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미스티컬 카발라> 서양의 요가

서양의 요가
오컬트 수행자들 중에서 서양 오컬트의 전통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그 원천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전통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고대와 현대의 입문자들은 고의적으로 자신의 주변에 눈가림식 방어막을 둘렀다. 이 때문에 당황한 학자들은 우리에게 전해진 몇몇 문헌이 중세의 위작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들이 알았다면 놀랄 만한 일이 있다.

사실 그 단편적 문헌들은 입문자 이외의 곳으로 누출된 적도 없으며, 구전을 통해 온전하게 지켜진 채 입문 훈련을 통해 오늘날까지 전수되어 왔다. 이렇게 전해진 전통이 바로 ‘서양 요가’Yoga of the West의 실천적 기초다. 


물질계를 정복하는 것을 진화론적 숙명으로 타고난 인종의 경우, 그들의 영적인 스승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문제와 필요에 맞춰 요가 테크닉을 발전시켰다. 이 테크닉은 카발라에 기초를 두고 있다. 카발라는 ‘이스라엘의 지혜’Wisdom of Israel로서, 널리 알려지기는 했지만 사실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왜 서구 민족의 신비주의적 전통을 유대주의Judaism, Hebrew culture 문화에서 찾아야 하는가?”라고 질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인종과 하위 인종’sub-race에 대한 신지학 이론esoteric theory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질문에 바로 답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에는 원천이 있기 마련이다. 문화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그냥 솟아나지 않는다. 새로운 문화의 씨앗은 반드시 기존의 문화 안에서 생겨난다. (중략) 불교를 받아들인 동양 민족이 힌두 문화의 덕을 입은 것처럼 기독교를 받아들인 민족은 유대 문화에 신세를 졌다. 


이스라엘의 신비주의는 서양 현대 오컬트의 기초가 되었다. 모든 예배 의식이 발전해 나가는 이론적 토대가 된 것이다. 이스라엘 신비주의에 속해 있는 유명한 그림인 ‘생명나무’the Tree of Life는 명상을 위한 최고의 상징이다. 생명나무야말로 모든 것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카발라의 근원에 대한 역사적인 연구 결과를 서술할 생각은 없다. 그보다는 신비주의에 입문한 현대의 수행자들이 적용할 만한 사용법을 제시하려 한다. 우리의 체계가 전통에 뿌리 박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루한 전통을 그대로 따를 이유는 없다. 실천에 적용하는 테크닉은 생명을 가지고 성장하기 때문에 각자의 체험을 통해 풍부해진다. 또한 각자의 경험은 우리 모두의 유산이 되어 후세에 전해질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하거나 어떤 생각을 할 때, 예수 이전의 랍비들이 가지고 있던 관점을 그대로 따라야 할 의무는 없다. 세상은 변했으며 우리는 새 율법 아래 있다. 그러나 원리 측면에서 그 시대에 진리였던 것은 지금도 여전히 진리이며 우리에게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중략) 그러나 우리가 계승 받은 유산이 실천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면, 지금 우리의 영적인 상황에 맞게 그 원리를 재해석하고 기법을 재구축해 나가야 한다. (중략)


강물은 수원水源에 가까울수록 깨끗하다. 따라서 최초의 원리를 찾기 위해서는 수원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강물은 흐르면서 수많은 지류를 거느리고 다른 물과 섞이기 마련이지만 반드시 오염되지는 않는다. 그 물이 깨끗한지 아닌지 알아보려면 수원의 물과 비교하면 된다. 두 개의 물줄기를 비교해 봤을 때 그 물과 수원의 물이 다르지 않다고 판단되면 그 물은 본류에 합류하게 된다. 이렇게 강물이 다른 흐름을 받아들이면 그 힘은 더 커진다. 받아들인 다른 흐름은 전통과 하나가 되며,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면 동화될 수 있다. 이처럼 우리는 언제나 첫 번째 원리를 기준으로 하여 어떤 전통의 순수성을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그 전통이 얼마만큼 동화력power to assimilate을 지니고 있는지에 따라 ‘생명력’vitality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의 생각에 아무런 영향력도 미치지 못하는 것은 죽은 신앙일 뿐이다. (중략)


고대 히브리 신비주의 전통에는 세 가지 문헌이 있다. 우선 우리가 ‘구약성서’라고 알고 있는 《율법과 예언의 책the Books of the Law and the Prophets》이 있다. 그리고 《탈무드》가 있는데, 이것은 《율법과 예언의 책》에 대한 학문적인 주석 모음이다. 또 하나는 율법과 예언에 대한 비의적mystical 해석인 《카발라》가 있다. 이 세 가지 고대 문헌에 대해 랍비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 번째 책은 전통의 몸체이며, 두 번째는 이성적인rational 혼이며, 세 번째는 불멸하는 영이다. 무지한 사람은 첫 번째 책을 읽고 이득을 얻을 것이고, 지식을 지닌 사람은 두 번째 것을 연구할 것이며, 지혜로운 사람은 세 번째 것을 깊이 명상할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 주해서 중에는 《카발라》 안에서 구약성서를 이해할 열쇠를 찾는 경우가 전혀 없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예수의 시대에 팔레스타인에는 종교적 사조thought와 관련해 세 가지 종류의 가르침이 있었다. 우선 복음서에 자주 등장하는 바리새파Pharisees와 사두개파Sadducees, 그리고 복음서에 한 번도 언급되지 않은 에세네파Essenes가 있다. 비교 전통에서는 열두 살 된 요셉의 아들 예수와 성전에서 토론을 벌인 율법학자들이 그를 신동이라 생각하고 사해 근처에 있는 에세네 공동체로 보내 이스라엘의 비의적 전통을 훈련시켰다고 단언한다. 그리고 예수는 서른이 되어 요르단 강에서 세례 요한John에게 세례를 받을 때까지 줄곧 거기 있었다고 한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주기도문의 마지막 구절은 순수한 카발라 사상을 담고 있다. ‘말쿠트’Malkuth, 즉 ‘왕국’Kingdom, ‘호드’Hod, 즉 ‘영광’, ‘네짜흐’Netzach, 즉 ‘힘’ 등은 생명나무의 근본 삼각형basal triangle을 이루며, 그 중심에는 ‘예소드’Yesod, 즉 ‘기초’ 또는 힘을 수용하는 ‘그릇’이 있다. 이 기도문을 만든 사람은 카발라를 알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중략)


교회의 힘이 약화될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던 15세기에 이르러서야 사람들은 고대 이스라엘의 지혜를 기록하는 데 용기를 냈다. 학자들은 초기 사본들의 전승 경로를 추적할 수 없기 때문에 카발라가 중세의 위작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비밀결사esoteric fraternity의 작동 방식을 몰라서 하는 이야기다. 비밀결사들은 비입문자의 눈에는 아무 의미도 없어 보이는 그림문자glyph를 통해 우주 창조의 비밀과 심리학에 관련된 모든 내용을 전수해 왔다. 이 이상하게 생긴 옛 그림 덕분에 그 의미를 전혀 훼손시키지 않은 채 세대에서 세대로 구전될 수 있었다. 일부 난해한 부분에 대해 의문이 생기면 이 성스러운 그림문자를 참조하고 이 도안을 명상하면, 오랜 옛날 누군가가 명상하면서 그 안에 봉인해 둔 내용이 개봉되면서 답을 주게 된다. 비전가mystics라면 잘 알고 있는 사실이 있다. 과거에 어떤 사람이 명상을 통해 특정 관념과 어떤 상징을 결부시켜 놓았다고 하자. ‘입에서 귀로’ 전해지는 가르침을 받지 않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 상징을 주제로 명상을 하면 바로 그 특정 관념에 접근할 수 있다. 


교회의 형태로 조직화된 세속 권력은 모든 반대자를 시야에서 몰아내고 그들의 흔적을 없애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중세 암흑시대 동안 어떤 비의적 전통이 움텄는지, 그들이 미처 자라지도 못한 채 어떻게 제거되었는지 전혀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신비주의는 인간 안에 내재되어 있다. 교회가 제아무리 신자들의 영혼 안에 깃든 신비주의 전통을 뿌리째 뽑아버렸다 해도, 그 양떼 안에 내재된 신실한 영은 신을 향해 나아가는 혼의 기술을 재발견하고 자신만의 고유한 요가를 발전시켰다. 이것은 동양의 박티 요가Bhakti Yoga와 아주 비슷하다. 가톨릭 문헌 중에는 신비주의적 신학 체계에 대한 전문서적이 많다. 이 책들은 다소 소박한 심리학 개념이라서 신비주의 전통을 경험하기에 한계가 있는 빈약한 체계지만, 그래도 비교적 높은 수준의 의식 상태에 접근할 수 있는 실천적인 지식을 밝히고 있다. 


가톨릭 교회의 박티 요가는 천성적으로 헌신적이며 자기 희생적인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기질을 가진 사람에게만 적합하다. 이런 유형의 사람은 일부일 뿐이다. 그런데도 구도자들에게 교회가 다른 체계를 제시할 수 없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동양인들은 관용적이며 지혜롭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다양한 요가 방법을 발전시켜 왔다. 각 요가 수행자들은 독자적으로 한 가지만을 집중적으로 추구하지만, 모든 방법은 저마다 신을 향해 다가가는 길이며 사람마다 적합한 방법이 각기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의 신학 분야가 지닌 안타까운 한계 때문에 서양의 많은 구도자들이 동양의 방법을 빌어다 쓸 수밖에 없었다. 동양과 동일한 조건에서 생활할 수 있는 사람이거나 구루guru의 지도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분명히 만족스러운 결과를 보장 받을 것이다. 그러나 책 이외에는 누구도 지도를 해줄 수 없는 상황이거나 서양의 상황에 맞게 조정되지 않은 채 다양한 시스템을 수행하는 경우,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중략)


그러나 나는 동양의 구루들이 한결같이 주장했던 것과 동일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혼과 영의 발전을 꾀하는 모든 시스템은 경험 있는 스승의 개인적인 지도를 받아 안전하고 정확하게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 책에서 ‘비의적 카발라’Mystical Qabalah의 원리를 소개한다. 나는 입문할 때 이런 원리를 발설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실천적 비밀을 공개하는 이런 일들이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고의적인 눈가림이나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독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따라서 나의 지식과 믿음 체계 중 최선의 것을 골라 여기 적을 것이다. 또한 불완전할지언정 가장 정확한 정보만을 골라 제시하도록 하겠다.
‘감추어진 영광’Concealed Glory의 32가지 ‘비의적 경로’Mystical Paths는 생명을 향한 길이다. 그 비밀의 봉인을 뜯은 자는 누구나 그 경로와 대면하게 될 것이다. 내가 훈련 받았던 것을 돌이켜 보건대 훈련에 참여하고자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진정한 구도자의 길 안내를 맡을 것이다. 

<미스티컬 카발라> 21쪽, 서양의 요가, 발췌
다이온 포춘 지음/정은주 옮김/좋은글방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