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카발라 생명나무 상징에 대하여



제가 처음 ‘카발라’를 접한 것은 <푸코의 진자>라는 움베르트 에코의 소설을 통해서였습니다. 혹시 이 소설을 읽어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첫 장 케테르는 “보라, 영원한 조하르(광휘)는 앞에서 말한 허공 중의 일직선 배열로부터 비롯된 것이므로”로 시작합니다. 마지막 장 말후트에 이르면, “’지혜’는 말후트 속에 숨어, 일찍이 누리던 광명을 찾아 사방을 더듬는다. ‘말후트’의 진실은, ‘세피로트’의 밤에 빛나는 유일한 진실은, ‘지혜’는 ‘말후트’안에서만 적나라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말후트’의 신비는 존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존재를 떠나는 데 있는 것이다. 존재를 떠나면 결국, ‘다른 것’들이 존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나름 읽은 책도 많고 공부한 분야도 많다고 자부하던 저로서는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이 책을 읽고서 정말 재미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당황스러웠습니다. 다들 뭔가를 알고 있는 모양인데, 그것이 무엇일까? 요즘 들어 생각해보면, 어이 없는 일이지만 말입니다. 움베르토 에코라는 대가가 곳곳에 장치해 둔 이 상징들의 벽을 넘지 못하고 저는 책을 덮었습니다.

이제 뒤늦게 저는 맨 앞 장에 에코가 그려놓은 다이어그램이 무엇인지도 알고, 줄거리를 끌고 가는 세피로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읽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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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의 진자>에 게재되어 있는 생명나무

뿐만 아니라, 헤겔을 비롯한 변증법의 대가들이 풀어 놓은 양과 질, 정-반-합의 원리가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칼 마르크스가 단순한 경제학 개념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포스트 모더니즘의 갑론을박의 줄거리도 잡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서야 말입니다. 정말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평생을 기독교의 테두리 안에서 성서를 공부하고 신학을 공부했는데, 막히면 그냥 넘어가야 했던 그 대목마다 ‘카발라’에 열쇠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한층 더 억울한 일이었지요. 나만 빼고, 그들은 모두 카발라를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카발라는 서양의 철학과 예술은 물론이고, 종교와 과학 곳곳에 숨어 있는 원리입니다. 오컬트 학문의 한 분야인 의식마법(리추얼)이나 타로, 점성학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카발라를 모르는 채 의식마법의 주문을 외우거나 타로를 운운하는 것은 참으로 딱한 일입니다. 이 모든 분야는 헤르메스학과 카발라를 기초로 만들어진 체계이기 때문이지요. 
 
4강까지 오면서, 행간에 카발라의 개념과 원리에 대해 많은 설명을 했습니다. 카발라에 대해 전혀 공부한 적이 없는 분들은 정말 힘드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하게 될 다른 세계에 대한 이야기 역시, 카발라의 개념과 원리를 가져와야 하기 때문에, 오늘은 여기서 잠깐! 카발라에 대해 정리하고 넘어가기로 하겠습니다. 두꺼운 책 한 권으로도 모자랄 판에, 이 짧은 시간에 모든 것을 말씀드릴 수는 없겠지요. 다음 강(6강)까지 두 번에 걸쳐, 기본적인 틀을 정리하는 데 의미를 두겠습니다. 이 두 번의 강의가 여러분이 카발라를 공부하기 시작할 때 방향키 역할을 해줄 수 있다면 대만족입니다. 또한 <헤르메스학 입문> 이론편을 공부하면서, 행간에 감추어진 의미들을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카발라는 유대 신비주의 전승(카발라라는 말 자체가 ‘전승’이라는 뜻입니다)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사실 이집트의 비의 체계인 헤르메스학과 오랜 옛날부터 영향을 주고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미스티컬 카발라 24쪽 10번을 참조하세요!) 오늘날 학파나 단체들은, 랍비들 중심으로 전승되어온 유대 카발라와, 비의 단체를 중심으로 전승되어온 헤르메틱(헤르메스학적) 카발라로 분류합니다. 그리고 유대 카발라는 랍비들의 형이상학적 이론 중심의 카발라라고 규정하고, 비의적인 카발라를 실천적 카발라라고 분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유대 신비주의 전통 역시 카발라를 통해 명상하고 상승하는 실천적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신과의 합일을 궁극적 목표로 삼는 체계니 만큼, 그렇게 간단히 분류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자세히 공부하고 싶은 분들은 랍비 숄렘의 <카발라>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영어책입니다. 지금 번역 중인데, 언제 한글로 된 책이 출간될지는 장담을 못하겠군요.)

이번 강의와 다음 강의는 <미스티컬 카발라>를 교재로 삼겠습니다. 이 책은 헤르메틱 카발라의 맥락에 자리하며, ‘내면의 빛’이라는 단체의 초심자 교육(이론 및 실천)을 위해 쓰여진 책입니다. 실천적 명상에 대한 내용이 눈에 띌 때마다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이 있는데요. 그 단체의 커리큘럼 중 일부임을 기억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나 헤르메틱 카발라의 배경과 개념을 훌륭하게 설명하고 있는 책이므로, 우리는 이 부분에 주목해 이 책을 공부하기로 하겠습니다. 시간 관계상 제가 건너뛰는 부분은 이 책을 꼼꼼히 읽고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카발라는 앞에서 잠시 이야기한 대로, ‘전승’이라는 뜻의 히브리어입니다. 기록을 마다하고, 선택된 자들에게만 전승된 ‘비의’라는 말입니다. 대체 무엇이길래 기록을 마다하고 비밀리에 전해져 내려온 것일까요? 한마디로 카발라는 ‘신의 비밀을 담은, 상징’입니다. 이 한마디에는 여러 가지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단, ‘신의 비밀을 담은’에 대해 이야기해보죠. 프란츠 바르돈이 <헤르메스학 입문>에서 이야기한 테트라그람마톤의 위대한 신비! 이것이 카발라의 핵심입니다. 근원 중의 근원인 스스로 존재하는 힘(에너지)이 어떻게 스스로의 속성을 우주 속에 드러내는지, 즉 창조와 진화의 비밀을 담고 있습니다. 운동하는 힘은 방출과 수렴, 통합의 과정을 거치며, 자신의 모든 속성을 단계별로 드러냅니다. 이렇게 하여 우주 만물과 존재가 생성되며 진화하는 것이지요. 따라서 그 모든 단계와 존재는 근원적 힘의 속성 중 일부일 뿐입니다. 신의 편재성(어디에나 있음)은 이를 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카발라의 객관적 측면, 즉 대우주의 측면입니다.
자, 비밀리에 전수되던 테트라그람마톤의 비의는, 오늘날의 기독교나 유대교의 신 및 창조론과는 사뭇 다르지 않은가요? 유대교와 그 파생 종교뿐 아니라, 힌두 체계나 세계 곳곳의 모든 종교는 어쩔 수 없이 단순화를 통해 대중을 포섭하고, 필연적으로 정치 권력화함으로써 확산을 꾀하기 마련이니까요. 그 과정이 신을 왜곡하는 데 큰 몫을 담당하게 되는 것이고요. 위험한 발언이기는 하지만, 사실이 그러합니다.

앞으로 돌아가, 이번에는 ‘상징’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카발라는 ‘생명나무’라는 복합상징을 통해 위의 내용을 이야기합니다. 오해의 여지 없이 구구절절 설명을 할 것이지, 어째서 상징인가? 다이온 포춘은 여러 페이지를 할애하며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상징은 “미지의 힘이 지닌 비밀을 밝히는 수학적 도구”로 사용됩니다. 영적 수준이나 발달 단계가 다른 사람들이 저마다 광대한 의미의 벌판을 여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상징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이 상징을 통한 연상작용이 제각각 다른 방향으로 제멋대로 뻗어나가는 것은 아닙니다. 정해진 경로를 따라가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이를 가리켜 다이온 포춘은 “해석 이전에 상징이 존재한다”고 말하죠. 저는 “어떤 체계를 선택해 수행을 시작하면, 프로그래밍된 시스템이 작동하기 시작한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제 스스로 경험했고, 다른 분들이 경험하는 것을 자주 봐왔습니다. 마찬가지로, 입문자에게 상징은 감추어진 비밀이 아니라, 경로를 따라 길을 찾게 도와주는 도구입니다. 이미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비의적 상징들은, 이 상징에 집중해 명상 또는 깊이 생각하는 의식에게, 구구절절 설명으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을 찾아가 발견하게 도와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카발라의 객관적 측면, 즉 우리의 의식 수준에 관련된 측면입니다. 

한편, 카발라는 복합 상징입니다. 하나의 기호로 단일한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니라, 상징과 상징의 연관성을 통해 의미의 복합성을 발견하도록 구성된 상징이라는 말입니다. 생명나무는 10세피로트와 22경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서로의 연관성 속에서만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동일한 본질이 차례대로 발현해 구성된 ‘힘의 위계’ 다이어그램이기 때문입니다. ‘창조-유지-파괴’라는 근본적인 힘의 작동 패턴은, 한 가지 측면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지난 시간에 아카샤의 빛이 동전의 양면 중 한 면이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기억하시지요? 이처럼, 현현한 모든 힘은, 대립자와의 관계성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어떤 관계의 측면에서는 양(+)이지만, 어떤 관계의 측면에서는 음(-)입니다. 양의 작용과 음의 작용이 동시에 일어납니다. 이러한 상대성 때문에 의미의 확장이 가능합니다. 즉, 동일한 다이어그램을 가지고 다양한 패러다임, 다양한 층위, 다양한 관계성을 유추해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모든 존재의 모든 원리를 설명하는 상징이 이처럼 간단한 그림 한 컷이라니! 놀랍지 않습니까? 카발라 상징 ‘생명나무’의 위대함은 바로 여기 있습니다.

그러나 몇 가지 함정이 있습니다. 함정을 피해 이 도구를 제대로 활용해 의식의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 두 가지만 이야기하겠습니다. 

첫째, 단답형에 익숙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처음엔 낯선 방법이 아닐 수 없습니다만, 관계를 들여다보는 데 익숙해져야 합니다. 즉, 일대일 대응의 함정을 극복해야만 이 복합 상징 도구를 잘 활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소드는 아스트랄계이고 달에 상응한다는 것”을 절대 명제처럼 부둥켜 안고 어떤 패러다임, 어떤 관계성, 어떤 층위의 문제제기인지 돌아보지 않는다면, 절대로! 광활한 의미의 벌판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상징은 1:1 대응이 아니다”는 말은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제멋대로 아무렇게나 유추해도 된다는 말로 들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비의적 상징은 해석보다 앞서 프로그래밍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프로그래밍의 기준은 ‘속성’입니다. 단순화시켜 말하면, 아카샤(신)의 속성이 어떤 양태의 운동성과 존재로 드러나는지에 요점이 있습니다. 이를 벗어나면 곤란하겠지요. 단, 복합 상징의 특징은 관계성에 주목하여 의미를 확장시킬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구체적으로 세피로트 및 4계를 설명하면서 좀더 자세하게 살펴 보기로 하지요.

둘째, 카발라 생명나무는 우주의 구조도가 아닙니다. 소우주의 구조도도 아닙니다. 힘의 방출 및 존재의 위계, 이로부터 진화와 진보의 단계를 파악하기 위한 상징으로서, 진화 및 진보의 수직적 단면의 기본 모티프입니다. 하나의 세피라는 다시 10세피로트와 4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기본 모티프와 동일 반복의 패턴을 가지고 말이지요. 결국, 한 단계의 진화 또는 진보는 신으로부터 방출되는 기본 속성과 방식을 동일 반복한다는 말이겠지요? 아무튼 이 사실을 잊으면, <멘탈계/아스트랄계/물질계>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아니, 절대 이해할 수 없게 됩니다. 

카발라 생명나무의 구조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할 것을 기대하셨나요? 1은 1이고 2는 2다.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아쉽게도 그렇게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다음 시간에는 기본 개념을 비교적 단순화시켜 이야기하겠지만, 그로부터 빠지게 되는 함정과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해, 오늘 이렇게 구구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많은 분들이 그러한 함정과 오류에 빠지는 것을 보아왔거든요.

오늘 강의는 여기까지입니다. 위에 말씀 드린 함정을 피하는 법 두 가지를 꼭 기억하시고, 다음 주 게재될 온라인 강좌 전까지 <미스티컬 카발라> 21쪽에서 56쪽까지 읽어오시기 바랍니다.


– 까페 아르고나우트에서, ‘오컬트마법강좌’ 칼럼 발췌 (정은주, 좋은글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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