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타로, 카드일까?




타로, 과연 카드일까?


분명 아닐 것이다. 우리 주님께 물어도 “아니라” 하실 걸? 그렇다면 알록달록 그림 가득한 저것을 무엇이라 해야 하나. 간단하다. 타로, 타로라 발음하면 된다! 물론 지금도 카드공장서 수두룩 닥상으로 쏟아지겠다. 그러나 그것은 카드가 아니다. 분명하다. 타로는, <국어사전>에서 말하는 작고 두꺼운 종이나 플라스틱 따위가 아니다. 단순 안부나 축하나 연락 목적 같은 기타 소개장도 아니며, 그날의 내용을 정리한 표/다이어그램-카드도, 의료보험카드도, 공중전화카드도 아니다. 그래, 진짜 신경질 나는 대목, 게임도박/트럼프 카드도 아니란 말이다. 왜? 매일 아침 오광 뜨는 화투도 타로라고 하지!  


타로, 대체 무엇인가?


타로, 그렇다면 무엇이란 말인가. 저 <경전>들의 ‘한 소리’, 그 위대한 선생들께서 기록하신 ‘법칙들’, 들어 본 적 있나? 쉽게 말해 타로는, 보편진리, 즉 ‘세계의 구조와 이치’를 꽉꽉 눌러 담은 그릇이라고! 갑자기 머릿속이 번뜩이는가? 믿고 따르라. 그 빛을 의지하라. 그게 ‘참-로고스’다. 그런데 내가 ‘타로=그릇’이라고 했다. 그릇은 ‘음(-) 여성형’이다. 음(-) 여성형은, 우리 세계를 가득 메운 그 힘의 ‘수동성’을 말한다. 난데없이 무슨 말이냐고? 전통오컬트상징체계, 그 언어를 풀어본 것이다. 모르면 공부하면 된다. 흔히 인간을 질그릇에 비유하지 않는가. 주께서 말씀하셨다. 본래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했다고. 그래서 인간을 ‘작은 이’, ‘소우주’라고 부른다. 신의 형상에 가장 가까운 4극자석 인간은, 작지만 강하다. 역사가 증명한다. 주께서 아담 코에 루아흐를, 그 생기를 꽉꽉 눌어 담았다. 저 타로=그릇처럼! 그 시절, 창조 과정 가운데 인간-존재는 음(-)이었다. 제 호흡을 하며 인생을 시작한 인간-존재는 양(+), 그러니까 이름과 형상을 입은 인간은 죽어가는 것이다. 진화는, 보편법칙에 따라 알아서, 재주껏 할 일이다! 


그러니까, 타로가 뭐냐고?


아까 말했잖아? ‘세계의 구조와 이치’를 꽉꽉 눌러 담은 그릇이라고! 우리 혀로 담을 수 없는, 테트라그람마톤(JHWH)의 비의라고! 번뜩이지 않어? 보편진리 가운데 가장 ‘참된 것’을 기록한 ‘책’이라고! 그래, 책! ‘로고스-서판’이라고. 그게 타로라고! 그게 22권이든, 32권이든, 56권이든, 78권이든 말이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 타로는! 로고스-참지혜를 그대로 모방하고 재현한 호흡이라고! 이때 호흡은 쉬바의 것과 같겠지. 그러나 우리가 타로를 보는 ‘순간’, 읽는 ‘순간’ 그 타로 호흡은 양(+)이 된다. 또한 우리와 함께한 타로 호흡, 타로의 상징은, 저 인식 넘어 가장 불가해한 것으로, 우리의 뇌리에 콱 박히겠지. 그리고 ‘읽을 수 없는 것’은, 아니 ‘읽지 못한 것’은, 우리 잠재의식 안에서 썩어갈 것이야. 곧 죽겠지. 해석받지 못한 상징-진동은 물질-시공간의 범주를 벗어나므로. 



– 까페 아르고나우트에서, ‘마법갤러리 마법노트’ 칼럼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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