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세 겹의 아카샤



오늘은 <헤르메스학 입문> 39쪽부터 41쪽에 걸쳐 설명된 (빛/아카샤/카르마)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꽉 짜여진 구성에 따라 원소에 대해 설명하던 바르돈이 갑자기 빛, 아카샤, 카르마라는 항목을 차례로 집어 넣었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으셨나요?

네, 이상하게 생각하셨다면 정말 좋은 일입니다. 전체 틀을 살피면서 세부를 공부하고 있다는 증거니까요.

여기서 잠시, 이론편 전체의 골격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이론편은 크게 <1.테트라그람마톤의 위대한 신비>와 <2.인간에 대해>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이렇게 둘을 비교해 보니, 뭔가 퍼뜩 떠오르는 것이 있지요. 1은 대우주, 즉 창조와 진화의 원리에 대한 이야기며, 2는 소우주, 즉 우리의 영적 진보와 관련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대우주, 즉 창조와 진화의 원리에 대한 골격을 훑어 보았습니다. 정리해 볼까요? 눈에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원소, 즉 4가지 에너지의 운동에 따라 확장과 수렴(수축), 매개와 실재화(응고)를 거쳐 이루어졌습니다.

더 순수할수록, 그러니까 근원에 가까울수록 에너지의 진동은 진폭이 좁고 빠릅니다. 수원에서 가까운 물줄기처럼 말이죠. 수원에서 멀어질수록, 물줄기는 점점 더 넓어지고 완만하며 여러 가지가 섞이게 됩니다. 지금까지 거쳐온 모든 것을 담고 있지요. 그러나 이렇게 완만하고 이것저것 섞인 하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도시의 배경이 될 수 있습니다. (비유는 비유일 뿐! ) 에너지의 방출과 창조 및 진화의 과정은 이와 같습니다.

카발라 생명나무 위의 10세피로트가 세 개의 기둥 위에 놓여 있는 것을 생각해 보세요. 양(+)의 운동 및 존재양태, 음(-)의 운동 및 존재양태, 통합 또는 매개(±)의 운동 및 존재양태를 번갈아 거치며 진화가 이루어집니다. 그 모든 것을 담고 있는, 그러나 순수성에서 멀어진, 바로 그 물줄기가 담고 있던 것들을 퇴적시켜 땅을 이루고 다른 것들이 깃들여 살 토양을 제공하는 곳. 그것이 바로 말쿠트지요. 그러나 이 과정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의 세피라 안에서 이 똑 같은 과정이 일어나 하나의 말쿠트를 이룬 것, 그것이 바로 해당되는 하나의 세피라니까요. 잘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넘어 갑시다. 앞으로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설명할 대목이니까요.

우리는 그 모든 흐름과 멈춤의 과정을 살펴보면서, 중간중간마다 그 모든 원리의 근원에 대해 조금씩 살펴 보았습니다. 오늘은 본격적으로 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차례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그것’으로부터 비롯되었으며, ‘그것’이 지닌 속성을 차례대로 드러낸 데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그것’은 본질입니다. 흐르며 섞이고 색깔도 맛도 속도도 모두 달라도, 맨 처음 수원에서 솟아난 물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잖아요. 그것이 본질이지요.

헤르메스학에서는 이를 가리켜 아카샤라고 부릅니다. 지난 강의에서 아카샤는 힌두 체계의 용어를 빌어온 것이며, 헤르메스학에서는 에테르 원리, 카발라에서는 아인/아인소프/아인소프오르라고 부른다고 했습니다. 기억하시지요?

다시, 바르돈의 설명으로 돌아갑시다. 그는 <빛/아카샤/카르마>를 하나의 카테고리로 (보이지 않게, 슬쩍) 묶었습니다. 현현한 세계의 운동과 존재 양태를 이해한 사람이라면 이제 그 모든 것의 근원인 아카샤=테트라그람마톤의 위대한 신비를 본격적으로 더듬어볼 수 있으니까요.

빛과 카르마는 아카샤, 즉 에테르 원리, ‘절대’의 한 양상입니다. (40쪽 카르마를 보세요! 빛은 너무 뻔하므로 언급할 필요도 없었겠죠?) 여기서 저는 ‘절대’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지금 언급하는 이 세 겹의 한 묶음은 ‘절대’의 세계입니다.

한편, 이 절대적 힘에서 비롯된 에너지의 네 가지 운동 양태는 상대적입니다. 어떤 운동 양태든 양(+)과 음(-), 능동성과 수동성이라는 양극성을 띠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지요? 타자(다른 것)와의 관계성에 따라, (+)가 될 수도 (-)가 될 수도 있습니다.

다시 카발라 생명나무를 봅시다. 최초의 현현자, ‘절대성’에서 ‘상대성’으로 변화한 첫 세계는 ‘절대’로부터 비롯되었으며 그 힘을 받는다는 측면에서 (-)입니다. 그러나 그 이후로 전개되는 또 다른 운동에 대해서는 양(+)입니다. 그래서 다이온 포춘은 각 세피라의 속성을 관계에 기초해 보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볼 수 있든, 볼 수 없든, 현현한 세계는 상대적입니다. 신도 그렇습니다. 모든 문명권에서 인격화하여 만든 신과 종교는 비교 대상이 있으며, 비유가 가능하며, 상징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상대적 존재니까요.

그러나 절대는 그야말로 절대일 뿐입니다. 아인-카르마(무,음) / 아인소프-아카샤(무한,절대자) / 아인소프오르-빛(무한의 빛)은 모두 아인소프-아카샤의 어떤 양상일 뿐, 상대적 분류기준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내포한 “이 힘의 상태”를 이해하기 위해 양상 별로 나눈 것이지요. 지금 말씀 드린 이 사실을 잘 기억해야 합니다.

‘절대’를 인식할 수 없는 우리 ‘상대 중의 상대’는 까딱하면 오해와 왜곡으로 점철된 이상한 논리를 지어내게 됩니다. 현현한 모든 세계는 인격화할 수 있지만, 이 절대의 세계는 인격화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바로 그 순간 오류의 늪에 빠지게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바르돈은 아주 단순한 법칙 “뿌린 대로 거둔다”는 것 이외에 언급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다이온 포춘은 인식할 수 있을 때까지 그냥 두라고 말하지요. 그런데, 제가 무엇이라고, 이들 마스터가 이리 말한 것을 뒤집어 꺼내어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여러분이 조금이라도 인식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생각법’ 또는 ‘학습법’ 정도는 안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 그럼 딱딱한 교과서의 내용을 조금 말랑말랑하게 풀어 설명할 뿐이지만, 나름의 길 안내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1. 빛

제일 먼저 39쪽 ‘빛’을 볼까요?

“앗! 좀 전에 이 세 겹 아카샤는 ‘절대’라고 하더니, 여기서 바르돈은 어둠과의 상대성을 이야기하고 있네요!”

네, 그렇습니다. 아카샤의 빛, 무한의 빛은 모든 것을 내포하고 있는 근원적 원리가 처음 양(+)과 음(-)으로 분화한, 그러나 동전의 양면처럼 통합된 희한한 운동체입니다. 양(+)이지만 음(-)과 분리해 생각할 수 없으며, 동전의 한쪽인 음(-)과 붙어있는 것이지요. <미스티컬 카발라>가 아주 조금 더 친절합니다. <미스티컬 카발라> 61쪽을 볼까요?

“’음의 빛’이란 단지 일종의 서술 방식일 뿐, 결코 우리가 알고 있는 빛이 아니다. 물론 일반적인 빛의 특정 성질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보통 빛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이 말은 설명하고자 하는 바를 거의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 그것을 빛이라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라고 하지만, 그것의 실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60쪽 아래에 이렇게 매더스의 말을 인용합니다.

“음의 빛, 그 무한의 대양은 중심이 없다. 따라서 중심에서 시작해 밖으로 퍼져 나가는 것이 아니라 밖에서부터 시작해 중심을 향한다. 이것이 최초로 현현한 세피로트, 즉 케테르-왕관-첫 번째 세피라다.”

중심이 없기 때문에, 모든 곳 모든 것에 편재(어디나 있음)할 수 있다는 것. 이해할 수 있겠나요? 이 빛은 음(-) 즉 어둠과 분화되어 통합한, 아카샤의 운동성입니다. 이 분리 덕분에 우리의 세계(눈에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는 양극성을 띠게 되며, 끊임없는 운동성을 부여받게 됩니다. 끊임 없이 창조-유지-파괴의 수레바퀴가 돌아갈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아카샤의 빛이 지닌 운동성 덕분입니다. 이 운동성과 편재성 덕분에 우리는 ‘절대, 무한, 아카샤’의 힘과 만날 수 있습니다. 아니, 현현 즉 창조 자체가 가능합니다. 각 차원에 퍼져 있는 중심이면서 중심이 없는 이 빛을 통해, 우리는 ‘절대’를 인지하고 그 힘을 빌어 여러 가지 능력을 쓸 수 있습니다. 투시나 아스트랄 시각화 능력은 아스트랄계의 진동을 덧입은 아카샤의 빛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조금 감이 잡히나요? 빛에 대한 길 안내는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설명을 통해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터이니, 다음으로 넘어가 봅시다.

2. 아카샤 즉 에테르 원리

여기서 에테르 원리란 근대 과학에서 빛의 매질이라고 생각했던 그 ‘에테르’가 아닙니다. 불과 불 원소를 상응시켰듯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주 전체에 가득 차 어디에나 존재하는 제5의 근원적 원소를 가리켜 ‘에테르’Aether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즉 우주 공간에 퍼져 있으며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가장 근원이 되는 속성을 아카샤 즉 에테르 원리에 상응시킨 것이지요. 매질이라는 측면에서 공기 원리와 일맥상통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상응이 그 자체를 헷갈리게 만들기도 한다는 사실을, 지난 원소 강의에서 확인했지요? 그러니, 에테르라는 가상의 물질, 현대 과학에 의해 부정된 그 물질은 잠시 잊어버리기로 합시다. 그래서 바르돈은 ‘아카샤’라는 힌두 체계의 용어를 빌어온 것이지요.

아카샤는 제5의 힘이자 모든 에너지 운동의 근원입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 세계의 법칙 아래에서 가능한 에너지의 모든 운동 양태를 통합해 내포하고 있는 근원입니다. “스스로 존재하는 자”라는 성서의 구절은, 창조되지 않았으며 존재하고자 하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존재하는, 아카샤의 속성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다시 말하면, 이 세계(눈에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관통하는 절대법칙이 ‘존재 의지를 가진 힘’으로서 존재하는 최고의 순수체인 것이지요. 우리가 ‘절대자’라든가 ‘신God’이라든가 하는 이름을 붙여 일종의 존재로 규정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의지’ 때문입니다. 이 의지는 빛의 양상을 띠고 이 세계 만물을 창조하고 유지하고 파괴합니다. 대우주,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우리 세계는 아카샤의 의지에 따라 아카샤의 빛을 통해 4원소의 작용으로 아카샤 자체가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마법사 프라바토와의 인터뷰 154쪽을 참고해 보세요.)

여기서 아차 하는 순간, 그럼 이 세계 만물이 신이라고 보는 범신론이 진리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겠죠? “만물은 아카샤로부터 비롯되어 있으며, 게다가 만물의 중심에 아카샤가 깃들어 있다고 하니 그렇게 결론을 낼 수밖에.”

3. 카르마 : 인과법칙

그렇습니까? 다시 한 번 기억을 끄집어내야 합니다. 4원소와 그들의 원천인 제5원소, 즉 아카샤는 힘=에너지의 어떤 양상이라는 것을!

확장하는 에너지의 운동은 뜨거움이라는 양태로 존재합니다. 수축하는 에너지의 운동은 차가움이라는 양태로 존재합니다. 이 둘의 경계에서 상반되는 힘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게 매개하는 운동은 균형 및 중립의 양태로 존재합니다. 그리하여 통합하는 힘은 이들을 감싸 실재화하는 양태로 존재합니다.

자, 그럼 제5원소인 아카샤는 어떨까요? 수렴하며 동시에 확장하며 관통하는 이 힘=에너지는, 법칙으로서 존재합니다. 이 세계를 관통하는 절대법칙인 것이지요. 만물의 중심(눈에 보이는 사물로 국한시키지 말아야 합니다!)에 깃든 아카샤는 바로 이 세계를 관통하는 법칙으로서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생각해 보면,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요. 심지어 눈에 보이는 우리의 물질계에서도 마찬가지니까요. 물질계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물질이든 사물이든 사건이든, 우리 세계의 물리법칙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것이 물질계의 진동을 덧입은 아카샤의 양상, 즉 절대법칙입니다. 따라서 송아지나 풀잎 하나가 곧 신이라고 예배하며 두려워하는 경우보다는, 물리법칙을 연구하는 과학자가 훨씬 신의 실체에 다가가는 것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아무튼, 그렇다면, 그 절대법칙이란 것이 무엇이냐? 그것이 문제겠습니다. 바르돈은 매우 간단하게, 인과법칙이라고 말합니다. ‘원인과 결과의 법칙’. 이것이 아카샤 원리의 한 양상이며, 이 세계 전우주를 관통하는 불변의 절대법칙인 것입니다. 원소의 운동과 작용도, 진화와 진보도, 모두 이 법칙의 지배를 받습니다. 다시 힌두체계의 용어를 빌어 옵니다. 카르마!

원래 힌두체계의 카르마라는 개념은 대중적 종교나 체계 속에서 많이 변질되었고, 그래서 우리는 다시 또 하나의 덫을 피해가야 합니다. 바르돈은 말을 아꼈습니다만, 저는 조금만 펼쳐 보겠습니다. 먼저 바르돈의 말을 살펴보죠.

“이것은 최고의 법칙으로서 모든 곳에서 작동한다. 모든 행위는 어떤 원인에서 비롯되며 결과가 뒤따른다. 따라서 우리는 이 법칙을 자신의 선행에 적용하는 것은 물론, 동양 철학에서처럼 훨씬 더 깊은 데까지 그 의미를 진전시켜 생각해야 한다. 즉 선은 선한 열매를 맺으며…”

이번에는 힌두체계의 원류에 가까운 <요가경> 한 소절을 소개합니다.

“카르마의 씨앗, 즉 카르마의 잠재된 힘(삼스카라)은 과거의 생각과 행위로 인해 생긴 것이다. 카르마의 씨앗은 이번 생 또는 이후의 생에서 열매로 나타난다. 뿌리가 제거되지 않는 한 언젠가는 열매를 맺게 되어 있다.”

“근본 질료(프라크리티)의 흐름에 의해 만물의 질적 변화가 일어난다. 선행이나 악행은 질적 변화의 직접적 원인이 아니다. 그 직접적 원인은 근본 질료의 흐름이다. 물꼬를 트면 물이 저절로 논으로 흘러 들어가고 물꼬를 막으면 다른 데로 흐르는 것처럼, 선행이나 악행은 근본 질료의 흐름을 트거나 막는 역할을 할 뿐이다.”

이 두 구절을 통해 바르돈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진전시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또한 지난 강의에서 카발라 생명나무를 통해 힘의 방출과 창조 및 진화의 단계, 그리고 힘의 위계를 수직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했는데요. 그 대목을 세 겹 아카샤에 적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절대법칙=절대음(-)=아인

아카샤=의지를 가진 무한자(者)=아인소프

분리•통합된 음과 양=빛=아인소프오르.

단, 이때 주의할 것은, 이 세 겹의 베일은 아카샤의 어떤 양상을 보여주기 위한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카발라에 대한 이야기를 좀더 진행해 보겠습니다. 눈치 채셨겠지만, 카발라의 기본적인 개념을 모르고서는 이론편을 전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바르돈은 “카발리스트가 되기 전에 우선 마법사가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만, 이때 카발리스트는 실천적 능력을 지닌 카발라 마법을 구사할 수 있는 카발리스트를 말하는 것이고요. 그 경지는 요원하며 이번 생에서 가능한지도 알 수 없지만, 일단 마법사로서 헤르메스학을 잘 이해하려면 헤르메틱 카발라의 개념을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특히 소우주, <인간에 대해>의 강의를 진행하려면 매우 필요하니까요.



– 까페 아르고나우트에서, ‘오컬트마법강좌’ 칼럼 발췌 (정은주, 좋은글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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