릭스(아스트랄 매트릭스와 멘탈 매트릭스를 설명할 때 다시 설명하겠습니다)입니다. 흙 원리는 무한자 즉 아카샤 원리가 운동을 통해 진화한, 그러나 에너지의 파동은 띠엄띠엄해진, 또 다른 아카샤인 것입니다. (4극 자석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별도의 강의를 하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한꺼번에 모두 이해할 수 있게 설명을 드렸으면 좋겠지만, 제 능력의 한계이자, 원래 불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인식의 확장은 새벽녘 빛이 어둠을 조금씩 몰아내듯 그렇게 이루어진답니다. 조급해하지 마세요. 야금야금 알아가다가, 어느새 환해진 대낮을 맞이하게 될 것이니까요.


다음 칼럼은 4극 자석입니다. 테트라그람마톤=요드헤바우헤=아카샤는 그 다음 칼럼에서 만납시다.



– 까페 아르고나우트에서, ‘오컬트마법강좌’ 칼럼 발췌 (정은주, 좋은글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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