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방] 올해는 신간 나오나요?

 

오컬트 전문 출판사 좋은글방, 여전히 건재합니다. 신간을 쑥쑥 출산하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하여 늘 가슴이 답답합니다. 그런데도 지켜보고 응원하고 잊지 않는 독자들이 있어서 여전히 건재하고 있는 것이죠. 그러나 어쨌든 쑥쑥 책을 뽑아내는 것은 우리에게 참으로 난제 중의 난제입니다.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서양 전통마법 수행자를 위한 교과서와 지침서를 낸다는 고집을 꺾지 않아서죠. 필자와 역자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토론하고 텍스트를 짜내는 여정이 길고 고됩니다. 단어 하나 문맥 하나에 엄정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실제로 수행하고 탐구해 보지 않은 채 ‘아무말’이나 내뱉을 수 없다는 책임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외부에 원고를 맡겼다가 낭패를 본 경험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나’에게 짐을 나누어 달라고 맡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한 권의 신간이 나오기까지 산통을 열거하기 힘들 정도랍니다.

둘째, 출판을 시작한 이래 딱 두 달을 제외하고는 만성적자 그것도 매우 적자입니다. 마법상점이나 헤르메스학연구소가 열심히 일하여 근근이 먹여 살리고 있지요. 하지만 자고로 출판은 명예를 중시해야 한다고 믿고 있는 우리는, 오컬트 분야의 명예를 돈이나 영달과 바꿀 생각이 없습니다. (돈도 벌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여기에 이런저런 사소한 이유까지 덧붙여져 새로 낼 책 한 권을 선정해 기획하는 일이 태산처럼 무겁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노느냐??? 그럴 수는 없죠!!! 매주 찾아오시는 수강생들이 저희 눈치를 보며(!) 묻습니다. “올해는… 책 나오나요?” 아아 그래서 저희는 매일 매순간 책을 출간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립니다. 올해는 책 나오나요? 네! 나옵니다! 반드시 내겠습니다!

두 권의 신간을 기획 중입니다. 임설 선생님이 새해 벽두에 마음을 다잡고 집필을 시작했습니다. 올해 안에 출간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책의 주제는 원고가 완성될 즈음 공개하겠습니다. 또 한 권은 올 여름 출간을 목표로 잡았습니다. 근대 유명 마법사의 고전 중의 고전! 마법사를 꿈꾸는 모든 이가 열광하는 책! 번역팀을 꾸리고 있습니다. 이 또한 원고가 어느 정도 완성되면 공개하겠습니다. (누군가 번역기 돌려 저희보다 먼저 책을 내놓을까봐 비밀 유지 중입니다.)

기대하세요! 응원도 부탁합니다. 내용도 모르고 무슨 응원이야? 하신다면, 좋은글방의 의지와 가치를 믿어주세요! 열심히 달려 멋진 마법서를 내놓겠습니다!

이집트 비의 체계 최고 경전

‘나는 왜 태어난 걸까?’

 

누구나 겪는 사춘기 시절, 애태웠던 질문이다.

당시 유행하던 SNS엔 관련된 글로 도배됐었다.

시간이 지나며 어릴 적 글에 얼굴이 붉어졌지만 해마다 찾아오는 감기처럼

비슷한 질문은 계속되었다.

 

‘나라는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인가?’

‘신은 존재하나?’, ‘신이란 무엇인가?’

답이 보이지 않는 질문을 물고 늘어지는 한동안은 그저 울적했다.

종종 ‘나 좀 감수성 넘치는 듯?’ 나르시즘에 빠지기도, 생각을 지우려

밤새 게임만 했던 적도  또 길거리 점집을 헤매며 ‘저는 어떤 사람인가요?’

방황하기도 했다.

당시의 질문에 나는 심한 중2병을 앓고 있다고 스스로 진단 내렸다.

이런 저런 고민이 불쑥 얼굴을 내밀 때마다 급한 불을 꺼주던 방식은

‘점 보러 가기’였다. 나는 어떤 사람이냐는 질문에 그들은 답은 굉장히 빨랐다.

 

“카드 한 장 뽑아봐!”

“생년월일시 말씀하세요.”

“손 이렇게 펴 봐.”

 

오행이 어떻고, 직업을 나타내는 손금 선이 어떻고, 이 카드를 뽑았으니 어떻고.

복채를 건네고 나서며 가벼워진 발걸음 이면엔 질문 또한 스멀스멀 커져갔다.

‘점술 그 기저에 깔린 원리가 정말 궁금해!’

 

점성학, 타로 등 오컬트 관련된 책을 읽다 보면 빠지지 않는 단어가 있다.

헤르메스학, 카발라, 에메랄드 타블렛.

단어들이 반복되니 자연스레 머리에 새겨지고

영화, 드라마, 미술과도 같이 예술분야에서도,

인문학, 철학 서적에서도 세 단어가 자주 등장하고 있었던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토대는 <헤르메티카>라는

이집트 비의 체계 최고 경전이라는 사실까지도.

논어를 읽지 않고서 공자의 사상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주역이 빠진 사주는?

당시 점술 체계와 마법 공부 공백에 갈증이 심하던 나는

독자로서 좋은글방에서 번역, 출판한 <헤르메티카>를 구매했다.

생각보다 책이 얇았지만 문장을 곱씹어 읽다 보니 경전의 옹골찬 무게가 느껴졌다.

허기졌던 내가 여러 번 읽고 또 읽었던 문장이다.

 

13. 일곱지배자의 본성을 깨우치고 그들의 속성을 나누어 가진 인간은

우주의 경계를 뚫고 나가 자신에게 불을 지배할 힘을 준 이가 누구인지

알고자 하였더라.

24. 육체적 감각은 그들의 원천으로 돌아가게 하라.

몸의 감각이 상승하여 각각 고유한 원천으로 돌아갈 것이니,

각자 부분으로 나누어져 에너지와 섞이리라.

감정과 열망은 어리석은 제 본향으로 돌아가리라.

 

26. 이로써 우주적 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인간으로서

여덟 번째 영역에 들어갈 수 있으리라.

 

「헤르메티카」, 좋은글방, 2018, 18p, 24~25p

<헤르메티카>는 말한다.

무지에서 벗어나 우릴 가둔 세계의 틀, 즉 제한된 인식 구조 바깥으로

고개를 내미는 것이 인간의 가장 큰 특성이라고.

근원에 대한 계속되는 질문. 부단히 알고자 하는 욕망.

이것이 신성을 따르는, 진보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이라고.

그야말로 ‘사이다’였다.

생년월일시를 따지는 여러 점술 체계에서 대우주의 흐름이 어떻게

여러 층위(기질, 성격 등)에 걸쳐 소우주, 개인에 작용하는지.

나는 왜 끝없이 갈등하고 밤을 지새우는지.

어떻게 해야 이 무지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그 이론적 토대가 여기 있었다.

다른 오컬트 책을 읽으면서도 4원소, 12별자리 키워드 암기가 아닌

힘의 진행 과정이 파노라마로 펼쳐지고 있었다.

왜 그토록 유명한 그리스 철학자들이 <헤르메티카>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는지

감히 헤아리며 공감했다.

물론 이 희열의 과정이 그저 책을 읽는다고 자연스레 되진 않았다.

여러 번 곱씹고 되뇌며 때에 알맞게 의미로써 찾아왔다.

분명 힘겨운 과정이었지만 결과는 정말 즐거웠다.

 

<헤르메티카>는 여러 버전이 있지만 좋은글방에서 번역하여 출판한 책은

캠브리지 대학 출판부에서 펴낸 <HERMETICA>이다.

모두 열아홉 권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두 권이 유실되어

현재 열일곱 권만 전해지는 <The Corpus Hermeticum>.

목차와 내용을 살펴보면 신, 우주 만물의 근원과 그 구성원리,

3겹 몸을 가진 인간의 본질과 실체에 대하여,

입문과 수행, 깨달음의 방법 등 구성되어있다.

 

타로, 점성학 같은 서양 비의 체계 속의 점술이나 방편들을 다루는 자,

오컬트 공부에 목마른 자, 정해진 운명의 틀을 깨고 진보를 희망하는 자,

신화, 인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찾을 수 있는 오컬트 철학을 알고싶은 자,

굳게 닫힌 상징의 빗장을 열 수 있는 실마리를 얻고 싶은 자,

예술 활동을 하며 영감에 목마른 자 모두,

<헤르메티카> 행간에 차고 넘치는

어마어마한 비의를 거머쥘 수 있길 바란다.

물론 나 역시도.

 

[좋은글방] 에디터스토리 : 1월, 처음

 

2023년 새해가 일주일 하고도 3일이 더 지났습니다.

연초에 했던 다짐은 잘 지키고 계신가요?

꾸준한 운동, 다이어트, 금연과 금주 등등의 다짐들.

저에게 ‘독서’는 연례행사처럼 빠지지 않는 레퍼토리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한 달에 책 1권은 꼭 읽자!”

‘2021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 결과, 성인 연간 독서량은 4.5권이라고 합니다. 

‘이렇게나 조금 읽는다고?’ 싶지만

저또한 여러 핑계로 흘려보낸 시간만 벌써 10일째네요.

이 속도라면 내년에도 똑같은 새해 다짐을 하겠죠. 

어떤 책을 읽을까 고민하다가 <헤르메스학 입문>을 집어들었습니다. 

<좋은글방>과의 첫 인연을 맺어준 책이지요. 

매번 막연한 미래에 쫓기며 ‘예술’ 관련 서적만 읽다가 

기저에 깔린 철학이 궁금해서 구매했던 책.

카페 마감시간까지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이 책을 시작으로 <미스티컬 카발라><머머의 점성학 강의노트> 등

<좋은글방>의 책을 구매하고 흥분해서 밑줄도 그어보고,

페이지 한켠 접어두고, 필사도 했더랬죠. 

아마도 그때가 제 인생에서 연간독서량 최대치 찍었을 거예요.

근데 왜 또 다시 <헤르메스학 입문>을 집어들었을까요?

솔직히 말하자면, 이론편을 신나게 필사하고 읽다가 실천편에 들어서면서

문턱에 걸렸거든요. 

지난 「원소」강의를 들으며 실천 파트에도

엄청난 비의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져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에,

또 이 책만 펼치면 제 처음이 떠오르고 당시 저를 사로잡았던 문장이 보이며

심장이 다시 콩닥거리기에 펼쳤습니다.

“저를 초심으로 돌아가게 하는 문장입니다. 

누군가는 빨리 또 누군가는 늦게 도착하겠지만,

결국에는 우리 모두 목적지에 이르게 될 것이니,

노력을 헛되이 낭비하지 말 일이다.”

<헤르메스학 입문>-76p 中

 

수치가 말해주듯 책을 읽지도, 사지도 않는 시대라고들 합니다.

사람들이 책에서 멀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책으로 처음 <좋은글방>과 인연을 맺으셨나요? 

또 어느 문장에서 가슴이 뛰었나요?

댓글로 나눠주세요. 궁금합니다. 

23년 새해 첫 달, ‘처음’을 복기하며

다시 <좋은글방>의 책으로 마음을 열고 채워 풍성하게 시작하길 바랍니다.

 

[본문 발췌] <사이킥 셀프 디펜스> 중 「흐르는 시내를 건너면」

“예로부터 마녀들은 흐르는 물을 건넘으로써 골칫거리를 떨쳐냈다.
이 같은 민간신앙은 실제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미신에 의해 호도될 수도 있다.)
나는 이를 뒷받침할 만한 묘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사이킥 셀프 디펜스> – 290p 中

 

사이킥 셀프 디펜스

사이킥공격의 형태·진단·문제·방어

— 지은이 다이온 포춘 / 옮긴이 정은주

— 발행일 2010년 10월 31일 / 페이지 368쪽 / 가격 32,000원

— 주소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18-28

— 전화 031-944-0935 / 팩스 031-944-0936

— 온라인숍 www.isishall.com / 책 구매 [바로가기]

 

[본문 발췌] 4계 안의 10세피로트

22 세피라에 대해 공부한다는 것은 그것이 표현하고 있는 자연적인 부분을 탐구하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세피라를 탐구하고 싶다면 지식의 차원에서 연구하고 명상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혼과 직관을 통해 그것의 힘, 그리고 그것의 구체Sphere와 만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언제나 맨 꼭대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구체를 방출하고 그 안에서 현현하는 ‘신성’과 영적으로 만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원소의 차원에서 구체에 속해 있는 힘을 감당할 수 없게 되어 벽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신의 이름이 가진 지배력 아래서 시작한다면 어떤 악evil도 끼어들지 못할 것이다.

23 우리가 연구하고 있는 각 세피라에서 성스러운 이름을 통해 만물의 창조주이자 유지자인 신을 찬양한 다음, 이어 그 세피라의 대천사를 초환한다invoke. 대천사는 강력한 영적 존재로 영적 발달 수준에 맞춰 해당되는 힘을 인격화한 것이다. 그는 자연의 상응되는 측면 안에서 역할을 수행해 나간다. 우리는 대천사의 축복을 구할 수 있다. 그리고 각 구체에 배속된 천사의 위계를 매기고, 자연의 왕국 안에서 그 들의 역할에 맞춰 우리에게 우호적이거나 도움을 주도록 명령해 달라고 부탁할 수도 있다. 이 과정을 마치면 비로소 우리는 탐구하고 있는 각 세피라의 기초keynote에 완벽하게 파장을 맞추게 될 것이다. 각 세피라와 상응하는 다양한 가지들을 추적하고 근원이 같은 상징들을 철저하게 탐구할 준비가 된 것이다.

24 이러한 방식을 통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풍부한 연상 고리association-chain를 찾아낼 수 있다. 무의식을 자극해 심상의 수많은 방 중의 하나를 열어젖혀 다른 모든 것과 차별화시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때 의식으로 솟아 올라오는 연상 고리는 외부의 이질적 관념과 전혀 섞이지 않은 순수한 전형true to type이 된다.

<미스티컬 카발라> 1장 09. 4계 안의 10세피로트 발췌
다이온 포춘 지음/정은주 옮김/좋은글방 펴냄

[칼럼] 귀신, 그리고 아스트랄계 이야기(3)

귀신, 그리고 아스트랄계 이야기. 마지막 칼럼, 지금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모든 귀신은 한때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사실은 사람이었던 존재보다 그렇지 않은 존재(entity)들이 더 많다. 천사와 악마, 각종 원소 존재와 행성 계열 존재 등이 여기 포함된다. 사람들이 만드는 인공적인 영 존재들도 있다.


여기서는 사람이 아니었던 영적 존재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엘리멘탈

한 아이가 울분을 토하며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집을 나가버리고 싶다고 했다. 이유인 즉 아버지가 매일 술을 먹고 자신을 구타한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이미 병으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분한 마음을 추스르고 일을 저지르기 직전, 마지막으로 동네에서 제일 친한 아저씨를 만나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았다. 속 사정을 들은 아저씨는 아이를 다독이며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오늘 밤에도 아버지가 널 때리고 죽은 어머니를 욕한다면 아버지를 죽이고 집을 나가도 좋다. 하지만 아버지가 널 때리지 않고 다정하고 사랑스럽게 대한다면 아버질 죽이지도 집을 나가지도 말아라.” 아이는 피식거리며 대답한다.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저씨는 곧장 집으로 돌아와 강렬한 심상화와 기타 의식(ritual)을 통해 엘리멘탈(elemental)이란 영 존재를 만들었다. 창조된 엘리멘탈에게 아저씨는 이름을 붙여 주고 다음과 같은 임무를 부여했다. “아이의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게 하라! 단 결코 정신적인 충격을 줘선 안 된다. 빠르고 신속히 처리하라!” 위와 같은 방법으로 여러 엘리멘탈들을 만들고 각각 아이에게 도움이 될 소망을 담아 빠르게 시행하라고 명령했다.


불안한 마음을 안고 집을 지키던 아이는 안절부절했다. 한참을 서성이다가 과도를 집어 들더니 작은 베개 밑에 쑤셔 넣었다. “이제 아빠만 오면 돼.” 시간은 계속 흘렀고 아버지는 좀처럼 집에 돌아오질 않았다. 자정이 되자 아버지가 들어왔다. 아이는 문소리에 깜짝 놀라 쥐 콩만한 눈을 비비며 아버지를 경계했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집에 돌아오자마자 화를 버럭버럭 내며 빗자루나 벨트로 마구 때리던 아버지가 빙그레 웃고 있었다. 게다가 한 손엔 과자상자라니. 아이는 꿈을 꾸는 듯 했다. 당황한 아이는 조심스럽게 아버지를 불렀고 아버지는 빙그레 웃으며 다정하게 “아~~~들”이라고 부르며 아이를 껴안아 주었다. 술 냄새가 나질 않았다. 아이에게 단 한번도 이런 애정표현을 해준 적이 없던 아버지였다. 아이는 아버지가 미친 것이 아니라면 이 모든 게 꿈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 아버지는 한결같았다. 때리지도 않고 술도 먹지도 않고 너무도 다정다감했다. 그 후 아이는 아버지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받아드렸다. 그리고 아이는 동네 아저씨를 찾아가 우리 아빠가 최고라며 자랑도 하고 사는 게 너무 쉽고 행복해졌다고 고백했다.

이 사례의 엘리멘탈은 따지고 보면 귀신이다. 그러나 분명 사람의 영혼은 아니었다. 마법사의 강한 의지력과 심상화 그리고 기타 의식으로 창조된 존재다. 엘리멘탈은 마법사의 충성스런 하인으로, 활동 영역은 사고와 의식을 담당하는 멘탈계이다. 저 사례 속의 엘리멘탈은 멘탈 차원에서 아버지의 생각을 바꿔놓은 것이다. 다시 말해 아내의 죽음이 아이 때문이라는 부정적인 사고를 바꾸어 놓았다.


엘리멘탈은 마법사의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멘탈 차원에서의 엘리멘탈은 못하는 것이 없다. 타인의 생각을 쉽게 바꿀 수도 있으며 적을 친구로도 만들 수 있고 창업으로 고민하는 이에게 놀라운 아이디어를 줄 수도 있으며, 숫기 없는 노총각에게 애인이 생길 수 있도록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 그 밖에 엘리멘탈의 활용도는 정말 광범위하다. 엘리멘탈에게 임무를 맡길 때는 하나 또는 두 개의 소망이 적당하다. 하나의 생각, 하나의 소망은 그 소망에 맞는 진동수가 있을 텐데 그것이 여러 가지라면 이 진동수들이 한데 섞여 엘리멘탈에게 혼란을 심어줄 수 있다. 고로 임무에 차질이 생긴 엘리멘탈은 자신의 존재 목적을 잊어 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니 안전하게 하려면 한 엘리멘탈 당 하나의 임무를 맡기는 것이 적당하다. 이런 이유로 위 사례의 아저씨는 여러 엘리멘탈을 만든 것이다.


물론 이 엘리멘탈은 사악하고 욕심 많은 마법사들에게 악용될 수도 있다. 엘리멘탈에겐 선과 악의 개념이 없기 때문에 자신을 창조한 자의 명령을 그대로 따른다. 그러나 마법적인 능력을 이용해서 악한 일을 저지르라 생각한 자가 있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보길 권한다. 인과법칙인 카르마가 있다. 무엇이든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다.

엘리멘터리

멘탈계에 엘리멘탈이 있듯이 아스트랄계엔 엘리멘터리(elementary)라는 존재가 있다. 이들은 하나 혹은 두 개 이상의 원소로 이루어진 영 존재이다. 불의 정령 살라만드라(salamandra), 물의 정령 운디나(undina), 공기의 정령 실푸스(sylphus), 흙의 정령 그노무스(gnomus) 등은 본래 아스트랄계에 있는 순수한 원소로 구성된 영 존재, 즉 엘리멘터리들이다.


이들은 선험지식이 있는 엘리멘터리들로 마법사의 필요에 따라 소환되어 요구사항을 들어주기도 한다. 보통 이들은 사람을 괴롭히거나 죽이지 않으며 관심조차 없다. 개인적으로 악감정이 없는 한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나 어떤 친구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분명 엘리멘터리였다. 엘리멘터리가 사람을 죽이고 있었다” 이런 경우 두 가지 상황일 것이다. 못된 흑마법사가 엘리멘터리에게 사람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거나, 마법사에 의해 창조된 엘리멘터리가 소멸되지 못하고 살아 남아 한 짓일 것이다.


하나 혹은 두 가지 이상의 원소로 창조된 엘리멘터리는 멘탈 차원의 사고형식에서 창조된 엘리멘탈보다 더욱 강력하다. 다시 말해 엘리멘탈보다 엘리멘터리가 물질계에 영향력을 끼치는 면에서 더욱 강력하고 효과가 높다는 것이다.


엘리멘터리 또한 마법사의 명령에 따라 아스트랄 차원에서 임무를 수행한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엘리멘탈과 엘리멘터리는 모든 임무를 끝내면 마법사에 의해 소멸되어야 한다. 현명한 마법사는 이러한 존재들을 창조할 때 일정 기간의 수명을 정해주거나 목적을 완벽하게 수행했다면 스스로 소멸되도록 명령해둔다.


하지만 늘 예외란 있는 법이다. 예를 들어보자. 마법사가 모든 임무를 끝마친 엘리멘터리를 까맣게 잊고 소멸시키지 않는다면? 엘리멘터리를 소멸시키지 못한 채로 마법사가 사고로 죽는다면? 생각만 해도 끔직할 것이다. 소멸되지 못한 엘리멘터리는 무기한 생명을 부여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주인의 통제로부터 벗어난 엘리멘터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에테르의 가장 저급한 속성인 자기 보호 본능이 생긴다. 위험으로부터 자신의 존재를 지켜야 할 본능, 사람에게도 있는 이러한 저급한 본능이 생긴다는 말이다. 그 밖에 의지와 감정, 욕구가 생겨나면서부터 문제가 생긴다. 의지를 갖고 아스트랄 차원에서 물질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점점 자신의 의지가 겉모습으로 나타나며, 본래 마법사로부터 창조된 형상이 아닌 흉칙한 형상이나 우스꽝스런 형상으로 변한다. 더 이상 엘리멘터리가 아닌 아스트랄 뱀파이어로 변질된 것이다. 아스트랄 뱀파이어는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인간의 생체에너지를 빨아먹는가 하면 온갖 괴상한 짓을 일삼는다. 이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일에 대해서는 원주인인 마법사가 카르마적으로 모두 책임져야 한다. 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가? 만약 마법사가 엘리멘터리에게 자신이 죽어도 자신의 가족과 후손을 위험으로부터 영원무궁토록 지키라고 명령한다면 그 엘리멘터리는 정말로 그 명령을 받들어 영원무궁토록 임무에 충성을 다할 것이다. 영적인 존재를 진정으로 분별할 수 없는 영매들은 이 엘리멘탈이나 엘리멘터리를 불쌍한 인간의 영혼으로 취급할 것이다. 이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이런 영 존재들에게 백 날 천도제를 해준다 해도 이들은 갈 곳이 없다. 해결 방법은 오로지 이들의 근원으로 소멸시키는 것뿐이다.

라르바

그렇다면 마법이나 영적 훈련을 받지 않은 일반인도 엘리멘탈이나 엘리멘터리 같은 영 존재를 만들 수 있을까? 물론 만들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존재를 만들 수 있나? 일상 생활에 도움이 될만한 훌륭한 존재를 만들 수 있나? 애석하게도 도움이 되지 못하며 오히려 피해를 주는 존재를 만들 수 있을 뿐이다. 이처럼 인간이 무의식적으로 만드는 위험한 존재에 대해서 알아보자.

우선 라르바(larva)라는 존재가 있다. 만화영화에 나오는 사악한 마왕의 졸개들은 사람의 시기와 질투, 증오, 슬픔 등을 먹고 산다. 이들이 바로 이 라르바다. 이 존재는 인간의 격한 감정 충돌이나 극한 분노와 슬픔, 질투 등으로 멘탈 차원에서 생겨난다.


사기꾼 부동산 업자의 농간에 넘어가 큰 돈을 잃고 빚이 잔뜩 생긴 한 남자의 감정은 어떨까? 분명 처음엔 자세히 따져보지 않고 섣불리 계약한 자신을 탓할 테고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 괴로움에 몸부림 칠 것이다. 그러다가 매일 사기꾼 부동산 업자를 찾아 헤매고 밤이면 밤마다 술로 지새운다. 그 사기꾼을 향한 분노가 하늘을 치솟는다. “어떻게 해서든 그 사기꾼을 찾아서 돈을 받아내야 해! …. 이런 젠장 아냐! 그 사기꾼 놈을 찾아서 반드시 죽이고야 말겠어!” 갑자기 고통에 몸부림치던 남자의 생각과 목적이 바뀌어 버린다. 이 남자는 계속해서 그 사기꾼의 얼굴을 떠올리며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어쩔 줄을 몰라했다.


이처럼 부정적인 생각을 계속함으로써 이 남자의 멘탈 차원에는 라르바라는 존재가 무럭무럭 자라난다. 그 사기꾼에 대해 떠올릴 때마다 라르바의 멘탈 질료는 늘어나며 힘은 더욱 응축되고 강해진다. 인간의 정신적인 흥분을 통해 멘탈 질료로 만들어진 라르바는 어떠한 형상을 띠는데 각 개개인의 정신적인 흥분에 따라 그 상징적인 형태가 다르다. 로또 복권에 미친 사람의 라르바는 분명 로또 모양이나 만원짜리 지폐 형태를 띠고 있을 것이며, 앞의 이야기 속의 라르바는 날카롭고 사납게 생긴 복수의 칼 모양을 하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런 정신적인 흥분을 계속 할수록 라르바가 강해져서 시간이 지나면 부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곤 한다. 라르바는 저 남자가 사기꾼을 찾아내 죽이게 하고, 겨우 돈 때문에 범죄를 저질렀다는 수치심이 들도록 남자의 영과 의식을 자극한다. 결국 이 남자는 라르바의 충동질에 희생되어 끔찍한 자살을 하게 된다.


한 사람의 고귀한 생명을 순식간에 앗아가 버리는 라르바는 정말 위험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위 상황은 최악의 결과이다. 이 은밀한 결투에서 승자는 라르바다. 멘탈계의 존재 라르바는 남녀노소 누구나 무의식적으로 만들 수 있는 존재다. 이 위험한 존재를 없애는 방법은 정신적인 흥분의 원인을 찾고 그 흥분을 멈추는 것이다. 라르바는 인간의 멘탈 차원에서 생겨난 존재이기 때문에 정신적인 흥분이 멈추면 먹이(멘탈 질료)를 먹을 수 없어 힘을 잃고 말라 비틀어져 소멸하고 만다.


위 이야기처럼 극한적 상황이 아닌 경우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라르바를 느끼지 못할 수 있다. 물론 아스트랄 감각 없어서이기도 하기만, 왠지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소한 예를 하나 더 들어 보겠다. A라는 여학생이 있다. 이 여자는 유행에 뒤쳐지길 싫어하고 패션에 민감하다. 매주 인터넷 쇼핑에서 옷을 구입하는 낙으로 사는데, 어느 날 정말로 꿈에서만 그리던 옷을 인터넷 쇼핑에서 발견하고 기뻐한다. 이 옷은 마치 자신을 위해 준비된 옷 같았다. 문제는 돈이 부족하다. 골똘히 고민을 하다가 아버지의 지갑을 생각해낸다. 옷에 대한 강한 욕구와 갈망이 폭발한다. 모니터 속의 옷이 자신을 부르는 듯하다. 생각만해도 날아갈 듯이 좋다. 결국 아버지의 지갑에 손을 대어 거금을 꺼내고 인터넷 쇼핑에서 그 옷을 구입해 버리고 만다.


이 여자의 정신적인 충동은 어떤 라르바를 만든 것인가. 이 여자는 소위 지름신-라르바의 유혹에 희생당한 것이다. 결국 나중에 아버지에게 모든 것이 들켜버린 여학생은 용돈을 받지 못하게 됨은 물론 당분간 외출이 금지된다. 이렇게 웃지 못할 일이 실제로 벌어지면서 라르바는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소멸된다.


가만히 생각해 보라. 당신이 일상에서 가장 큰 비중을 두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이 당신을 갈망하게 하고 초조하게 하는가. 혹 라르바의 영향력 안에 자신이 있는 것은 아닌지 조심히 주위를 둘러볼 일이다.

스케마

라르바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형태의 멘탈 차원의 존재, 스케마(schema)가 있다.
정신적인 흥분으로 만들어지고 생기를 얻어 힘이 세지는 라르바와 달리, 스케마는 인간의 망상에서 비롯된다. 공포영화 ‘죠스’를 보며 공포에 사로잡힌 친구가 있었다. 며칠이 지나도 식인 상어의 환상이 그를 소름 돋게 만든다. 바닷가가 무섭고 싫어진다. 수영장이나 목욕탕에 들어가기만 해도 ‘죠스’의 배경음악이 들려오고 사람들이 있는 탕 속에 죠스가 있을 것만 같다. 식인 상어에게 사지가 뜯기는 꿈을 자주 꾸다가, 결국 작은 웅덩이나 심지어는 화장실 변기통을 보는 것조차 조심스러워진다. 피해망상이 극에 달하게 되면 물이 가득 담긴 컵조차 입에 대지 못하게 된다. 컵 속에서 죠스가 튀어나올 것만 같다. 이 정도가 되면 누가 봐도 피해망상에 사로잡힌 정신병자다.


무엇이 이 친구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가. 바로 스케마이며 자기 자신이기도 하다. 영화 ‘죠스’에서 식인 상어가 사람을 잡아 먹는 장면을 계속해서 머릿속에 되뇌이는 것이다. 사람을 잡아 먹는 식인 상어의 형상을 반복해서 정신적으로 소환해내는 것이다. 이런 망상을 할 때마다 스케마는 더욱 응축되고 겉잡을 수 없이 강해져 1차적으로 식인 상어 공포증이라는 선물을 받게 될 것이다. 스케마는 그의 망상으로부터 식인 상어의 형태를 부여 받게 된다. 만약 마법사의 아스트랄 시각으로 이 스케마의 형상을 목격한다면, 그야말로 공중을 떠다니는 무서운 식인 상어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스케마는 다양한 망상으로부터 생겨나고 그 망상에 따라 하나의 형태를 갖는다. 남편이 바람을 핀다는 망상을 한다면 화장을 떡칠한 요괴 같은 여자 형태의 스케마가 자신의 멘탈 차원에서 활동한다. 바람을 피운 적도 없는 남편을 미친 듯이 괴롭히다가 결국 가정파탄에 이르고 만다. 스케마는 멘탈 차원은 물론, 아스트랄 차원을 거쳐 물질 차원까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위험한 존재다.

귀신에게 빙의가 되어 자신의 의식이 조종당한다는 피해망상을 한다면 정말로 귀신도 곡할 노릇이 되고 만다. 공포영화를 즐기며 온갖 미스터리 현상이나 귀신에 대한 책을 모아 공부할 정도로 귀신 마니아인 한 청년이 있었다. 하루는 이 청년이 헛것인지 무엇인지 모를 귀신 같은 형체를 목격하고 기뻐하던 날이 있었는데, 그 일이 있은 다음 날 새벽 그는 몹시 아프기 시작했다. 온 몸이 쑤시고 머리를 들 수없이 무거웠다. 이런 상태가 며칠이 지나도 나아질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하루 종일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진 그는 노래를 들으며 시간을 때우곤 했는데 언제부터인지 줄곧 우울한 음악 찾고 즐겨 따라 부르곤 했다.


우울한 음악 가사에 점점 자신의 삶이 동화된 그는 세상의 마지막을 달리는 듯한 기분을 일기에 가득 채웠다. 설상가상으로 집안 형편이 더욱 나빠졌고 친한 친구들이 병문안을 와도 심한 욕설과 함께 그들을 내쫓아버렸다. 그 날 밤 청년은 꿈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무서운 귀신의 형상이 자신을 마리오네뜨 인형처럼 조종하고 있었다. 꿈에서 깨어난 청년은 지금까지의 일들을 곰곰이 생각해본다. “내가 왜 이러는 걸까?” 수많은 의문과 문젯거리를 내놓으며 결론을 지었고 그는 두려움에 떨었다. 영혼에 대한 온갖 책을 많이 읽었던 그는 책에서만 혹은 말로만 듣던 귀신병인 빙의 상태라고 자신의 증세를 확신한 듯 했다.


그 후 그는 귀신에게 조종당하는 피해망상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그로부터 이 청년은 정말로 빙의된 사람처럼 온 몸과 머리가 정신 없이 아프고 가슴이 답답하며 이상증세(반복적인 괴이한 행동)를 보이기도 하고 매사에 신경질적이며 폭력적으로 변한다. 이유 없이 모든 사람들이 싫어지고 몸이 나아져도 밖에 나가는 일을 꺼린다. 왕성했던 식욕은 사라지고 아무런 의욕도 없어진다. 갈수록 몸은 야위어가고 정신은 피폐해진다. 우울과 무기력함이 극에 달하던 어느 날 머릿속에서 누군가가 속삭이듯 말을 걸어온다. 깜짝 놀라 주변을 둘러본 청년은 검은 형상의 귀신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이 날부터 밤이고 낮이고 스케마(귀신의 형상)가 그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온갖 위험한 폭력과 자해 등을 서슴없이 시키고 명령에 불복종할 때는 청년을 때리고 할퀴며 심한 편두통을 주는 등 갖가지 정신적인 고문을 가했다. 그렇게 고통의 세월을 보내던 어느 날 밤, 정신을 차려보니 창가에 긴 벨트가 올가미 형식으로 묶여 있는 것을 보았다. 스케마는 그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저 창가 앞으로만 가면 앞으로 널 괴롭히지 않을게.” 그는 몽롱한 표정으로 군말 없이 창가에 다가선다. “이 벨트에 목만 넣으면 난 앞으로 영원히 네 앞에 나타나지 않을게.” 그는 잠시 머뭇거렸다. 귀신의 형상을 한 스케마는 다음과 같은 말로 그에게 속삭이듯 유혹한다. “못하겠니? 그럼 벨트를 귀까지만 걸어봐. 어서, 귀까지만이야. 하나도 어렵지 않아.” 끊임없이 부추기는 스케마의 말에 못 이겨 그는 정말로 귀에 벨트를 갖다 댔고, 그러자 스케마는 그의 등을 힘껏 밀어 청년이 창 밖으로 튕겨나가게 했다.
음흉한 스케마에게 희생당한 이 불쌍한 청년, 분명 그는 빙의된 것이 아니었다. 단지 피해망상일 뿐이다. 문제는 자신이 빙의되었다고 강하게 확신하며 착각을 하는 순간부터이다. 무서운 귀신의 형상을 계속 떠올려 자신의 멘탈 질료를 이용해 멘탈 차원에서 스케마를 만든 것이다. 반복적인 피해망상이 누적됨에 따라 스케마는 더욱더 강해지고 응축되어 먹이감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게 된다. 따지고 보면 그는 스케마라는 존재를 만들어 스스로 빙의가 된 셈이다. 이런 황당한 사건들이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다만 우리가 모르고 지나가는 것일 뿐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비정상적인 살인자를 생각해 보라. 물론 그 살인자의 성향도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스케마에게 조종당한 경우가 많다. 스케마는 순수하게 짝사랑하는 이를 충동질하여 서서히 스토커로 만들 수도 있으며, 살을 빼야 하는 사람을 음식으로 끝까지 유혹해 살을 빼지 못하게 하는 등, 사건의 강약은 다르지만 여전히 스케마의 영향력은 우리 주변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판타스마

생전 살았던 사람, 즉 죽은 사람에 대한 생각으로 만들어진 존재가 있다. 이런 존재를 판타스마(phantasma)라고 하는데, 죽은 가족이나 친구 등을 강하게 떠올릴수록 그 죽은 자의 형상과 정말 흡사한 모습의 존재가 생겨난다. 한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여러 명이 한꺼번에 한 장소에서 죽은 이를 추모하거나 제사하는 방식에서 판타스마는 더욱 빠르게 생겨난다. 인기 높은 연예인이 죽은 다음 팬 여러 명이 모여 추모한다면, 그 엄청난 심상화의 에너지가 모여 죽은 연예인의 모습을 띤 판타스마를 만들 테고, 이 판타스마는 그 연예인 대한 관심과 사랑을 양분으로 삼는다. 사람들이 매일 그 죽은 연예인을 떠올리고 그리워할수록 판타스마는 더욱 응축되어 수명이 연장된다.


아인슈타인은 많은 사람들의 동경의 대상이다. 만약 전세계 사람들이 아인슈타인이라는 판타스마를 만든다면 아인슈타인 귀신은 독일에도 있을 것이고 미국에도 일본에도 심지어는 한국에도 있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모습을 한 이 존재가 자신이 아인슈타인이라고 말을 하더라도 그 존재는 가짜이며 판타스마다. 하나의 실제 영혼이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곳에 나타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실력이 뛰어난 영매들은 이를 구별할 수 있겠지만, 대개 많은 영매들이 이런 가짜 유령을 죽은 사람의 영혼으로 착각하고 대우를 해주기도 한다.

빙의

중.고등학생 시절, 종이와 볼펜을 준비하여 삼삼오오 모여 앉아 귀신점을 보는 ‘분신사마’를 누구나 한번쯤 해봤을 것이다. 호기심에 귀신을 불러 점을 본 아이들은 과연 분신사마의 위험성을 알고 있는 것인가?


몇 년 전 한 여학생이 자기 집에서 친구들과 분신사마를 했다. “귀신님 오셨어요?”, “귀신님은 남자세요? 여자세요?”, “저는 대학에 갈 수 있을까요?”, “제 남자친구는 언제쯤 생길까요?” 친구들과 깔깔대며 장난 삼아 보던 분신사마에 재미가 들렀는지 여학생은 혼자서도 줄곧 이 위험한 점을 즐겨 보았다고 한다. 하루는 날을 잡아 자기 딴엔 고마운 귀신에게 초코파이까지 준비하여 분신사마를 시작했다. “분신사마 분신사마 오잇데 구다사이(分身さま, 分身さまお言で下さい。)”
제법 진지하게 귀신과의 접촉을 시도한 여학생은 빨간 원피스를 입은 여자를 보고 비명을 지르며 이리저리 난리를 치다가 쓰레기통을 밟고 넘어져 문지방에 머리를 박고 기절했다고 한다. 그 후 여학생은 알 수 없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느니, 귀신들이 자주 보인다는 둥 주위 사람들에게 호소를 했다. 아무도 믿지 않자 그녀는 다른 사람들은 물론 친한 친구들과도 멀어졌다. 감수성이 예민한 이 여학생은 친한 친구들로부터 얻은 불신과 배신으로 대인기피증까지 생겨 버렸고 학교에도 더 이상 나가지 않게 되었다. 하루 종일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진 그녀는 날이 가면 갈수록 망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딸 방에 과일을 갖고 들어선 그녀의 어머니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자신의 딸이 문구용 칼로 자해를 하고 있는 것 아닌가. 놀란 어머니는 딸을 말리고 훈계를 했으나 도통 말을 듣질 않았다. 그 동안 이웃의 눈치를 보여 참아왔던 어머니는 최후의 방법으로 딸을 데리고 정신병원을 찾아가 진찰을 받아 보았으나 별다른 병명이 나오질 않았다. 두어 달의 시간이 지난 뒤 지인의 부탁으로 그 여학생은 나와 만나게 되었고,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치료를 해주게 되었다.

그녀의 병명은 ‘빙의(憑依)’였다. 부르지 않아도 오는 귀신, 애타게 부르는데 마다하고 오지 않을 귀신이 어디 있겠는가? 실제로 사람들이 모여 무서운 귀신 이야기라도 하면 귀신들은 그 자리로 몰려든다. 혹 자기 이야기를 하는가 해서 말이다. 아무튼 귀신은 그 여학생의 심장 챠크라 부분에 있었고 종종 그 여학생을 괴롭히는 것을 즐기는 것 같았다. 놀랍게도 이 귀신과 여학생은 정말로 많이 닮아 있었다.


자로고 귀신은 평소 자기가 좋아했던 사람이나 자신과 많이 닮은 사람에게 자주 옮겨 붙는다. 애정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육체가 없는 그들은 자신이 보기에 닮은 생김새에서 익숙함과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 가장 큰 이유는 그 육체에서 자신이 살아 생전 다 해보지 못한 것을 이뤄보기 위해서다. 철없는 조상들이 바로 그러하다. 자손들 잘 되게 도와주겠다는 명분으로 자손들의 몸을 차지하고는 사리사욕으로 괴상한 짓거리들을 하니 말이다.


‘분신사마’라는 문구에 어떠한 힘이 있어 귀신이 오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귀신은 사람들이 그렇게 주문을 외워 자신을 부르니까 암호처럼 여기고 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말로 ‘귀신아 이리 와서 내 얘기 좀 들어줘’ 라고 주문을 외워도 충분히 올 수 있다는 말이다. 자기적 흐름(-)이 흘러 넘치던 그 여학생은 영적으로 민감한 체질, 즉 영매 체질이라 빙의가 되기 정말로 쉬웠다. 또 귀신을 볼 수 없는 사람도 빙의가 되면 다른 귀신들을 볼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자신의 눈이 아닌 귀신의 시각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물론 빙의가 되어도 귀신이 보이지 않는 사람도 많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 하고 있을지도 모를 분신사마는 영적으로 무분별한 사람들에게 정말로 위험천만한 놀이가 아닐 수 없다. 분신사마로 알아낼 수 있는 것들은 미미하며 이것을 한다고 해도 득이 될 것은 전혀 없다. 만에 하나 빙의된 귀신이 아스트랄 뱀파이어 노릇을 하며 몸 안에 있는 생명에너지를 계속해서 빨아먹는 날엔 죽음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가. 영적인 세계는 알면 득이 될 수 있지만, 모른다면 해를 입을 수 있다.  

무당과 마법사

라르바, 스케마, 판타스마는 진짜 존재는 아니지만 사람들의 정신 안에서 끊임없이 생겨나 실제 영 존재처럼 살 수 있게 된다. 무당들이 불러내는 귀신이라는 존재는 실제 그에 해당하는 죽은 사람의 영혼인 경우도 있지만, 대개 지금까지 예로 든 것과 같이 가짜 유령인 스케마나 판타스마인 경우가 많다. 보통 사람들이 무당이 되는 경로를 보면 비참하기 그지 없다. 하나 같이 어느 날 신병(神病)에 시달리다가 신의 제자가 되라는, 무당이 되라는 명령을 신(귀신)으로부터 받게 된다. 내림굿을 받고 온갖 수행을 거쳐 무당이 되는데, 무당이 되는 것은 좋고 싫고를 떠나서 선택권이 없다.


한편 그들은 일반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영적으로 조금 민감한 영매 체질이 있는가 하면, 전혀 영적인 세계에 관심이 없던 사람조차 무당이 되기도 한다. 문제는 대한민국에 무당이 되지 않아도 되었을 무당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백날 귀신에게 치성을 드리며 공을 드려봤자 귀신에게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입만 열었다 하면 거짓말이 하늘을 찌르는 귀신들에게 올바른 말을 얻어내기 어렵고, 하루에도 오락가락하는 신들 기분 풀어주려고 몸이 찢어지도록 힘들다.


한번 생각해보라. 무속에서 신이라 칭하는 모든 것들이 정말로 신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들은 분명 신이 아니다. 많은 무당들이 사악하고 질이 낮은 아스트랄 존재, 또는 스케마나 판타스마 따위에 휘둘리는 것이다. 결국 피를 보는 것은 무당 쪽이다.

그렇다면 마법사와 무당의 차이는 무엇일까?
첫째, 선택의 문제다. 무당의 길은 선택권이 없지만, 마법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고 자신이 원해서 배우고 수행하는 것이다. 마법사는 자신의 영적인 진보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마법을 연구하며 수행하고 신성과의 합일을 추구한다.


둘째, 능력 차이다. 낮은 아스트랄 차원의 존재가 알려주거나 힘을 주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마법사에게는 한계가 없다. 언제나 신의 섭리 안에서 모든 것을 의식적으로 행한다.


셋째, 영매는 영적인 존재와 접촉을 할 때 자신의 몸을 이용한다. 귀신이 영매의 의식을 장악한 상태인 것이다. 영매의 의식이 빠져있는 상태에서 귀신은 폭발적으로 자신의 뜻을 표현한다. 온 몸을 벌벌 떨기도 하고 점프를 하는가 하면 생판 처음 듣는 외국어로 말을 하기도 하다가 울분을 참지 못해 마냥 울음 섞인 횡설수설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마법사의 경우는 다르다. 이런 영 존재에게 의식이 지배당하는 일은 결코 없다. 오히려 귀신에게 부탁이 아닌 권위를 갖고 명령을 내린다. 이처럼 낮은 존재와 접촉을 할 경우 마법사라면 몸을 빌리지 않고도 다양한 방법을 활용하여 영적인 존재에게 쉽게 도움을 얻어낼 수 있다. 영매는 영 존재들이 시키는 대로만 하고 자신의 능력을 계발시킬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통 영매 체질을 타고나 영적으로 민감한 사람은 일반 사람보다 영적인 존재를 보기 쉽다. 일반 사람이 가끔씩 귀신을 보기도 하는데, 몸 안에 원소의 불균형 탓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쉽게 말해 피곤해서 그런 것이다. 물론 헛것을 본 것일 수도 있지만 우연찮게 지나가는 영혼과 코드가 맞아 떨어져 보게 되는 경우다.


빙의가 되는 경우 귀신의 형태가 휠씬 확실히 보이게 되는데, 그 이유는 귀신의 시각으로 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자신의 아스트랄 시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귀신의 눈으로 아스트랄 시각을 통해 모든 사물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일반 사람도 아스트랄 시각을 발달시키면 다른 존재들을 볼 수 있게 된다. 아스트랄 시각뿐만 아니라 아스트랄 청각 등 감각을 계발시키면 아스트랄계로 여행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독심술, 싸이코메트리, 텔레파시, 공중부양, 4원소를 활용하여 날씨를 조종하는 마법 등등 이런 간단한 마법들부터 시작해서 상위 차원의 고급 마법까지 다양하게 활용이 가능하다. 이런 다양한 체험을 하게 되면, 그래서 이 세상에 또 다른 놀라운 세계들이 많다는 것을 경험으로 깨닫게 되면, 마법적인 발전을 위해 좀더 높은 상위 차원으로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게 될 것이다.

영적인 존재와의 소통

그렇다면 마법사가 만든 인공적인 엘리멘탈과 엘리멘터리 그리고 인간의 정신적인 충동이나 망상, 갈망, 죽은 이에 대한 그리움으로부터 나오는 라르바와 스케마, 판타스마를 뺀 나머지 존재들은 무엇인가? 아스트랄계에서 원초적으로 순수한 원소로 창조된 엘리멘터리는 마법사가 만들어낸 존재가 아니다. 마법사는 멘탈 여행과 더불어 아스트랄 여행도 자주하곤 하는데 특히 아스트랄계의 풍경은 번잡하고 어지러울 정도로 아름답다. 건물들이 변형되는가 하면 눈 앞에서 어떤 영 존재의 형상이 마구 변하기도 한다. 마법사도 아스트랄 체(혼)의 형상을 마음 먹은 대로 변신시킬 수 있으며 변형된 모습으로 아스트랄계를 여행할 수도 있다. 미숙한 초심자가 처음 아스트랄 여행을 할 때는 영적인 가이드가 따라 붙는다. 물론 가이드를 해주겠다고 나선 존재가 선한 엔터티인지 아닌지는 마법적으로 구별하는 방법이 있으니 안심해도 된다.

마법사는 어떤 방식으로 영적인 존재와 소통하는가?

어떤 엔터티는 텔레파시 형식으로 자신의 뜻을 전하고, 또 어떤 엔터티는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형식으로 대답을 하는가 하면, 어떤 존재는 조용하고 나긋나긋한 말투로 사람과 비슷하게 말하기도 한다. 이처럼 다양한 영 존재가 존재하는 만큼 정말 다양한 방법의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다만 그들이 하는 방식 그대로 따라 해줄 필요는 없다.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질문에 대답하는 존재에게 또 다른 질문을 하기 위해 노래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마법사는 이런 엘리멘터리나 악마 같은 존재들을 소환(evocation)할 수 있다. 또한 세피로트에 상응하는 상위 차원의 행성 계열의 영과 천사들도 초환(invocation)하여 여러 가지 신성한 지혜와 비전 등으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귀신이라고 통칭되는 존재를 우리가 두려워하는 이유는 잘 모르기 때문이다. 이들에 대해 잘 알아 두기만 해도 전혀 무서워 할 필요가 없어진다. 우리의 몸 안에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불멸하는 영이 존재한다. 이 사실을 아는 순간부터 우리는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죽음 이후의 저 세상에 사는 존재들을 두려워 할 필요도 없어질 것이다.


우리가 두려워 해야 할 일은 다만 카르마적으로 자신의 다음 생이 후퇴할 것인가, 나아갈 것인가 하는 데 있다. 언제나 뿌린 대로 거둘 것이다.


박영호 / 파리 카톨릭대학, 파리 제4대학에서 종교학과 고대 오리엔트언어를 공부했으며, 동대학 특수종교학 대학원에서 관련 연구에 참여했다. 동방성당기사단(O.T.O.)에 입문하여 서양 전통 제식마법과 헤르메스 철학의 비전을 전수받았다. 번역서로 <헤르메스학 입문>이 있다.




본 칼럼은 네이버 까페 ‘아르고나우트’에서 연재된 칼럼으로써, 오컬트를 공부하고 수행하는 여러분을 위해 준비된 것입니다. 게시된 글을 퍼갈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셔야 합니다. 원문을 그대로 또는 수정 및 가감하여 강의 및 저작에 이용하는 경우 법적으로 대응할 수 있음을 분명히 밝힙니다.

[본문 발췌] 안전하게, 두려움을 제압하며 여행하라!

…(중략) 자신이 만난 아스트랄 존재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 또 있다. 잠시 동안 날카로운 눈으로 뚫어지게 응시하는 것이다. 아스트랄계에서는 우리처럼 다른 존재도 생각과 감정의 형체가 만들어진다. 어떤 존재가 내뿜는 어두운 오라, 검은 촉수, 부정적 형상 등은 위험 신호다. 알코올 중독자 남편과 살고 있는 친구 한 명이 이런 것을 선명하게 목격한 적이 있다.

그녀는 일주일 째 소식이 없는 남편을 찾기 위해 어느 날 밤 아스트랄 프로젝션을 시도했다. 아스트랄 여행에서 돌아오고 있을 때 마침 남편이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의 아스트랄체는 여전히 거실 공중에 떠 있는 상태였다. 그녀가 묘사한 것을 옮기자면, 검은 구름처럼 생긴 손과 눈을 가진 존재가 남편을 따라 들어오고 있었다. 기묘한 탯줄처럼 생긴 검은 밧줄이 그 존재의 중심에서 뻗어 나와 남편의 뿌리 차크라로 흘러들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떠오른 첫 번째 생각은 그 존재를 남편에게서 떼어내기 위해 싸우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격하려고 하는 순간 그 존재가 그녀를 돌아보며 “말을 걸었다.” 사실 아스트랄계에서 태어난 존재의 대부분은 우리처럼 말을 하지 않는다. 주로 이미지를 통해 영적으로 소통하며, 우리가 그것을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다. 아무튼 그 존재는 “남편은 더 이상 네 것이 아니니 떼어낼 생각으로 귀찮게 굴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녀는 경고를 무시하고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 잠시 그 존재를 떼어냈다. 그러나 그것은 남편 자신의 행동이 불러들여 들러붙은 존재였기 때문에 그녀로서는 영원히 없애는 것이 불가능했다.

해로운 존재가 손대지 못하게 아스트랄 여행에서 돌아올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 있다. 자기 육체로 ‘재진입’하기 직전 잠시 멈추고 자신의 아스트랄체, 즉 육체 주위의 빛 에너지로 이루어진 오라를 꼼꼼하게 영적인 눈으로 살펴보는 것이다.

어떤 부정적인 아스트랄 존재가 내 에너지장에 들러붙으려고 시도했다면 에테르 복체 중 한군데 또는 양쪽 모두에 증거가 남은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군데군데 검은 형상이 남아 있거나 차크라에 실 같은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해로운 존재들이 들러붙으려고 시도했거나 이미 들러붙었던 흔적이다. 뱀파이어가 싱싱한 피를 빨아먹듯이 그 존재는 우리를 에너지 공급원으로 삼은 셈이다.

이 문제를 처리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다음 설명을 보고 자신에게 가장 효과가 좋은 것을 실험해 보면 신속하게 정화될 것이다. …(중략)

<아스트랄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 03.안전하게, 두려움을 제압하며 여행하라!, 발췌
에다인 멕코이 지음/좋은글방 편집부, 박재민 옮김/좋은글방 펴냄

[칼럼] 귀신, 그리고 아스트랄계 이야기(2)

아스트랄계 이야기 첫 번째, 즐거웠나요? 사실 아스트랄계의 이야기는, 본 칼럼에 묘사된 내용 이외에 훨씬 더 ‘아스트랄’하고 기상천외합니다. 그러니 명료한 단어로 풀어내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럼 두 번째 이야기, 시작합니다.


천국과 지옥?

아스트랄계로 간 망자는 자신의 아스트랄체가 지닌 조밀도와 영적인 수준에 상응하는 영역에서 지내게 된다. 이 영역들은 밝음과 어두움, 깨끗하고 더러움, 밀도의 높고 낮음 등 각각 특성이 다르며, 어디서 지내느냐에 따라 망자의 처지가 달라진다. 

많은 종교가 말하는 천국과 지옥은 이런 것을 두고 말하는데, 결국 정확하게 말하자면 천국과 지옥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죄를 많이 지어도 죽은 다음에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말인가? 물론 아니다. 영적인 세계의 법칙은 우리가 사는 물질계보다 더욱 강력하고 준엄하다. 우주보편법칙에 따라 인과법칙이라는 카르마(karma)가 적용되는데, 이에 따라 영적인 성숙도가 결정된다.  영적인 성숙도란 영적인 진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큰 것에서 작은 것까지 소위 ‘인격’도 따진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별다른 죄를 범한 적이 없던 사람이라 해도 자살을 한다면 그는 자살에 해당하는 죗값을 치러야 한다. 죗값을 치르는 장소는 종교에서 말하는 지옥이 아니다. 죽은 이의 아스트랄체에 조밀도와 영적인 성숙도가 상응하는 곳에서 지겨운 벌을 받게 된다. 

아스트랄계를 여행하던 중 나는 음침한 영역까지 내려간 적이 있었는데, 자살로 죽은 망자가 여러 존재들에게 둘러 싸여 온갖 조롱을 당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망자의 표정은 실로 침울해 보였다. 자살한 망자가 받게 되는 지겨운 벌은 무서운 악마의 고문도 지옥불도 아닌 정신적 고통이다. 폭발할 듯한 모욕감을 억누르며 인내하는 것이었다. 아스트랄계는 감정의 세계다. 여기서 감정과 관련된 고통을 참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닐 것이다. 선택권이 없는 이 망자가 이 곳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오로지 인내다. 인내라는 값진 열매를 얻게 될 때, 지겨운 형벌은 끝이 나고 조금 더 좋은 영역으로 이동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영적인 법칙을 잘 알고 있는 마법사는 절대로 자살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죽은 사람이 아스트랄계에서 영원무궁토록 사는 것은 아니다. 윤회를 하게 된다. 돌고 도는 것, 하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단언컨데 인간은 다시 인간으로 태어날 수밖에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의 영혼은 동물의 영혼과는 다른 시스템을 가졌기 때문이다. 


동물도 죽으면 인간과 똑같이 아스트랄계로 이동한다. 아스트랄계에는 별의별 동물들이 다 있는데 왜 멘탈계에는 존재하지 않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에게는 영, 혼, 육이 있지만 동물에게는 혼과 육만 존재한다. 영이 없는 것이다. 혹자는 동물의 지능과 의식을 논하며 동물에게도 멘탈체가 존재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기본적인 지능과 의식은 아스트랄체에서도 충분히 작동이 가능하다. 동물의 지능은 멘탈적으로 발달이 더딘 갓난 아기와 유사하다. 졸리거나 무엇을 강렬하게 원하며 땡깡 부리는 아기의 감정표현을 생각해보라. 아기는 찡얼대며 운다. 이것이 아기의 의사표현의 한계다. 동물의 경우도 이와 비슷하며 제아무리 개가 영리하다 한들, 그래서 냉장고 문을 열어 주인에게 물을 갖다 줄 수 있다 한들, 주인의 사랑을 한번 더 느끼고 확인하고픈 동물의 감정이자 조건반사일 뿐이다. 

결국 인간은 할당 받은 아스트랄계의 거주지에 살다가 새로운 육체를 부여받고 다시 태어나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영혼의 진동수가 아주 높은 경우에는 멘탈계 또는 더 높은 단계까지 올라가게 된다. 카르마를 지배한 사람들은 아스트랄계를 벗어나 더 높은 차원을 선택해 살 수도 있다. 물론 일반인도 멘탈계를 여행할 수는 있다. 그러나 아스트랄계에 비해 매우 재미없기 때문에 그럴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신비한 저 세상, 아스트랄계

아스트랄계는 풍경이 그야말로 일품이며, 다양한 존재들이 드글거려 혼잡할 정도다. 아스트랄계는 기본적으로 4원소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불의 영역과 물의 영역, 공기의 영역 그리고 흙의 영역 등 크게 네 개의 영역으로 나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영역이 수도 없이 갈라지고 나뉜다. 


모든 귀신이 인간의 영혼이라고 생각한다면 정말 오산이다. 아스트랄계의 각 순수한 영역에는 엘리멘터리(elementary)라는 존재들이 있다. 엘리멘터리는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원소의 진동에 따라 하나 혹은 몇 가지의 속성을 갖는 존재다. 


예를 들어 불의 영역, 불 원소 왕국에 거주하는 정령이 있는가 하면 그 곳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엘리멘터리 왕이 있다. 불 원소 정령은 사람의 형상과 비슷하지만 사람과 다른 특징이 몇 가지 있다. 그들은 전체적으로 마르고 얼굴은 작으며 목은 길고 불의 머리카락을 가졌다. 영적인 세계에서도 서열이라는 것이 확실하다. 저급 엘리멘터리가 있는가 하면 선험 지식이 있고 지혜가 충만한 엘리멘터리도 존재한다. 마법사는 이런 존재를 소환해 도움을 얻기도 한다. 


그 밖에도 다양한 존재가 있다. 진동수가 낮고 조밀도가 뒤떨어지는 영역에는 저급한 엔터티(entity, 영 존재의 통칭)들이 우글우글하다. 다른 영역에는 아름다운 형상을 띤 존재들이 있는 반면, 대개 이런 저급한 곳의 존재들은 벌레나 파충류의 형상들이 많다. 진드기 모습, 커다란 거미나 뱀, 징그러운 인간 형상 등등 종류도 가지각색이다. 

이처럼 고급 영역과 저급한 영역의 차이는 바로 ‘진동’에 그 비밀이 있다. 
“아스트랄계는 종종 제4차원이라 표현되곤 하는데, 4원소로 창조되었으며 따라서 조밀도(Dichtigkeitsgred / density)가 다른 아카샤 원리이다. 결국 아스트랄계는 근원과 규칙, 생명을 갖는 모든 것의 기초가 된다. 또한 물질계에서 과거에 일어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의 기초이기도 하다. 앞에서 말했듯이 아카샤는 가장 미세한 형태를 띠고 있는 에테르이다.

에테르는 서로 다른 물질들 사이에서 전기적, 자기적 진동을 전달하는 물질이다. 따라서 아카샤는 진동의 영역이다. 여기서 빛, 소리, 색, 리듬, 그리고 모든 피조물의 생명이 탄생한다. 이처럼 아카샤는 모든 존재의 근원이기 때문에 모든 것은 그 안에서 자신의 반영물을 발견할 수 있다. 과거의 모든 것, 현재의 모든 것, 미래의 모든 것이 그 안에 반영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아스트랄계 안에서 시작도 끝도 없으며 시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는 영원자Ewige / the eternal의 방출을 볼 수 있다. 아스트랄계에 들어선 수행자는 과거든 현재든 미래든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언제쯤 이러한 지각 능력을 갖게 될지는 자신의 완성도에 달려 있다.” (헤르메스학 입문 p.61)

아스트랄계의 조밀도는 멘탈계보다는 떨어지고 물질계보다는 훨씬 높다. 에테르는 서로 다른 물질들 사이에서 전기적, 자기적 진동을 전달하는 물질이다. 이 법칙은 아스트랄계에서도 동일하다. 

예언 능력이 뛰어난 마법사에게 제자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미래를 잘 볼 수 있는 방법을 캐묻자 짜증이 날 때로 난 마법사는 비밀을 제자들에게 폭로한다. “아스트랄 빛을 읽어라. 아스트랄 빛을 읽을 수 있다면 과거와 현재는 물론 머나먼 미래까지도 쉽고 간편하게 알 수 있다!” 


소위 뛰어난 영매라고 알려진 사람의 경우, 영매 자신이 뛰어나서 예언을 잘 하는 것이 아니라 옆에 붙어있는 영적인 존재가 아스트랄 빛(아카샤)을 읽어 정보를 주는 것이다. 아카샤(에테르)는 모든 우주의 기억 저장소로 가장 높은 영역에서 가장 낮은 영역에 이르기까지 그 내면의 빛을 발산하게 되어 있다. 귀신은 이 빛을 빠르게 훑어 읽고 영매에게 정보를 주는 것이다. 아스트랄 빛이라 해도 낮은 차원의 아카샤에 속하니 정보 또한 저급할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신기해 하며 맹신하게 된다. 그러나 아스트랄 빛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마법사는 ‘모든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아스트랄계는 이처럼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시간을 초월한 곳, 아스트랄계

“인간은 육체라는 껍데기를 벗어나는 즉시 ‘저 세상’이라고 불리는 제 4차원에 가게 된다. 물이 없으면 물고기가 살 수 없듯, 어떤 존재도 연결체 Vermittlungstoff / mediating substance 없이는 3차원 공간에서 살아갈 수 없다. 망자들에게도 동일한 원리가 적용된다. “ (헤르메스학 입문 p.227)

그렇다. 육체의 껍데기에서 영혼이 분리되면 그 영혼은 3차원인 물질계에서 살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물질계에서 서성대는 존재들은 무엇인가? 사실 우리 주변에 나타나는 영혼들은 3차원인 이 물질계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낮은 아스트랄 차원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 그들은 물질계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아스트랄계에 속하며 아스트랄계에 있는 것이다. 단지 낮은 아스트랄 차원이 물질계와 겹쳐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낮은 아스트랄 차원이 그들의 거주지일 리는 만무하다. 아스트랄계에 이들의 진동과 상응하는 원래 거주지는 따로 있고, 이들은 단순히 물질계를 배회하고 싶은 마음에 낮은 아스트랄 차원을 철창 삼아 돌아다니는 것이다. 


하지만 비록 이들이 낮은 아스트랄 차원에 있다 하더라도 물질계에 힘을 행사할 수 있다. 만약 사람을 괴롭히고자 한다면 아무런 망설임 없이 쉽게 괴롭힐 수 있을 정도로 이들은 자유분방하다. 

그럼 이들은 누구인가? 세상에 대한 온갖 사리사욕과 미련이 많은 인간의 영혼, 그리고 인간이 아니었던 다른 영적인 존재로 나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 자세히 소개하겠다.) 먼저 망자의 경우는 혼자 혹은 여럿이서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즐기다가 이것이 질리면 좀더 재미있는 것을 찾아 헤맨다. 먼저 자신의 친구나 가족을 찾아갔다가, 이참에 평소 들러 보고 싶었던 곳을 마구 돌아다닌다. 아스트랄 차원에서의 여행은, 다시 말해 영혼은 시간에 구애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아스트랄계는 공간에는 제한을 받되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영혼의 이동은 정말로 순식간이다. 꿈에서 내리막 길이나 긴 계단을 점프해서 넘어가거나 날아다니듯 내려가 본 적이 있는가.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유체이탈을 자주 경험하는 사람은 알겠지만 상상을 초월한다. “어떻게, 무슨 수단으로 이동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로 순식간이었다. 나는 서울에 사는 친구를 급히 만나려고 했을 뿐이다.” 부산에 살았던 유체이탈 경험자가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서울로 순식간에 이동을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영혼의 이동은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는다. 마음만 먹으면 순식간에 한국에서 일본으로, 미국으로, 아프리카로도 갈 수 있으며 심지어는 지구를 순식간에 몇 바퀴라도 돌 수 있다. 


아스트랄계는 시간의 개념을 상실한 것이 아니라 시간의 개념을 ‘초월’해 버린 것이다.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아스트랄계에서 활동하는 것은 영혼이며, 영혼은 시간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어떤 영혼은 자신의 삶을 한탄하며 무당을 찾아 가기도 하고, 무당이 도움을 받기 위해 이런 영혼을 찾는 경우도 있다. TV에서 무당 몸에 실린 영혼이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거나 울며 광분하고 괴상한 말을 늘어놓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아스트랄계에 속해 있는 영혼들은 언제나 감정적일 수 밖에 없다. 아스트랄계는 ‘감정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늘 할 말은 많고 그 동안 있었던 괴상한 일들을 무당의 입술을 빌어 한꺼번에 다 말하려다 보니 억울한 감정이 증폭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처음 영매의 입을 빌어 말할 기회를 얻은 영혼은 광분하며 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영혼이 있는가 하면 장난으로 혹은 원한을 갖고 사람 몸 속으로 들어가는 영혼도 있다. 이것을 ‘빙의’라고 한다. 자신의 영혼과 닮은 사람의 몸 속에 즐겨 들어가서는 생전에 자신이 했던 행동을 다시 흉내내거나 죽기 전에 받았던 충격적인 사건을 계속해서 표출함으로써 자신의 의지를 밝힌다. 자신을 알아봐 달라는 외롭고 고달픈 한 영혼의 일종의 시위 같은 것이다. 

하루는 변태적인 성향이 충만한 영혼을 본 적이 있다. 그 자는 아주 귀여운 강아지 속으로 자신의 영혼을 집중시키고 들어가서 사람이 많은 길거리를 배회하곤 한다. 주로 젊은 여성들의 치마 밑을 지나가곤 하는데, 운이 좋으면 귀엽다고 안아주기까지 하는 여자들을 만나기도 했다. 이 변태 영혼은 이런 것에서 쾌락을 느끼고 즐기는 듯 했다. 인간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인간으로 밖에 태어날 수 없다. 이 변태 영혼은 개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단지 개 몸 속으로 들어간 것뿐이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했던가? 웃기는 말이다. 죽어도 안 변한다. 


영혼의 경우, 이처럼 개는 물론 어떤 사물에라도 들어갈 수 있다. 주로 인간의 형상을 닮은 인형 몸에 자주 들어가며 오래된 고목나무나 조각상은 물론 들어가지 못할 것이 없다. 

물질계보다 훨씬 높은 진동을 지닌 세계, 시간을 초월해 버린 세계. 아스트랄계는 실로 방대하며 불가능이란 없는 세계다. 따라서 이 세계에 사는 존재들은 그들이 인간으로 태어난 적이 있든 그렇지 않든 물질계의 인간과는 다르다. 도움을 줄 수도 있지만 큰 해를 입히기도 한다. 이들 존재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서 소개하도록 하겠다.


박영호 / 파리 카톨릭대학, 파리 제4대학에서 종교학과 고대 오리엔트언어를 공부했으며, 동대학 특수종교학 대학원에서 관련 연구에 참여했다. 동방성당기사단(O.T.O.)에 입문하여 서양 전통 제식마법과 헤르메스 철학의 비전을 전수받았다. 번역서로 <헤르메스학 입문>이 있다.



본 칼럼은 네이버 까페 ‘아르고나우트’에서 연재된 칼럼으로써, 오컬트를 공부하고 수행하는 여러분을 위해 준비된 것입니다. 게시된 글을 퍼갈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셔야 합니다. 원문을 그대로 또는 수정 및 가감하여 강의 및 저작에 이용하는 경우 법적으로 대응할 수 있음을 분명히 밝힙니다.

[칼럼] 귀신, 그리고 아스트랄계 이야기(1)

수많은 세월 동안 사람들은 귀신에 대해 호기심과 의문을 품고 끊임없는 조사와 연구를 되풀이 해왔다. 그러나 귀신의 존재여부는 21세기인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물론 심령학적으로 영적인 존재에 대해 많은 증거와 자료를 남겼지만 현대 과학의 입장은 여전히 “납득불가”다.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여전히 귀신의 존재 여부에 대해 호기심을 품고 알고 싶어하는가? 의외로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한다. ‘나는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나도 죽으면 귀신이 되는가’, ‘정말로 저 세상은 존재하는가’ 이런 질문은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와 맞닿아 있다. 사실 많은 과학자와 철학자조차 이런 질문엔 난처하기 그지없다.

정말 귀신은 있을까?

사실 귀신이 존재한다-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언쟁은 그 자체로 너무나 모순적이다. 흔히 귀신을 봤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흰 소복, 검은 형체, 작은 불빛 등이 있고 좀 더 자세히 본 이들은 ‘분명 사람 같지만 사람이 아닌 느낌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 귀신을 부정하는 이들은 ‘피곤해서 헛것을 본거야’, ‘오버하지마! 그거 다 내가 키우는 거야’ 라는 등으로 받아친다.
귀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말은 우리에게 영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과 동일하다. 만일 당신이 버젓이 살아있는데 다른 이들이 당신을 보고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말한다면? 당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제3자가 당신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면? 한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 당신을 소개하면서 사기는 물론 온갖 잔인 무도한 살인을 일삼았으며 마약을 복용하고 자살을 했다고 말한다면? 그렇다면 당신의 심정은 어떻겠는가? 이것은 엄연한 명예훼손이다. 다른 영적인 존재들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영혼조차 믿지 않는다. 죽으면 그만 아닌가’ 라고 생각하는 분은 그냥 재미로 들어 보시라.

일단 ‘정말로 귀신이 있을까?’라는 질문에 답해 보기로 하자.

귀신에 대한 이야기는 공감대가 형성되기 참 힘들다. 본 사람은 끝까지 봤다고 우기고 못 본 사람은 지겹도록 없다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되받아 치며 싸운다. 마치 물과 기름처럼 말이다. 우선 내가 지리산에 있었을 때 이야기를 들려줄까 한다.

한번은 지리산 뱀사골에 있는 한 민박집에서 하룻밤을 보낸 적이 있었다. 그 민박집은 겉보기에도 거의 폐가 수준이었고 주인도 음산해 보였다. 방을 잡고 들어서는 순간 노린내와 음식물 썩은 냄새에 깜짝 놀라 방을 살펴 보았다. 피부병이 걸린 듯한 모습의 한 할머니 영혼이 홀로 구석에서 턱을 괴고 앉아 있었다. 할머니 귀신은 날 보자마자 지겨운 듯한 표정을 보였다. “뭐여? 저건 또?” 난 눈으로 인사를 했고 할머니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금 후 할머니의 언성이 높아졌다. “아니 긍께 시방 나가 죽었다능겨? 니 뭔 야그를 고로코롬 험하게 했싸냐? 아따 시방 고것이 헐소리다냐?” 분노한 할머니는 이곳은 자기 집이니 어서 빨리 나가라고 집이 떠나가라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 할머니는 1982년 겨울에 서울로 올라간 두 아들을 마냥 기다리다 지병으로 죽었다. 둘째 아들은 어딜 갔느냐고 물어보니 할머니는 이렇게 대답했다. “카수한다는 지 성 찾아 서울 질로 올라갔지”, 큰 아들은 가수의 꿈을 안고 서울로 올라갔고 걱정이 된 할머니의 부탁에 따라 둘째 아들은 형을 찾아(잡으러) 서울로 올라갔다. 몇 달이 지나도 두 아들의 소식이 없자 할머니는 홀로 서울로 상경해 두 아들을 찾고 또 찾다가 혹시라도 집으로 돌아올까봐 고향으로 돌아와 두 아들을 마냥 기다렸다고 한다. 그러다 지병으로 홀로 쓸쓸하게 죽은 것이다. 세월이 흘러 할머니의 집은 약간의 공사를 거쳐 작은 가게가 되었으나 할머니의 부정적인 영향으로 가게는 거의 망해가고 있는 상태였다. 가게 주인의 부탁으로 인근에 있는 한 무당이 그 집에서 굿을 한 적이 있었는데, 할머니를 별로 설득하지 못한 것 같았다. 결국 그 가게는 망했고 몇 년이 지나 지금의 민박집이 된 것이다.
이 할머니는 귀신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경우다. 할머니 성향을 보건대 두 형제에 대한 사랑과 걱정이 많고 세상에 대한 한이 너무도 많았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위 사례를 들어 귀신에 대해 좀 더 알아보자.

나 동굴이 있거나 한 쪽으로 세차게 흐르는 물이 있는 곳이라면 어지간하면 귀신이 하나씩은 있다. 그 민박집도 그랬다. 남쪽을 가로질러 북쪽을 향해 수맥이 흘렀고 수맥이 흘렀던 그 지하, 바로 윗방의 구석진 자리가 할머니 영혼이 앉아 있던 자리였다. 내가 방문을 열자마자 할머니는 쾨쾨하고 역한 냄새로 자신의 영역임을 나타냈다. 자신을 방어하는 수단으로 나를 쫓아낼 심산이었다. 이런 방법이 매번 통했던 모양이다. (이 방법은 주로 노인네 귀신들이 즐겨 쓰는 방법이다.)
할머니는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집에 들어오는 것이 정말 이상했을 것이다. 내가 방에 들어섰을 때 할머니의 지겨운 듯한 표정은 아마도 “또 왔네?”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 집은 민박집이었지만 할머니 입장에서는 엄연히 자기가 살고 있는 집에 뜨내기들이 찾아드는 격이었다. 할머니 외에도 다른 귀신들이 많았지만, 그 할머니는 자신이 왕인 듯 모든 영향력을 행사하곤 했다. 그 집 주인의 권리로 말이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내가 죽었단 말인가?”라는 할머니의 말이다. 그렇다. 할머니는 자신이 죽었다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정말 이렇게 영화 같은 일이 실제로 벌어질 수 있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일들이 가능한지 알아보도록 하자.

‘저 세상’을 이해하려면

“인간은 신의 진정한 반영물로, 우주와 동일한 형상으로 창조되었다. 우주 안의 모든 거대한 것들이 축소된 크기로 인간 안에 반영되었다. 그래서 우주를 가리켜 ‘대우주라 하고 인간을 가리켜 ‘소우주’라 하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연의 전체 과정이 인간 내부에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헤르메스학 입문 p42)

이 우주(세계)는 3차원의 세계, 즉 물질계, 아스트랄계, 멘탈계로 구성되어 있다. <헤르메스학 입문>에서 인용했듯이 인간은 신을 모델로, 우주와 동일한 형상으로 만들어진 소우주이다. 헤르메티카(Hermetica)의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 그러하다’라는 유명한 구절이 떠오르지 않는가.
또한 인간의 경우 육체 안에 아스트랄체가 있고, 아스트랄체 안에 멘탈체가 있다. 이것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인간 몸 속에 뼈가 있는 것처럼 실제로 인간의 몸(육, Physical Body) 속에 아스트랄체(혼, soul)가 있고 아스트랄체 안에 멘탈체(영, spirit)가 있다. 이것이야말로 오컬트 체계에서 바라보는 일반적인 인간의 기본-구성 개념이다. 다른 신비주의 체계에서도 용어는 조금씩 다르지만 뜻하고 지향하는 바는 거의 모두 일맥상통한다.

한편 인간의 육체에는 전자기적 흐름이 존재한다. 전자기적 흐름은 쉽게 말해 기(氣)의 흐름을 말하며, 전자기적 흐름은 양(+)과 음(-)으로 나뉜다. 실제로 과학과 의학에서는 우리 몸에 어떠한 에너지장이 흐른다고 말하는데, 그 에너지장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이러한 전자기적 흐름이다. 이 전자기적 흐름이 인체 외부로 발산되는 것을 생명에너지(vital energy)라고 부른다.
나는 김치를 담그는 아주머니들 손에서 생명에너지가 방출되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한데 모여 깔깔거리며 만들던 정성 어린 김치. 남편과 자식들 건강을 생각하며(이것은 마법에서 말하는 심상화와 연결된다. 가족을 생각하는 강력한 생각의 진동이 또 하나의 강력한 에너지를 만들어 생명에너지와 함께 김치 속으로 들어간다.) 만들던 김치에 사랑으로 충만한 생명에너지가 충전된 것이다. 우스갯소리지만 이것이 한국 김치의 비밀이 아닐까 한다.

온 우주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또 하나 알아 두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원소에 대한 것이다. 온 우주는 아캬샤(에테르)와 4원소로 이루어져 있으며, 우리 인간 또한 4원소로 이루어져 있다. 심지어는 신까지도 원소에 상응되니 이치에 따라 어찌 원소를 빼놓고 넘어갈 수가 있겠는가? 마법을 공부하는 초심자에겐 까발라(Qabbalah)의 세피로트(sephiroth), 각 세피라(sephirah)의 대응 조사와 더불어 원소의 상응성 연구는 가장 필수적이다.

아캬샤(에테르)와 원소(element)는 가장 높은 상위 차원에서부터 우리가 살고 있는 물질계까지 내려와 존재하고 있다. 4원소를 규정짓는 궁극의 원인은 바로 아카샤(Akasha)이다.
아카샤는 창조되지 않았고 스스로 생겨났으며 그로 인해 나머지 4개의 원소가 존재할 수 있다. 마치 유대 까발라의 아인 소프(Ain-Sof)와 같은 개념이다. 아카샤는 제5원소이며 인간의 머리로 정의할 수 없는 원인의 영역이다. 많은 종교가 신이라 부르는 존재는 아카샤 원리에서 비롯되었다. 또 진정한 에테르는 인간의 근본물질, 피와 정액 속에 숨어있다. 이밖에 각 원소의 특성에 대해서는 <헤르메스학 입문> 36~39쪽을 참조하기 바란다. 또한 우리 신체 안에서 원소가 우주보편법칙에 따라 행하는 특정 기능에 대해서는 <해르메스학 입문> 44쪽을 참조하기 바란다.

귀신은 있다!

이렇게 원소는 우리 몸을 구성하고 각 부분에 상응한다. 귀신을 본 사람들은 하나 같이 “귀신은 발이 없어요.” 라고 말한다. 정말로 귀신의 발은 없는 걸까? 인간의 머리는 불 원리에, 가슴은 공기 원리에 그리고 배에서 생식기까지는 물 원리에, 온 몸의 뼈와 살은 흙 원리에 속한다. 귀신의 발에 대한 진실을 알려면 기본적으로 이 개념을 숙지해야 한다. 귀신을 본 사람들의 말을 정리해보자. 발이 없다. 땅을 딛고 서 있지 않고 공중에 떠 있다. 상체가 제일 잘 보인다. 이 이야기들의 진실은 이렇다. 영혼의 형체 중 가장 밝게 빛나는 곳은 사하스라라(Sahasrara chakra, 정수리)이다. 머리 윗부분의 빛이 영혼의 주변에서 빛나기도 하며 허리 밑까지도 내려오는데, 그 빛의 세기는 영혼의 성숙도와 아스트랄체(혼)의 조밀도와 멘탈(영)의 조밀도에 달려있다. 다시 말해 힘이 약한 귀신은 빛의 세기도 약하기 때문에 발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분명 ‘귀신은 발이 있다’.
귀신이 땅을 밟고 서 있지 않고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빛의 세기가 약하기 때문에 나온 말인가? 물론 아니다. 귀신은 아스트랄계를 기준으로 가장 낮은 아스트랄 차원에서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것이다. 이 낮은 아스트랄 차원은 우리가 사는 물질계와 겹쳐있다. 이러니 사람들 눈에는 귀신이 공중에 떠 있는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귀신이 공중에 뜰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들은 공중에 뜰 수도 있으며 이리저리 날아다닐 수도 있다.

한편 귀신 중에는 자신의 육체가 죽은 것을 아는 귀신도 있고 모르는 귀신도 있다. 내 경험으로는 반반인 것 같다. 앞에서 언급했던 지리산 할머니 귀신이 좋은 예일 것이다. ‘자신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격분을 하는 할머니 귀신은 자신이 죽었는지 정말로 몰랐던 것이다. 실제로 영적인 수행을 하지 않은 사람은 죽은 다음에 아스트랄체의 감각과 이전의 육체 감각 사이에서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이 죽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육체의 호흡과 아스트랄체의 호흡은 다르며 멘탈체의 호흡도 다르다. 다시 말해 영혼의 호흡은 육체의 호흡과는 다르다. 영적인 수행을 통해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당연히 자신이 죽어서 영적인 호흡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제 맨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사람이 죽으면 귀신이 되는가?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면 의심의 여지 없이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인간은 죽으면 아스트랄계로 간다. 영혼이 스르륵하며 순식간에 빠져 나오는 영화 장면을 본 적이 있는가? 정말로 사람이 죽으면 그처럼 영혼이 몸에서 스르륵 하고 빠져 나온다. 이것이 곧 귀신이다. 그러나 나는 물질계에 사리사욕을 품고 떠돌아 다니는 존재들만 귀신이라 부르고 싶다.
육체 안의 모든 원소들이 파괴되고 아스트랄·멘탈 매트릭스가 사라지고 은선이 끊어진 상태를 의학적으로 진단해보면 곧 ‘사망’이라는 결과가 나온다. 혼(魂)의 전자기적 흐름인 아스트랄 매트릭스는 혼의 껍질, 혼의 이음막이라는 뜻으로, 아스트랄체와 육체를 연결하는 연결체, 초강력 본드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멘탈 매트릭스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정수리 부분에 위치하고 있는 은색 빛의 얇고 긴 줄은 은선(silver cord)이다. 만약 멀쩡한 사람의 은선이 갑작스럽게(ex. 단순한 사고나 쇼크) 끊어지면 그 사람은 심장발작으로 사망한다. 그만큼 은선은 영혼과 육체를 잇는 중요한 부분이다.

한편 육체에서 영혼이 빠져 나올 때 아스트랄체(혼) 따로 멘탈체(영) 따로 분리되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육체 안에서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스트랄체(혼) 안에 멘탈체(영)를 싣고 몸 안에서 그대로 빠져 나온다. 그런데 이렇게 순식간에 영혼이 빠져 나올 때 미세한 진동을 느낀다. 유체이탈을 자주 경험하는 이들이 느끼는 이상한 진동이 바로 에테르의 진동이다. 영혼이 빠져 나오고 죽어있는 자신을 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넋을 잃고 있는 동안, 자신의 죽은 가족이나 지인의 영혼이 그에게로 다가온다. 더 사실적으로 말하자면 그들은 그가 죽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임종 직전에 미리 그의 곁에 다가오는 것이다. 이들이 바로 곧장 죽을 사람이 그토록 두려워하는 저승사자라고나 할까. 물론 그들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경우는 영적인 가이드가 임무를 맡는다. 죽은 자의 수호천사나 주변에 있는 선한 존재들이 그를 저 세상으로 안내하는 것이다. 이것도 아니라면 스스로 빛을 따라 아스트랄계로 입성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죽어서 가는 미지의 저 세상, 보통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저 세상’은 바로 아스트랄계다. 아스트랄계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 계속하기로 하자. 


박영호 / 파리 카톨릭대학, 파리 제4대학에서 종교학과 고대 오리엔트 언어를 공부했으며, 동대학 특수종교학 대학원에서 관련 연구에 참여했다. 동방성당기사단(O.T.O.)에 입문하여 서양 전통 제식마법과 헤르메스 철학의 비전을 전수받았다. 번역서로 <헤르메스학 입문>이 있다.

본 칼럼은 네이버 까페 ‘아르고나우트’에서 연재된 칼럼으로써, 오컬트를 공부하고 수행하는 여러분을 위해 준비된 것입니다. 게시된 글을 퍼갈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셔야 합니다. 원문을 그대로 또는 수정 및 가감하여 강의 및 저작에 이용하는 경우 법적으로 대응할 수 있음을 분명히 밝힙니다.



[칼럼] 카발라 10세피로트, 그들은 누구인가?

*첫 번째

이 세피라(Sephirah)는 아인 소프(Ain Soph)의 첫 충돌의 결과물이다. 신의 최초 의지인 것이다. 천상의 삼각형에 속하는 이 세피라는, 중앙기둥의 맨 꼭대기에 자리하고 있으며 그 안에서는 무한한 빛의 소용돌이가 우레 같은 굉음을 내며 폭주하는 톱니바퀴처럼 돌고 돈다. 무한한 창조의 에너지를 방출하면서 말이다. 이 세피라의 힘과 영역을 대표하는 대천사는 메타트론(Metatron)이며 상응하는 신의 이름은 에흐예(EHYEH)다. 아담 카드몬의 머리이자 왕관 혹은 면류관을 의미하는 이 문제의 세피라는 누구인가?
그는 케테르(KETHER)다. 

*두 번째

외눈박이의 희고 빛나는 머리카락이 휘몰아치며 왕관에 엉키는 바람에 폭주했던 톱니바퀴가 일시적으로 멈춘다. 이 멈춤을 틈타 톱니바퀴 축의 거대한 바늘이 최초로 아인 소프에게서 고개를 돌린다. 이때 신성한 빛이 다른 공간으로 확장하여 천상의 아버지 즉 아담 세피라를 창조한다. 아직 마르지 않은 대지가 눈이 밝아져 회색 빛 남근을 토해냈다. 그것이 번뜩이며 숨구멍을 통해 완전한 호흡을 시작하고 역동적으로 팽창과 수축을 반복했다. 이윽고 호렙산 반석이 갈라져 생명수가 터져 나오듯, 그 요동치는 힘에 의해 창조 에너지가 최초로 의지를 갖게 된다. 다시 말해 이 세피라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레쉬트(Resht-창조) 본성이 자각된 것이다. 스스로 존재하는 자, 에흐예(EHYEH)의 근원적이며 완전한 에너지가 줄기의 확장을 붙들어 잡고, 빛과 어둠 속의 공기를 찢고 폭발한다. 그 통로 속에서 세차게 굽이쳐 흘러, 지혜를 통해 아직 드러나지 않은 그녀를 조명한다. 이렇게 하여 그는 뭇 별의 아버지로서 자비의 기둥(Pillar of Mercy)의 최고 황제가 된다. 덥수룩한 수염을 자랑하는 이 세피라는 스타루비와 터키옥에 상응하며 신의 이름으로는 예호바(JEHOVAH)이다. 그는 누구인가?
그는 호크마(CHOKHMAH)다. 

*세 번째

천상의 삼각형, 아찔루트(Atziluth)가 막 완성되었을 때, 그 삼위일체 중 가장 고통스러운 세피라가 있었으니, 그녀는 천상의 어머니다. 이 침묵의 여인이 오랫동안 숙고하고 기다린 끝에 검은 베일의 장막을 걷어낸다. 호크마에게 받은 지혜의 샘물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다. 양수가 터진 것이다. 그것이 넘치고 범람하여 순식간에 일곱 질그릇(세피라)을 채우고 살찌웠다. 그러나 말쿠트와 달리 이 무정한 어미의 손길은 여기까지다. 창조의 7일. 이런 이유로 그녀는 여성의 자궁으로 상징되며 공의의 기둥(Pillar of Severity)에 우뚝 솟아나 있다. 이 세피라는 토성과 납 그리고 진주에 상응하며 신의 이름으로는 예호바 엘로힘(JEHOVAH ELOHIM)이다. 그녀는 누구인가?
그녀는 비나(BINAH)다.

*네 번째

대우주의 합일이 천사들을 통해 기록되고 근원의 질료(빛)로 낮과 밤이 나눠질 때, 소우주의 첫째 날은 다음과 같다.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은 세 별(대우주)과 일곱 별(소우주)의 나뉨이자 새로운 시작이요. 때이른 봄이다. 이 나눠진 공간적 거리에는, 측량할 수 없는 베일의 너울이 드리워져 있다. 올리브 나뭇가지가 그 너울을 찢고 심연을 가로질러 길게 가로놓여 있으며 그 끝에는, 지혜와 이해의 합일을 통해 창조된 자가 있었으니. 이는 방출의 압력을 적통으로 이어받은 그들의 막내 아들이자 때가 되어 드러난 세피라다. 그가 올리브 나무를 포도주로 적시고 유니콘 뿔로 세공을 거친 뒤 그것에 이름을 주고 축성하여 마법 지팡이를 만들었다. 이는 전체 세피로트 즉 대우주와 소우주의 창조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줌과 동시에 바로 그 자신을 말한다. 그는 순종으로 바다의 어깨를 받드는 자요. 작은 바닷물이며 그 안의 소금이자 정수라. 
그는 왼손으로 마법 지팡이를 드높이 들고 자비 아래 감당치 못할 신성한 에너지를 방출한다. “빛이 있으라!” 확장(+, 생산력)으로서의 자신(남성원리)이다. 첫 번째 삼각형의 의지를 실현케 함인 것이다. 그는 자비의 기둥의 중심이며 왕좌의 주인이다. 그는 그의 초점에서 벗어나지 않은 자, 그들을 사랑하고 사랑하며 또 사랑할 것이다. 미크로프로소푸스(Microprosopus) 세피로트 그는, 두 번째 삼각형의 시작이요, 목성과 사파이어에 상응하며 신의 이름으로는 엘(EL)이다. 그는 누구인가?
그는 헤세드(CHESED)다.

*다섯 번째

공기 중 폐, 루아흐(Ruach)가 달콤한 담배를 피워 연기를 흩뿌리니 그것이 구름 기둥이 되었다. 담뱃불을 다섯 번째 질그릇에 털었을 때 문제가 생긴다. 네 번째 질그릇에 이어 다섯 번째 질그릇에도 물이 범람했고 담뱃불은 불기둥이 되어 그 가운데로 솟아 올라 온 바다가 펄펄 끓었다. 달궈진 질그릇에서 빠져 나오는 천사들을 뒤로하고 루아흐가 수면 위에 고요히 섰다. 그가 불기둥을 뽑자 요동치던 바다의 비명이 잠잠해졌다. 이윽고 무서운 진동과 함께 바다가 일어나 둘로 나눠졌고 그 하나를 천사들이 들어올려 우주에 펼쳐 하늘을 만들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다. 이 극적인 나뉨은 불 중의 물이요. 물 중의 불인 이 세피라, 그 자 안에서 가능케 된다. 그는 완벽한 통제를 통해 이 세계의 질서를 바로 잡는다. 결코 잠들지 않으며 지치지 않는다. 불의 눈알을 굴리며 장엄한 구령에 맞춰 오른손에 번뜩이는 검을 들고 냉정한 심판을 내릴 것이다. 이 영역의 천사, 관대하지 하지 않은 신의 종 카마엘(Kamael) 또한 용서치 않고 그 심판에 동참할 것이다. 그는(여성원리) 불필요한 모든 것을 제거(-, 파괴의 흐름)한다. 이는 신성한 의지의 수축이다. 그는 브리아(B’eriah)의 세피라이자 공의의 기둥의 중심이며 무자비한 여왕이다. 화성과 철, 루비에 상응하며 신의 이름으로는 엘로힘 기보르(ELOHIM GIBBOR)이다. 이 붉은 세피라는 누구인가? 
그는 게부라(GEBURAH)다.

*여섯 번째

양 팔을 벌리고 고난을 맞이할 자 누구인가?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느님의 어린 양이로다. 이는 왕이 홀로 그 작은 얼굴을 들어 올려 도덕의 삼각형을 완성시키기 위함이다. 그는 올리바눔 향이 나는 십자가에 올라, 머리에는 가시관(케테르)을 쓰고 왼손에는 헤세드를 그리고 오른손에는 게부라를 들고 양 팔과 다리(말쿠트)는 커다란 못(바브Vav)에 고정된다. 터질 듯 부풀은 그의 가슴에는 붉은 장미가 피어나고 그 속엔 황금 육각별이 빛난다. 온 대지가 슬픔으로 진동하고 성소의 휘장이 찢어진다. 진정한 산제물, 희생을 통해 깨닫는 지혜는 정금보다 귀하다. 그는 헤세드와 게부라의 폭주를 제어하여 우주의 균형을 바로 잡는다. 공기원소, 치유의 대천사 라파엘(Raphael)이 이 영역을 관장하며 태양과 금, 토파즈가 여기에 상응한다. 신의 이름으로는 테트라그람마톤 엘로아 베다트(TETRAGRAMMATON ELOAH V’EDAAT)가 있다. 그는 누구인가? 
그는 티페레트(TIPHERET)다.

*일곱 번째

낮에는 태양의 젖꼭지가 빛을 발하고 밤에는 달의 활시위가 팽팽해지니.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창조의 넷째 날이다. 저 산 밑의 새벽별을 등지고 일곱 번째 성배에 기어들어 가는 여인을 보라. 어두운 성배 안에서 장미 가시를 씹어먹으며 간절히 기도한다. 그녀가 수없이 잘라낸 젖먹이들의 그림자마저 고요하다. 그들에게 그녀는 단지 ‘눈깔 새 파먹은 년’일 뿐이다. 뼈에 사무치는 고통이 박자에 맞춰 그녀의 어깨를 쉼 없이 들썩이게 한다. 신의 부재, 그것은 그녀로 하여금 인내를 푸석하게 만들었다. 하루에도 156번이나 설렘과 고통의 경계 속으로, 알파와 오메가의 지점을 수없이 오르고 내리게 했다. 천둥 번개가 공허하기 짝이 없는 새벽 하늘을 가르고 그녀의 발버둥과 슬픔을 대신한다. 비가 내렸고 성배 안에는 에메랄드 장미가 돋아난다. 이는 우라노스(Uranos)의 찢겨진 남근이 흰 거품(근본물질/에테르)을 내며 바다 위에 떠올랐고 거품이 응축되어 아프로디테(Aphrodite)가 창조된 것과 같은 이치다. 여기서 이 세피라(자비의 기둥)는 우주적/개인적 신앙과 예술 등의 범주에 속하는 마법적 파워를 관장한다. 소우주의 확장 본능(남성원리)을 카멜레온처럼 구사하는 그는, 언제나 모든 오컬티스트들의 거룩한 마약이다. 금성 영역, 사랑과 조화의 대천사 하니엘(Haniel)이 이 세피라의 힘을 대표하며 신의 이름으로는 예호바 쩨바오트(JEHOVAH TZEVAOT)이다. 그는 누구인가?
그는 네짜흐(NETZACH)다. 

*여덟 번째

토라(Torah)에 대한 논증으로 열띤 토론이 한창인 랍비들의 혀는 달궈진 지성이어라. 철학의 해방이여, 견고한 카발라 성전을 설계하라. 우리와 토론할 자, 현자의 낙타를 먹어라. 오렌지의 맛이다. 서로의 철학을 뽐내며 경쟁자의 턱수염을 찌그러뜨린다. ‘내가 옳다, 내가 옳다. 내가 제단 숯불 위에 앉아 이론을 증명하리다. 진정한 오아시스를 찾으시오? 불타는 사막의 건조함이여. 내 배꼽 속에 고인 땀이 바로 그 오아시스요!’ 검증의 대가로 검은 사막이 랍비를 새카맣게 삼켰다. 완벽히 분석하는 지성, 여성원리의 수동성, 모든 오컬트의 이론을 상징하는 이 세피라는 공의의 기둥 꼬리에 위치하며 불 원소의 대천사 미하엘(Michael)이 이 영역을 관장한다. 수성과 수은이 이 세피라와 상응하며 신의 이름으로는 엘로힘 쩨바오트(ELOHIM TZEVAOT)가 있다. 그는 누구인가?
그는 호드(HOD)다.

*아홉 번째

토기장이가 첫 사람 아담과 하와를 빚을 때, 빛의 흐름이 예찌라(Yetzirah)를 채웠고 비로소 세 번째 삼각형이 완전한 모습을 드러냈다. 매일 밤, 우물 앞에 나란히 앉아 스크라잉(scrying)하는 세 존재가 있는데, 검은 로브를 입은 자는 과거를, 회색 로브를 입은 자는 현재를, 자주색 로브를 입은 자는 미래를 본다. 이따금 그 세 존재는 얼룩 코끼리를 타고 잠자는 뭇 별을 흔들어 괴롭히기도 한다. 그들은 아스트랄 차원의 마법 능력, 특히 사이킥 비전의 비밀을 알고 있다. 초보 마법사가 자스민 차를 선물로 준비하고 그들을 찾아간다면 분명 멋진 마법을 가르쳐 줄 것이다. 이 영역의 힘을 대표하는 자는 물 원소의 대천사 가브리엘(Gabriel)이며, 달과 은이 이 세피라에 상응한다. 신의 이름으로는 샤다이 엘 하이(SHADDAI EL CHAI)가 있다. 그는 누구인가?
그는 예소드(YESOD)다.

*열 번째

아담 카드몬이 발을 뻗은 곳, 그곳이 앗시야(‘ASSIAH) 마지막 세피라, 4원소 왕국이다. 신의 방출이, 창조의 빛이 마지막 질그릇을 가득 채우고도 남아 생명나무의 밑거름이 된다. 신의 여성원리, 비의적인 어미니(쉐키나)가 4원소 왕국에 거하니. 그녀가 바로 바발론의 음녀라. 놋뱀이 박하잎벌레 열 마리를 씹고 또 씹는다. 그녀가 대지의 맥박을 짚어 그 한심한 정수리에 대못을 박고 늙은 콧구멍보다 더 큰 구멍을 내어 버드나무 열쇠를 꽂는다. 놋뱀이 그녀의 발에 입맞추고 생명나무를 굽이쳐 오른다. ‘케테르는 왕국 안에서, 왕국은 케테르 안에서.’ ‘나는 중앙 기둥의 뿌리요. 마지막이 아닌 마지막이라.’ ‘거꾸로 선 등대여, 환히 비추라.’ 진정한 창조는 영적인 진화 안에서 그 자신을 드러낸다. 그 영적인 진보가 네페쉬(Nephesh)와 루아흐를 지나 예히다(Yechidah)에 이르기까지 신성과의 합일을 추구할 것이다. 이 세피라의 대천사는 산달폰(Sandalphon)이며 신의 이름으로는 아도나이 멜렉흐(ADONAI MELEKH)다. 그녀는 누구인가?
그녀는 말쿠트(MALKHUT)다. 

박영호

파리 카톨릭대학, 파리 제4대학에서 종교학과 고대 오리엔트 언어를 공부했으며, 동대학 특수종교학 대학원에서 관련 연구에 참여했다. 동방성당기사단(O.T.O.)에 입문하여 서양 전통 제식마법과 헤르메스 철학의 비전을 전수받았다. 번역서로 <헤르메스학 입문>, <소환마법실천>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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