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점성학의 목적과 연구방법

★ 점성학(Astrology)이란 무엇인가?

우선, 점성학이 학문인지 술법인지 (따라서 점성학인지 점성술인지) 논하는 것은 참으로 부질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번역어에 수반되는 ‘의미화’를 위해서는 그 목적과 의미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러면 저절로 용어가 윤곽을 드러낼 것이므로.

본격적으로 점성학 연구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점성학이라는 분야가 어떤 배경에서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졌는지를 파악하는 데서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칼럼을 통해 문제제기를, 아티클을 통해 다양한 근거와 분석, 논리적 추론 등을 거칠 생각입니다.

그런데 “증거를 대봐” 라는 말 속엔 근대적 학문 연구법, 그러니까 실증적 방법론에 대한 확신이 들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증거가 ‘검증’의 모든 것이라는 생각이지요. 그러나 점성학을 비롯한 비의적 학문을 연구할 때 이런 방법으로는 곧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점성학뿐 아니라 카발라나 헤르메스학 등 비의적 학문을 연구하는 데 공통적으로 부딪히는 문제지요. 인류 문명의 기저에 살아 숨쉬는 이러한 비의들을 연구하기 위해, 많은 학자들이 남아 있는 퍼즐 조각, 그러니까 무덤에서 파헤친 유물들을 이리저리 끼워 맞추며 다양한 논문을 써냈습니다. 하지만 빈 구멍을 메우기엔 역부족이었지요. ‘물질적 증거’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 후대의 ‘위작’이라거나 어딘가 비어 있는 ‘불완전한 학문’이라거나 덜 떨어진 ‘원시인의 가상한 노력’이라는 식의 결론이 불가피해졌으니 말입니다.

제국주의의 물결을 타고 수많은 유럽 학자들이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와 인도의 사막과 폐허를 헤집고 다녔습니다. 순수한 동기를 지닌 학자들은 거기서 자신들의 정신적 뿌리를 찾아내겠다는 일념으로 목숨을 걸기도 했지만, ‘인디애나 존스’에 등장하는 것 같은 탐욕에 눈먼 도굴꾼 학자들도 있었습니다. 어찌 됐든 이러한 작업들을 통해 근대의 안경을 끼고 옛 선조들을 깔보던 대중들에게 우리 선조들이 생각보다 그리 원시적이지만은 않다는 공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근대적 자만’이 뭔가 이상하다는 의구심도 스멀스멀 피어 올랐습니다. 고대의 지혜에 탐닉하여 미스터리로 발전시킨 마니아 층을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웹이라는 공유의 바다에 떠다니는 엄청나게 많은 자료는 이러한 연구작업의 결과와 호응 방향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상황을 놓고 고민한 결과, 우리는 점성학 연구방법으로 두 가지를 병행할 생각입니다. 첫째는 인문학자들이 일궈놓은 유물과 분석 작업의 성과들을 참조하며 재분석하는 과정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고대 수메르와 바빌로니아, 이집트, 초기 헬레니즘의 점성학-천문학 관련 유물이나 텍스트를 재분석하는 작업입니다. 동시에, 더 본질적인 작업은, 이들 고대 문명의 점성학-천문학의 성과물(관측이나 예언 텍스트 또는 그림들) 배후에서 실제 철학적 토대로서 이들을 아우르는 핵심 관념을 척도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힘의 본질과 실재화를 다루는 ‘비의 체계’를 중심에 놓고 거기서 뻗어 나온 점성학이라는 가지를 살펴 보는 것이지요. 물론 근대 이후 점성학자들도 표면적으로는 이 작업을 해왔습니다.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가 점성학을 가능하게 하는 명제라고 표명해왔으니까요. 그러나 이때 사용하는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토스의 이 정언은, 물질 우주(위)의 행성과 별이 인간의 삶(아래)과 조응 또는 결정한다는, 극히 제한적인 유물론적 패러다임이었습니다. 여기서 관측과 통계가 점성학의 실체라는 결론이 도출되었겠지요. 근대적 관념의 극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실제 점성학이 받아들여지는 상황은 전혀 유물론적이지 않은 미신의 일종이라는 생각이 팽배합니다. 맹목적인 ‘결과’에 집중합니다. 물론 적중률은 “맞으면 좋고 틀리면 어쩔 수 없는” 입니다. 미신으로 대하는 것이 상식적인 사람들의 추세니까요. 점술을 업으로 삼는 점성가들에게는 매우 편리한 상황이지만, 점성학을 위대한 학문의 한 분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불쾌한 상황입니다.

이러한 추세를 바로잡을 생각은 없습니다.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점성학의 가치를 올바로 알고자 하는 탐구자에게는, 또한 비의 체계의 한 분야로 점성학을 바라보는 오컬티스트라면,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관념입니다. 헤르메스학연구소의 점성학 연구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합니다.   

★ 이제 다시, 점성학이란 무엇인가?

헤르메스학의 관점에서 또는 카발라의 신성방출 관점에서, 세계(눈에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전우주)의 진화 방향은 ‘분화’이며 이것은 ’복합화’를 수반합니다. 진화의 마지막 국면인 인간과 그 거주지(이 둘은 질료가 같습니다.)에는, 가장 세분화된 진화의 코드가 앞선 진화의 모든 국면을 반영해 아우르며 존재합니다. 분화의 과정 중 모든 것을 반영하는 일단락-통합 국면인 셈이지요. 이처럼 개체화 본능은 우주 진화 과정의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한편 반대 방향으로 합일의 본능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내재된 신(최초의 원인)과의 합일 욕구는 이를 드러냅니다. 모든 비의체계가 지향하는 바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곧 영적 진보의 방향입니다. 

‘신성’으로 일컬어지는 힘의 ‘분화 – 합일’의 양 측면을 다루는 학문이 있으니, 바로 점성학(분화)과 연금술-알키미아(진보)입니다. 카발라는 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철학적 토대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점성학은 근원적 힘이 분화하여 ‘실재화’하는 현상을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따라서 점성학에서 탐구하는 차원은 (카발라 용어로) 예찌라계와 앗시야계입니다. 특히 힘의 구체적 실재화 국면인 앗시야계에 집중됩니다. 우주적 힘은, 우리의 혼 및 아스트랄계와 관련해서는 공간의 개념으로, 물질계의 측면에서는 시공간의 개념으로 실재화합니다. 점성학은 그 실체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밀도와 형태, 영향력의 종류와 세기, 순수성과 복합성의 정도 등 우주적 힘의 실재화 과정이 점성학 개념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한편 실재화되고 구체화된 힘들, 광물의 형태나 식물의 형태나 동물의 형태를 하고 있는 에너지 복합체를 거르고 걸러 순수 힘의 결정체를 뽑아내는 학문이 알키미아(연금술)입니다. 다루는 차원에 따라 다른 방식의 정련법이 필요하겠지요.)

고대 이집트인이나 수메르인들은 이러한 목적과 배경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발굴 보존된 유물들이 그 증거입니다. 이 두 문명의 오랜 교차 혼합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학자가 인정하고 있는 실증적 사실이므로 자세하게 거론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알렉산드리아라는 거대한 융합 용광로 이전부터, 창조와 진화, 대우주(세계 전체)-소우주와 관련해 동일한 열쇠를 쥔 사제-왕들의 교류가 이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스트랄계와 멘탈계를 오가는 것이 예삿일인 사제들에게는 특별한 물리적 교류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어쨌든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수메르, 바빌로니아, 히브리 등)의 점성학은 동일한 핵심을 공유한 두 체계에서 뻗어 나온 가지입니다.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에게 물질 우주와 별은 신의 대리자였습니다. 근대 유물론자들은 이 ‘미신적 관념’을 깨부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신이란, 근원적 힘의 실체를 가리키는 아이콘이며 힘의 진화 국면에 따라 다른 양태와 속성을 갖는다는 비밀을 알게 되는 순간, 그들의 미신 타파 노력이 얼마나 반(反)유물론적인지 깨닫게 됩니다. 전근대적 ‘미신’에서 벗어나는 순간, 점성학은 실체 없는 통계학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물론, 자연법칙은 신의 의지가 물질화된 현상이며, 이를 탐구하는 일은 힘의 실체를 유추할 근거를 마련하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통계를 통해 본질을 알아낼 수는 없습니다. 유추를 통해 개연성을 밝힐 수 있을 뿐입니다. 관측의 발달과 함께 점성학은 시각의 제한이라는 미궁에 들어섰습니다. 사실, 사제권력과 왕권이 분리되고 권력이 왕권에 집중되면서 사제-왕의 전유물이었던 점성학은 다른 방법, 말하자면 세속적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관측의 발달로 이어졌습니다. 관측은 왕의 전유물이었습니다. 통치를 위해 신=자연의 뜻을 읽는 방법으로 말입니다. 그리스 로마를 거쳐 근대에 이르면 형이상학적 토대는 신화적 명칭이라는 상징에 밀봉된 채 남겨지게 되었지요.

아무튼,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두 문명이 만들어낸 점성학적 산물은 양상이 다릅니다. 시공간의 차이에서 비롯된 결과랄까요. 이집트는 상대적으로 안정된 조건에서, 특정 시공간 즉 ‘지금 여기’에 집중했습니다. 그들의 점성학은 특정 시공간에 물질화되는 힘의 실체에 집중했습니다. 신전의 포지셔닝과 배치, 피라미드의 방향과 형태가 모두 점성학적 탐구에 따라 이루어졌습니다.  (피라미드나 미라가 ‘지금 여기’라는 개념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자의 서>가 이야기하고 있듯이, 고대 이집트인에게 죽음은 여전히 ‘지금 여기’ 라는 시공간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또한 관측을 통해 물질 우주에 드러나는 힘의 실재화 과정을 연구하고, 자연법칙 즉 신의 의지에 따라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통치의 척도로 이를 활용했습니다. 강력한 중앙집중적 왕권이 확립되어 있던 이집트에서 자연법칙을 ‘아는’ 왕은 신의 대리자였습니다. 자연법칙에 도사리고 있는 위계가 강조됐습니다. 신의 대리자는 시간을 정하고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원인적 힘인 신에 대한 탐구는 사제 집단에 의해 이어졌습니다. 이 둘의 미묘한 통합이 이집트 점성학의 특징입니다.

상대적으로 정치적 격변과 전쟁이 빈발했던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예측’과 ‘예언’이 점성학의 주된 관심사였지요. 물론 개인은 예측의 대상이 되지 못했습니다. 신의 뜻을 알고 통치하는 집단의 전유물이었습니다. 날씨를 예측하고 전쟁 결과를 예측하고 왕조의 몰락과 탄생을 예측하는 것이 점성학의 목적이었습니다. 그 모든 것은 신의 뜻이어야 했습니다. 따라서 수메르인이나 고대 바빌로니아인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신의 때’를 아는 것이 중요했지요. 관측에 비해 분석이 강조된 것은 이 같은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이 사용한 60진법은 관측 데이터를 ‘분석’하는 데 매우 유용합니다. (10진법을 사용한 이집트인이 60진법을 사용한 바빌로니아인에 비해 공간가치체계(place-value system)이 뒤떨어진다는 Tamsyn Barton의 주장은 어불성설입니다.) 그러나 실재하는 바빌로니아 점성학 유물에는, 관측하고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치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힘의 구현으로 이어지는지 찾아내는 과정은 생략되어 있습니다. 힘의 작동 원리를 이미 알고 있던 사제들은 간단한 매뉴얼을 제시하는 것으로 대신합니다. 말하자면, “뉴문이 질 때 속도가 느리면 왕국에 무슨무슨 일이 벌어진다”는 식입니다. 이 쐐기문자 자료들을 보고, 당시 분석과 예측 기법이 발달하지 않았다고 단언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예측 방법은 사제들의 전유물이었습니다. 그들은 신의 메시지를 전하는 고유 역할을 쥐고 있었습니다. 가설입니다만, 이들 중 일부가 사제집단의 영역 밖에서 돈을 받고 개인의 일생을 예측하기 시작했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접하고 있는 주류 점성학은 이처럼 예측을 다루는 학문입니다. 그리스 로마의 세계 지배 이후 형성된 흐름이지요. 또한 그리스 로마의 개인주의적 성향은 개인의 천궁도를 만들고 개인의 일생을 예측하는 쪽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측 기법은 이에 상응한 쪽으로 치우쳐 발달하게 됐습니다. 개인적 목적으로 점성학을 활용하는 것은 진화의 방향에서 볼 때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관측이라는 물질적 증거 수집 방법을 확보하게 된 점성학은 점차 신탁과는 별도의 위상을 점하게 됐습니다. 이 같은 목적으로 제한된 시각에서 볼 때, 점성학의 뿌리는 메소포타미아의 예측 점성학이 되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성학은 여전히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 라는 헤르메스학의 정언에 기반을 둔 학문입니다. 이때 ‘위’는 물질 우주의 하늘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점성학의 목적과 연구방법을 바로잡는 우선 과제입니다.
앗시야계에서 벌어지는 힘의 실재화는 그 상위 차원의 영향력 아래 있습니다. 상위 차원의 법칙을 가리켜 우리는 운명이라 부릅니다. 물질 우주의 별자리와 루미너리 및 행성과 4원소 원리는 그 힘의 자취이자 대리자 격인 힘의 센터들입니다. 자연법칙의 중심입니다. 동일한 질료의 힘의 센터들이 우리 자신 안에도 존재합니다. 그 상응과 공명을 연구하는 것이 점성학의 목적입니다. 그것이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정확한 예측도, 예측한 결과에서 벗어나는 방법도, 여기서 출발합니다.



– 까페 아르고나우트에서, ‘마법아티클’ 칼럼 발췌 (정은주, 좋은글방 대표)



본 칼럼은 네이버 까페 ‘아르고나우트’에서 연재된 칼럼으로써, 오컬트를 공부하고 수행하는 여러분을 위해 준비된 것입니다. 게시된 글을 퍼갈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셔야 합니다. 원문을 그대로 또는 수정 및 가감하여 강의 및 저작에 이용하는 경우 법적으로 대응할 수 있음을 분명히 밝힙니다.

[칼럼] 의식마법의 목적과 마법서에 대한 소고




의식마법의 목적과 마법서에 대한 소고
<소환마법실천> <마법서, 즉 마법일지>편의 메시지를 중심으로

1. 서론

프란츠 바르돈은 마법일기를 가리켜 ‘개인적 마법서’라고 단언한다.[1]  마법작업의 모든 과정, 즉 작업 목표, 조건과 준비사항, 실질적인 작업 내용, 결과, 사후 작업 등에 대한 세세한 개인적 기록이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노출을 꺼려 주요 내용을 코드화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역사적으로 마법서를 신비화하고 이 낯선 문자들의 조합을 주문이라 오해하여 의식마법의 열쇠라고 믿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2] 

마법서에 대한 이 같은 비판적 접근은 마법서를 ‘개인적인 작업일지’라고 규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는 마법의 역사에 있어서 가히 혁명적인 일이다. 과거는 물론이고 오늘날에도 마법을 실행하는 수많은 마법사 또는 마법사 지망생들이 이 명제에 발끈할 것은 자명하다. 상위 차원의 힘과 만날 핵심적 열쇠에 대한 ‘믿음’을 일거에 흔드는 폭로이기 때문이다. 특히 의식마법과 그 공식(주문)을 마법의 ‘전체’라고 인식하고 있는 경우에는 심각한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마법서(그리무아르)의 진면목을 폭로한 프란츠 바르돈의 입장을 면밀하게 파악하기 위해, 몇 가지 전제가 되어야 할 개념을 확정할 필요가 있다. 우선 의식마법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의식마법이 작동되는 원리는 무엇인가? 이때 주문의 역할은 무엇인가? 등에 대한 정리가 필수적인 것이다. 또한 그의 비판적 접근이 사실이라면 실존하는 마법서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며, 어떤 관점에서 그 기록을 파악하고 분석할 것인지 알아내야 할 것이다.

<소환마법실천>과 그 앞뒤로 저술한 그의 책, <헤르메스학입문>과 <진정한 카발라 열쇠>에 제시된 핵심적 단초들을 중심으로 위의 문제들을 살펴보고, 의식마법의 목적과 마법서의 의미를 정리하고자 한다. 또한 이를 기초로 ‘나만의 마법서’를 기록하는 이유와 방향을 정립할 것이다.        

2. 본론

(1) 의식마법의 목적과 작동 원리

의식마법은 원하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특정 에너지를 끌어오기 위한 ‘자동화 작업’이다. 즉 “특정 동작이나 마법 의식, 심상화나 특정 에너지가 자동적으로 효력을 일으키도록”[3]  하기 위해, 그 과정을 공식화하여 반복적으로 실행할 수 있도록 고안해 놓은 공식이다.

“특정 동작이나 마법의식을 반복해서 심상화하면, (즉 공식화된 동일 과정을 반복 작업하면,) 아카샤의 원인적 영역에 에너지가 저장되며, 소망이나 목적에 각각 필요한 진동(전자기적 흐름), 색깔, 소리, 그 밖의 필수적인 것들과 상응하게 된다. … (중략) 반복을 통해 이 저장소를 충전시키면, 마법(의식만)으로도 에너지의 한 부분이 흘러나와 필연적 결과를 불러일으키게 된다.”[4] 키스케일(진동, 색깔, 소리 등)에 맞추기만 하면 이미 만들어진 통로를 따라 동일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에너지(힘) 또는 존재를 불러낼 수 있다는 말이다. 마법의식 또는 예배나 제식 등은 모두 이와 동일한 원리에 따라 이루어진다.[5] 

이때, 특정 에너지라고 칭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실현하기 힘들지만 원하는 것을 이루고자 함이므로 상위 차원의 밀도 높은 힘을 접촉하고 끌어오려는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즉, 의식마법의 목적은, 원하는 바를 실현하기 위해 상위 차원의 힘(즉 존재)과 접촉하고 이를 활용하기 위한 ‘공식화 작업’이다. “충전이 다 된 배터리로 전기를 얻고 싶을 때 할 일은 그냥 접속하는 것뿐이다.”[6] 의식마법의 매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비유다. 누구나 코드를 꽂을 수 있으며 그 전기를 마음대로 꺼내 쓸 수도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갖게 만드니 말이다. 동시에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대목이기도 하다. 

(2) 공식의 구성 조건

결국 문제는 이러한 공식을 ‘아무나’ 활용할 수 있는가에 있다. 앞서 지적했듯이, 이 자동화 공식의 핵심은 각각 필요한 진동(전자기적 흐름), 색깔, 소리, (즉 키스케일) 그리고 그 밖의 필수적인 것들의 구성에 있다. 상위 차원의 해당 에너지를 ‘움직이게 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들이다. 주파수의 공명을 일으키는 요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심상화와 함께 이 공식을 반복 실행하여 자동화 시키는 것은 물론, 원인적 세계인 아카샤에 등록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등록된 공식은 필요조건을 충족시키기만 하면 자동적으로 동일한 결과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원인 중의 원인 ‘아카샤’로부터 어떤 결과가 도출되는 과정은 인과법칙이라는 기계적으로 작동되는 우주보편법칙 중 가장 근본적인 법칙인 것이다.  

한편 동일한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구성된 공식과 동일한 키스케일이 필요하다. 원인으로부터 결과를 도출해내는 ‘작용 일으키기’ 작업인 셈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적확한 포인트는 ‘소리’ 즉 ‘말’이다. 4극자석인 인간이 신의 권위를 입고 창조를 모방할 수 있는 열쇠가 바로 여기 있다. 프란츠 바르돈의 그의 세 번째 저서에서 모든 문명권의 ‘카발라’가 바로 이 핵심을 가르치고 있다고 말한다. 소리와 문자로 이루어진 키스케일의 핵심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3) 주문의 역할과 오해

바로 여기서 ‘주문’에 대한 환상이 비롯된다. 아무나 의식마법이라는 공식을 활용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으며, 특정 주문만 읊으면 상위 차원의 힘(존재)과 만날 수 있다고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마법서(그리무아르)들이 주문을 있는 그대로 알려주고 있어서 마법서만 손에 넣으면 그 주문을 활용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무아르의 주문이 이러한 오해의 여지를 갖게 되는 것은, 마법서를 기록한 마법사들이 자신의 마법작업 과정을 암호화한 데 있다. 암호화된 문자 조합이 갖는 ‘낯설게 하기’가 실행과정 중 작업자의 의식을 집중상태에 이르게 하며, 의식이 정상 상태에서 벗어나 황홀경에 빠짐으로써 환각 작용을 일으킬 여지를 만들게 되는 것이다.[7] 결과는 간절히 원하는 자신의 소망대로 엘리멘털 심지어 형상을 갖춘 엘리멘터리를 만들어내고 이를 상위 차원의 힘 또는 존재라고 오인하는 지경에 이른다.

하지만 주문은 발음이나 소리를 흉내내는 것으로는 작동하지 않는다. <진정한 카발라 열쇠>에서 프란츠 바르돈은 공식화된 소리의 핵심이 ‘진동’의 형태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 비의를 품고 있는 각 문명권의 카발라들은 ‘신의 이름’을 통해 진동을 공식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란츠 바르돈은 “자신의 의식을 특정 영역으로 이동시킬 때 그 영역의 ‘신의 이름’ 중 적합한 명칭을 사용하면 된다. 그러나 이러한 신의 이름은 두뇌의식의 연상을 돕는 보조도구일 뿐이다. 진정한 마법사에게는 이런 식의 신의 이름이 없어도 된다.”[8]고 말하고 있다. 즉 포인트는, 신의 이름 자체가 지닌 의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동 자체에 있다는 말이다. 이 진동은 심상화나 공명이 가능한 다른 소리를 통해서도 충분히 가능하다. 히브리 신의 이름이든, 힌두 신의 이름이든, 라틴 신의 이름이든 동일한 결과를 가져오는 이유가 여기 있다.

따라서 주문이란 “필요 수준에 이른 마법사의 연상 보조수단, 즉 그 마법사가 마법의식을 실행하기 위해 도식화한 설계도”[9]이다. 접촉할 특정 존재, 힘, 계(영역)와 동일한 진동을 만들고 움직일 방법을 설계한 공식이라는 말이다. 여기에는 키스케일의 여러 측면, 즉 전자기적 흐름의 여러 측면이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떤 마법사가 자신의 마법 작업 과정을 암호화시킨 코드를 읊조리기만 하면 되는 주문으로 오해하고 그것만으로 상위 차원의 힘과 만나려 하는 경우 실패는 자명한 일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간절한 열망에서 비롯된 엘리멘탈이나 엘리멘터리를 만들어내고 성공했다고 오인하는 경우 곤란한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따라서 바르돈은 이렇게 경고한다. “마법적으로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사람은 의식마법을 실행하지 말라는 경고다.”[10]    

(4) 마법서에 대한 올바른 이해 

마법서가 개인의 작업 일지라는 말이, 마법서에 아무런 열쇠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암호화되어 있을 뿐이다. 바르돈에 따르면 마법 공식을 기록한 주문서는 “의식마법을 실행하는 마법사의 마법일지라고 보는 것이 옳다. 이 일지에 자신의 작업과정을 단계별로 기록해 나가면, 차근차근 발전해 나가서 마침내 목표에 이르게 된다”[11]고 말한다. 또한 “이 지식을 손에 쥐고 있던 사람들은 소위 ‘주문’이라는 다양한 코드명을 고안했고, 한편 이러한 주문을 해독할 열쇠는 입문자에게만 주어졌다.” [12]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해독할 열쇠에 대해 아는 바가 없는 비입문자가 이 주문서를 손에 넣는 경우, 그는 모든 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13]

우리에게 마법서는 의식마법 작업이 실행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진정한 마법사는 수많은 책에 나오는 다른 마법사에 대한 이야기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다른 마법사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마법원을 그린다 해도, 그것이 무한함, 신성함, 금계의 상징으로 간주된다 해도, 정령과 천사를 마법원 안으로 불러들여 보호막을 만든다 해도, 또 라마승들이 만다라를 그리며 수호신인 타타가토스를 부른다 해도, 그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랴. 마법사에게는 낯선 외부적 가르침이 필요없다. 이들 가르침은 단지 영을 위한 보조수단으로, 관념과 기억에 초점을 두고 있을 뿐이다.” [14]


3. 결론

그러나 다양한 시행착오를 거쳐 아카샤에 기록된 ‘공식’ 또는 주문으로서의 의식마법은 쉽게 특정 힘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 의식마법의 매력이 있음을 다시 한번 지적하고 싶다. 그러나 문제는, 공식의 밑바탕을 이루는 작동원리를 파악하고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공식 및 방법을 찾아 실행하지 않은 채 흉내내기에 급급한 경우, 의식마법의 이 매력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이때 나타날 결과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의식을 성공시키지 못한다. 흉내내기에 그치거나 엉뚱한 판타스마 따위를 만들어내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은 이미 위에서 지적했다.

둘째, 설사 성공한다 해도 (만든이의 허락을 구하지 않은 경우) 다른 이가 만들어 놓은 에너지를 도둑질하는 일이 되고 말 것이다. 바르돈은 이 일을 이렇게 단정한다. “도덕적인 마법사는 이런 행위를 도둑질이라고 여기므로 자신을 그런 지경으로 몰아가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식으로 활용할 수 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는가.” [15] 

셋째, 공식을 만든이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공개한 경우다. 이때 믿을 만한 안전장치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남의 에너지 저장소를 채워주는 바보 노릇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의식마법에서 최고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 우리는 위의 지적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리무아르에 기록된 공식들은, 저자의 작업 일지일 뿐이다. 자신의 속성에 알맞은 작업 조건을 분석하고 찾아나간 과정의 기록이며, 원하는 상위 차원의 존재, 힘, 계에 접촉할 수 있는 키스케일을 찾아나간 과정의 기록이며, 이 모든 것은 기록자의 개별적 특성과 보편적 법칙의 어느 지점에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의식마법의 작동 원리를 파악하고 기존 마법서의 작업 과정을 참고하여 자신만의 의식을 설계해야 한다. 초심자가 일정한 효과를 거두기 위해 단순한 마법의식을 실행할 때는 안내자의 지도에 따라 안전장치를 두어야 한다. (예를 들어 LBRP나 MPR를 실행할 경우) 또한 작동원리를 확실하게 이해하고, 자기만의 마법서, 즉 마법일지에 실행할 때의 특정 조건과 과정 및 결과를 기록해 자기만의 ‘영역대’를 찾아내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것이 마법일지를 성실하게 작성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그러나 이 모든 작업은 영-혼-육의 기본적 발전이 선행되지 않으면 소용 없는 일이다. 의식마법의 목적은 상위 차원의 힘에 접촉인데, 자신의 실행 결과를 확인하고 검증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한편 마법의식의 설계는 ‘호드Hod’의 영역에 속한다. 호드의 능력을 여는 열쇠는 “모든 현현물과 현상들을 조종하는 영적인 힘에 대해 인식하는 것”[16]이다. 호드의 상징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상위 차원의 힘에 붙인 ‘이름’인데, 이때 “이름은 ‘능력의 단어’로서, 이것을 통해 마구스는 베네 엘로힘의 다양한 힘을 개괄하고 자신의 의식 안으로 불러낸다. 이 이름들은 (중략) 일종의 철학적 공식이다. (중략) 그들의 이름은 힘 자체를 나타내는 이름이거나 복합적인 힘을 나타내고자 할 때 사용된 상징에서 나왔다.”[17] 다이온 포춘이 강조했듯이, 오직 제1원리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통해서만 힘의 이름들, 즉 주문 또는 공식의 유추가 적법한지 여부를 가려낼 수 있다. 따라서 마법의식의 설계는 호드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호드의 능력을 불러낼 수 있는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할지라도, 우리는 자신의 영-혼-육 훈련 과정을 성실하게 기록하는 마법일지 작성을 통해 이 설계 작업 과정을 시작할 수 있다. 힘의 원리와 작동 조건을 분석할 데이터를 축적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마법일지의 기본 형식, 즉 행성 특히 루미너리의 위상, 영-혼-육의 컨디션, 훈련 목표, 훈련 내용 및 과정, 결과 등에 대한 꼼꼼한 기록이 요구되는 것이다. 



– 까페 아르고나우트에서, ‘마법아티클’ 칼럼 발췌 (정은주, 좋은글방 대표)



본 칼럼은 네이버 까페 ‘아르고나우트’에서 연재된 칼럼으로써, 오컬트를 공부하고 수행하는 여러분을 위해 준비된 것입니다. 게시된 글을 퍼갈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셔야 합니다. 원문을 그대로 또는 수정 및 가감하여 강의 및 저작에 이용하는 경우 법적으로 대응할 수 있음을 분명히 밝힙니다.

[칼럼] 지혜의 32경로




쎄페르 하예찌라(Sefer ha-Yetzirah) : 지혜의 32경로

카발라를 제대로 공부하고 싶은 분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카발라 책 중 으뜸을 꼽는다면 <쎼페르 예찌라>일 것입니다. 헤르메틱 카발라를 공부하는 경우에도, 카발라의 기본구조를 먼저 파악하기 위해서는 유대 카발라, 그리고 <쎄페르 예찌라>를 공부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며 정리된 카발라의 기본구조는 10세피로트와 22경로, 즉 32경로라 일컫는 힘의 단위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경로들은 창조의 과정과 우리 의식의 단계를 표상합니다.

10세피로트는 1~9까지의 기본 숫자(digit)에, 22경로는 문자(즉 히브리어 알파벳)의 ‘소리’를 골격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중에서도 22경로는 힘의 내용(contents)을 나타내는 질(質,quality)입니다. 따라서 주관적입니다.
지금은 헤르메틱 카발라에 의해 정교하게 실천적으로 다듬어졌으며, 반면 유대 카발라에서는 그 중요성이 반감된 경향이 있지만, 각 경로는 의식의 국면(상태, states)에 대한 설명입니다. 고대 유대 카발라로부터 전해지는 ‘지혜의 32경로’는 바로 이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히브리어 원전을 읽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불가능하다면 영어로 번역된 책 중에서 골라 공부하는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영어 번역본 중에도 오류가 많으므로, 몇 권을 비교하며 연구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각 경로에 대한 실천적 경험이 있다면 이 문구들은 자명하게 이해되겠지요.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세피라와 세피라 사이의 관계성에 주목하면서, 지도를 찾듯 생명나무 다이어그램을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히브리어 알파벳과 상응시키며, 그 힘의 속성이 무엇인지 공부해야 할 것입니다. (각 세피라는 대표 키워드로 표기되어 있다는 것 잊지 마셔야 합니다. 예를 들어 “왕관”, “영광” 같은 단어로 특정 세피라를 부르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제 주관적 관점에서 각 경로의 내용을 ‘의식의 국면-상태’라는 측면에서 살펴 보기로 하겠습니다. 그 전에 구조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또한 경로에 알파벳을 상응시킨 구조도에는 여러 버전이 있습니다만, 유대 카발라 버전을 놓고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 지혜의 32경로
(Aryeh Kaplan의 주해서 부록을 참고해 번역한 것입니다. 번역:이시스 정은주)

1~10 경로(10세피로트)는 미스티컬 카발라 중 개별 세피라 맨 앞의 키워드 페이지를 참고하세요!

11번 경로 :  매의 눈으로 쪼아보는 상태
이 경로는 ‘베일’(이 체계에서 정해 놓은)의 본질이다. 11번 경로는 경로들 사이의 관계를 대표하며, 바로 이곳에서 우리는 ‘원인 중의 원인(Cause of Causes)’ 의 면전에 서게 된다.

12번 경로 : 맹렬히 타오르는 상태
이 경로는 ‘위대한 왕(Greatness)‘의 전차-바퀴(Ophan-wheel)’의 본질이다. 이를 가리켜 ‘눈앞에 실현시키는 자(Visualizer)’고 부르는데, ‘볼 수 있는 자들(Seers)’은 여기서, 실현된 것을 ‘비전’으로 보게 된다.

13번 경로 : 의식을 통제하는 합일 상태
이 경로는 ‘영광(Glory)’의 본질이다. 합일한 영들(spiritual beings)이 진정한 본질을 성취함을 나타낸다.

14번 경로 : 깨달아 환하게 빛나는 상태
이 경로는 ‘침묵의 소리(Speaking of Silence)’의 본질이다. 이 경로에서는 거룩한 비밀과 그 구조에 대한 비의적 가르침을 얻게 된다.

15번 경로 : 견고하게 하는 상태
이 경로는 “순수의 어스름(Glooms of Purity)” 안에서 창조의 본질을 공고히 하는 상태다. (이론 분야의 마스터들은 이것이 바로 시나이산의 자욱한 연기라고 말한다.) “연기는 곧 그의 덮개요” 라는 뜻이다.

16번 경로 : 참고 견디는 상태
이 경로는 “영광(the Glory)의 기쁨(Delight)”이다. 그러므로 ‘영광’의 가장 낮은 상태다. 이를 일컬어 에덴 동산이라 부르는데, 이곳은 성자를 위해 (상으로) 예비된 곳이다.

17번 경로 : 감각(the Sense)의 의식 상태
이 경로는 신실한 성자를 위해 예비된 곳으로, 성자들은 여기서 거룩함을 입는다. 천상의 존재(the supernal Entities)에 속해 있으며, 이를 가리켜 ‘아름다움(Beauty)의 토대’라 부른다.

18번 경로 : 유입물 저장소에 관련된 의식 상태
이 경로를 탐사하는 경우, ‘원인 중의 원인’의 그림자에 거하는 자는 여기서 감춰진 비의와 암시를 건네 받으며 ‘원인 중의 원인’으로부터 유입된 질료를 철저히 캐낼 것을 맹세한다.        

19번 경로 : 모든 영적 활동의 비의에 관련된 의식 상태
이 경로는 ‘지고의 축복(blessing)’과 ‘가장 높으신 영광’으로부터 흘러 들어오는 유입을 가리킨다.

20번 경로 : 의지(Will)의 상태
이 경로는 형상을 입은 모든 것의 구조다. 이 의식상태를 통해 우리는 ‘근원적 지혜(Original Wisdom)’의 본질을 알 수 있다.

21번 경로 : 열망하고 구하는 상태
이 경로는 신성의 유입을 수용하는 상태로서, 이를 통해 모든 존재는 신의 축복을 받는다.

22번 경로 : 신실한 상태
영적인 힘이 강화되는 상태로, 이를 통해 “그림자 안에 거하는” 모든 존재에게 접근할 수 있다.

23번 경로 : 지탱하는 상태
이 경로야말로 모든 세피로트를 지탱하는 힘이다.

24번 경로 : 환영의 상태
이 경로에서는 만들어낸 모든 환영이 각자의 위상에 걸맞은 형태로 모습을 띠고 나타난다.

25번 경로 : 시험을 겪는 상태
신은 여기서, 부름받은 자들이 근원적 시험을 겪게 한다.
 
26번 경로 : 거듭나는 상태
‘복되신 거룩한 이(Blessed Holy One)’께서 창조를 통해 구현한 만물을 새롭게 함을 의미한다.

27번 경로 : 지각력이 있는(palpable) 상태
상위 차원에서 창조된 모든 피조물은 (그들의 지각력도 물론 포함하여) 이 경로를 통해 창조되었다.

28번 경로 : 자연의 의식 상태
해 아래 존재하는 (태양의 영역에 속한) 모든 것의 본성은 이 의식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29번 경로 : 물질적 의식 상태
이 경로는, 각 영역별 시스템에 따라 물질화된 것들의 발전에 대해 설명한다.  

30번 경로 : 보편화하는 의식 상태
이 경로를 통해, “천국을 퍼뜨리는 자”는 각 영역의 전차 바퀴에 대한 지식을 이론으로 정립하면서 별과 별자리에 대한 지배력을 끌어올리게 된다.

31번 경로 : 중단 없는 의식 상태
이 경로는, 자연법칙에 따라 태양과 달이 각자 최적의 궤도를 유지하도록 태양과 달의 경로를 관리한다.  

32번 경로 : 예배 상태
이 경로에 이러한 이름이 붙여진 것은, 일곱 행성을 예배하는 자들을 파멸시키기 위해 예비된 경로이기 때문이다.



– 까페 아르고나우트에서, ‘마법아티클’ 칼럼 발췌 (정은주, 좋은글방 대표)


본 칼럼은 네이버 까페 ‘아르고나우트’에서 연재된 칼럼으로써, 오컬트를 공부하고 수행하는 여러분을 위해 준비된 것입니다. 게시된 글을 퍼갈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셔야 합니다. 원문을 그대로 또는 수정 및 가감하여 강의 및 저작에 이용하는 경우 법적으로 대응할 수 있음을 분명히 밝힙니다.

[칼럼] 기도 그리고 마법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오프라인 강좌에서조차, 많은 분들이 음(-)의 기둥에 배속되어 있는 힘에 대해 어려워합니다. 물론 오랫동안 ‘음’은 곧 ‘악’ 이라는 등식이 일반화 되어 왔고, 그런 선입견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일 겁니다. 제 경우에도 음의 힘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이 훨씬 어렵습니다. 그러나 마스터 바르돈도 여러 차례 강조했듯이, 마법사는 음(-)의 힘에 대해서도 통달하고 그 힘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음은 곧 악’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음=악’이  아닙니다.

음(-)의 힘, 여성적 힘은 기본적으로 형상이며 제한입니다. 힘이 형상을 입는 순간 죽음=소멸의 운명이 부여됩니다. (우주적 여성 원리를 대표하는 것이 곧 비나 세피라라는 것을 기억해 보세요!) 의지와 힘에 형상을 부여하고 제한하는 대립자가 바로 음=여성적 원리입니다. 이 힘은 우주의 진화에 반드시 불가결한 원리지요.

한 쌍의 대립자는 서로 의존적으로 존재합니다. 하나만으로는 존재할 수 없는 한 쌍입니다. 대립자는 통합 원리 안에서 균형 즉 안정상태에 이를 때 비로소 제대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양(+)과 음(-)만으로는 두 힘이 서로 상쇄될 것 아니겠어요? 다시 말해서 세계 만물은 이 한 쌍의 대립자와 그 사이의 상호작용과 통합을 통해 존재합니다. <창조-유지-파괴>, 바꿔 말해서 <확장-통합(교류)-수축>의 순환인 것이지요.

신앙은 물원리의 가장 수준 높은 모습입니다. 신앙은 음(여성원리)의 기둥 가장 꼭대기에 위치하는 세피라 ‘비나’에 배속되는 속성입니다.

마법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의지는 불원리의 가장 수준 높은 모습니다. 그 힘-충동은 양(남성원리)의 기둥 가장 꼭대기에 위치하는 세피라 ‘호크마’에 배속됩니다.

믿음과 기도는 산을 여기서 저기로 옮길 만큼 강력하지만 작동시킬 힘의 원천이 필요합니다. 자궁만으로는 생명을 잉태시킬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자궁은 에너지를 담고 그 힘을 형상화시키는 그릇일 뿐입니다.

한편 마법행위는 우주의 흐름 안에서 힘의 본성에 따라 형상을 입을 때 실재화됩니다.(마법이 이루어집니다!) 정자는 그저 생명을 품고 있는 힘일 뿐, 실제로 생명을 키워내는 것은 자궁이며 어미의 젖이니까요.

(“의지 아래 사랑”이라는 정언을 이와 관련시켜 생각해 보세요! 새롭게 뭔가 보이죠?)

이 두 원리가 어떻게 통합원리 안에서 실재화될까요?

통합원리는 신의 섭리이자 은총입니다. 아카샤 원리입니다. 중앙기둥의 가장 위에 위치한 케테르에 배속되는 원리입니다. 모든 마법작업과 기도는 이를 통해 실재화됩니다.   

마스터 바르돈이 진정한 마법사가 힘을 갖게 될수록 신의 섭리를 경외하며 머리를 조아리게 된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지요. 실제로 수행을 하며 힘을 체험하는 많은 분들이 신의 섭리에 순종하며 신앙심이 무럭무럭 자라난다고 말합니다. (물론 이때의 신은 우주적 힘이자 법칙이자 존재입니다!) 결국, 신앙과 기도 – 의지와 마법작업은 하나가 되는 것이지요. 

“믿음이 앎(깨달음)으로” 대체되는 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헤르메스학이나 힌두체계에서는 이 과정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내 안의 자기력(물원리-신앙)이 우주적 자기력(신의 은총=생명에너지 : 전기력을 품은 자기력)을 끌어당겨 몸 안에 채우면, 이 힘이 내 안의 전기력(뱀의 힘 : 자기력을 품은 전기력)을 일깨워 끌어올림으로써 합일에 이르게 되는 상태!   

우리의 기도와 마법행위는 각 차원의 에너지를 진동시키면서 가장 근원의 차원에 이르러 신의 섭리(제1현현)와 맞닿아 ‘힘-형상'(천상의 삼각형) 원리를 끌어당깁니다. 이 힘은 마치 창조의 첫 과정처럼, 각 차원을 하강하면서 형상의 실재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의 기도와 마법행위는 현실이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대부분 문제는 이러한 원리에 있지 않죠. 대부분 나의 욕망이, 현실화 하기 위해 기도하거나 마법작업을 하는 내용이, 우주의 흐름, 나의 카르마와 어긋난다는 데 있습니다.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투덜댑니다. 왜 마법사가 자신의 욕망들을 현실화하지 못하느냐고 손가락질 합니다. 그러나 “내가 기도한대로 다 이루어졌다면” 하고 생각할 때 아찔한 일이 한두 가지인가요? 바로 눈앞도 가늠하지 못한 채 간절히 바랐던 수많은 일들… 지금 생각하면 나에게 독이 되었을 나의 욕망들… 물질계의 시간을 지나온 뒤에도 이렇게 명료하게 알 수 있는데, 하물며 몇 생을 거듭하며 진보해야 할 영의 시야로 바라본다면 오죽 하겠어요! 나의 간절한 욕망은, 나의 카르마를 극복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라는 사실!      

그래서 성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기도는 신의 섭리 안에서 가장 좋은 모습으로 실재화하게 되어 있다는 거죠. 저는 성서의 이 구절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수한 경험을 했으니까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한편, 이런 측면에서 마법작업은 위험요소가 많습니다. 능력을 갖췄다고 전제할 때, 훨씬 직접적으로 힘을 형상화할 수 있고 우주법칙, 그러니까 신의 섭리에 어긋난 결과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현실적으로, 균형 법칙에 어긋난 힘의 실재화도 가능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몇 생의 긴 삶을 염두에 둔다면, 신의 섭리 안에서 제대로 마법작업을 해야할 겁니다.   

이 문제에 대해 다이온 포춘은 <미스티컬 카발라> 178쪽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케테르에 대해 명상하면 마법 실행의 성과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꺠닫는다. …(중략) … 마법사는 그저 힘을 다루어 형상으로 현현하게 하는 데 관여하고 있을 뿐이다. 그는 힘이 궁극적으로 어떤 형상을 취할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그 힘에게 맡겨둘 뿐이다. 힘의 본성과 가장 일치되는 형상을 띨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법사가 자신의 제한된 지식을 가지고 만들어내는 디자인보다 훨씬 정확하게 우주법칙에 맞아떨어질 것이다. 이것이 모든 마법실행의 진정한 열쇠이며 유일한 정당성의 기반이다. 우리의 변덕이나 형편에 맞춰 우주를 바꿀 수는 없다. 단지 신중한 마법 작업만이 허용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성장할수록, 두려움과 겸손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혼이 고결하지 못한 상태에서 어떤 능력을 얻게 되는 경우보다 더 큰 저주는 없다”는 사실을 문득문득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현실에서 부딪히는 수많은 문제와 장애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할지, 기도와 마법작업을 통해 어떤 영향을 행사해야할지 고민이 깊어집니다.   

내 삶에 작용하는 음(-)의 원리는 ‘악’이 아니라, 연합하여 선을 이루게 될, 카르마의 주가 선사하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진보와 성장의 힘을 담아 키워낼 자궁이니까요!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곧 신앙이자 기도의 영역일 겁니다. 



– 까페 아르고나우트에서, ‘마법아티클’ 칼럼 발췌 (정은주, 좋은글방 대표)



본 칼럼은 네이버 까페 ‘아르고나우트’에서 연재된 칼럼으로써, 오컬트를 공부하고 수행하는 여러분을 위해 준비된 것입니다. 게시된 글을 퍼갈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셔야 합니다. 원문을 그대로 또는 수정 및 가감하여 강의 및 저작에 이용하는 경우 법적으로 대응할 수 있음을 분명히 밝힙니다.

[칼럼] LBRP의 핵심



– 2012년, 까페 아르고나우트에서, 박영호(움브라) 선생님 글. M.M. 칼럼 발췌




까페 글을 찬찬히 읽다 보니 아르고나우트 여러분께서 즐겨 하는 수행은  <헤르메스학 입문> ‘1단계 영훈련’과 <소환마법 레시피> ‘황금유체이완’인 것 같습니다. 인내와 끈기로 꾸준히, 규칙적으로, 수행하셨다면 지금쯤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서 다양한 사건들을 마주하고 나름의 고충을 끌어 안고 계실 겁니다.

왜냐고요? 반복 훈련의 힘과 성과는 같은 공간, 같은 시간 속에 있으니까요. 우리는 법칙에 따라 멘탈, 아스트랄, 물질 질료를 시간과 공간 속에 응축시킬 수 있습니다. 우주의 흙원소를 통해 소망의 무게를 실현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소망의 무게가 실현될 때입니다. 응축된 소망 에너지가 맛나게 피어 오르면, 주위에 아스트랄 쓰레기(존재)들은 득달같이 달려들 것입니다. “한 입만~!” 시간이 지나 변질된 소망을 받은 입문자는 다시 우주(아카샤/아인소프)로 반품하기 일쑤일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답은 ‘설거지’입니다. 더러운 그릇에 음식을 담을 수 없는 것입니다.
소망 작업뿐이 아닙니다. 수행 중에도 어떤 힘과 마주하게 될 때 코드가 제대로 맞지 않으면, 혹은 재수 없으면, 충분히 아스트랄 쓰레기와 만날 수 있습니다. 초대하지 않아도 올 수 있습니다. 왜? 가까이 있으니까요. 지금 바로 드러누워 한 바퀴 구르면 코 닿을 자리에 있을 겁니다. 그 쓰레기! 물론 각 개인의 영적 진보와 처한 배경에 따라 다르게 들릴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실천 수행을 하면 할수록 ‘정화 및 결계’의 필요성에 대해 절감하게 되실 겁니다.

그래서 LBRP(추방의식/정화 및 결계)를 소개합니다. LBRP는 보편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지고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정화 및 결계 리추얼입니다. <헤르메스학 입문>에서도 ‘공간 충전(144쪽)’이라는 강력한 정화 및 결계 마법이(원한다면) 있습니다만, 공간 충전을 공부하려면 3단계의 벽을 넘어야 할 것입니다. 때문에 전세계 마법사들이 즐겨 쓰는 LBRP를 소개하는 것입니다. LBRP 강좌는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진행될 예정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LBRP 아티클은 대부분 접했을 테니, 오컬트 철학과 힘의 작동원리에 초점을 맞춰 강좌를 진행할 것입니다.

LBRP의 핵심


1. 아따노르(Athanor)가 진정 아르까나(Arcana)를 이해하고 닮고자 할 때, 그 거룩한 열망은 신과의 합일을 추구하게 합니다. 이때 모든 입문자는 우주적 신의 테스트를 받게 됩니다. 기계적 까르마(Karma)의 제한이 달갑지 않을 때, 그의 장애를 뛰어넘어야 할 때, 우리는 개인적 신에게 기대곤 합니다. 그의 위로와 격려는 수행에 커다란 버팀목이며 기도의 탄력을 제공하니까요. 그러나 신의 섭리를 온전히 받드는 것이야말로 마법사의 진정한 덕목입니다.

2. 한편 대우주와 소우주의 법칙을 이해하고 지배한 마법사는, 신의 섭리에 따라 까르마가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 우주보편법칙에 따라 적합한 심상화와 적합한 진동발성을 통해 특정 영역을 자극하고 자연의 순리에 맞게 원하는 힘을 얻어 냅니다.
 
3. 우리는 키스케일(key scale)을 통해 힘(마법)을 이해할 수 있고 작동시킬 수 있으며, 힘 그 자체가 될 수 있습니다. 완벽한 명상 상태에서 각 상징의 비의가 드러날 때, 각 차원의 진동 속에서 빛, 소리, 색깔, 리듬 등의 에테르 비의를 통합할 때, 키스케일은 개별적 진보에 따라 자신 안에서 발현됩니다. 진정한 마법사는 키스케일을 통해 모든 차원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4. 상징에 대한 이해와 명상을 강조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철학, 종교, 신화 속에 힘의 속성과 원리가 숨어 있습니다. 각 오컬트 시스템이나 마법의식이 어디서 파생된 것이며 무엇을 추구하는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두뇌의식과 아스트랄 간뇌가 상징과 연결고리를 맺는 작업입니다. LBRP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LBRP의 Q.C., 신의 이름, 대천사, 입장동작, 침묵동작 등이 어떤 힘의 속성을 나타내는 것이며 어떤 기능을 하는지 아셔야 할 것입니다. 이들은 우리의 심상화와 직결되는 문제이자 키스케일을 작동시키는 필수조건입니다. 진동발성 또한 같은 맥락입니다.

* LBRP의 기본 방식이나 절차는 <소환마법 레시피> 81쪽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본 칼럼은 네이버 까페 ‘아르고나우트’에서 연재된 칼럼으로써, 오컬트를 공부하고 수행하는 여러분을 위해 준비된 것입니다. 게시된 글을 퍼갈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셔야 합니다. 원문을 그대로 또는 수정 및 가감하여 강의 및 저작에 이용하는 경우 법적으로 대응할 수 있음을 분명히 밝힙니다.

[칼럼] 아스트랄 여행과 꿈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헤르메스학 지식

아랫 글에서 적절함님이 궁금해하신 질문, 그리고 예전에 아라님이 올렸다가 지우신(맞나요?) 질문에 대해 답글이 길어질 듯 하여 별도의 포스팅을 하기로 했습니다.

아스트랄 여행 (아스트랄 프로젝션)이나 꿈 관련 훈련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우선 물질계와 아스트랄계, 그 외의 상위 차원이 어떻게 존재하는지, 그리고 이에 상응하는 소우주 즉 우리의 ‘3중 몸’에 대한 이해부터 필요합니다.

서양 합리주의에 기초한 인식이 보편화되고 우리 의식으로 인식할 수 있는 세계가 전부라고 생각하게 되었지요. 우리 눈에 보이는 물질계가 이 세계의 전부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그것이 세계의 전부일 리가 없다는 건 경험적으로 알 수 있는 일이었지요. 그래서 프로이트를 전후해, 인간 무의식 (또는 잠재의식) 그리고 꿈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졌습니다. 그리고 꿈이나 무의식 또는 잠재의식이 우리가 인식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 그리고 그 또한 또 하나의 세계이자 영역이라는 사실이 제도권 학문에서 인정을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사실, 오랜 옛날 우리 조상들은 너나할 것 없이 다 알았던 사실인데 말입니다.

아무튼, 여기까지가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현재 제도권 학문이 인정하는 ‘세계’의 범위입니다. 그래서 많이 깨인 사람들(?)은, 저 너머 세상으로 가려면 우리의 무의식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바탕을 두고, 최면요법이나 자각몽을 통해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합니다. 영화 <인셉션>이 그려낸 멋진 스토리도 같은 맥락입니다.

의외로, 오컬트에 몸담고 있는 분들 중에서도 이런 입장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스트랄계를 비롯한 상위 차원의 세계는 우리의 무의식 안에 만들어진 세계라는 입장말입니다. 이 경우, “그럼 아스트랄계를 비롯한 상위 차원의 세계가 정말 실재냐?”는 질문에 자신있게 대답하기 어렵겠지요. 이때부터 실재가 무엇이냐는, 꼬리 잡기 놀이처럼 뱅뱅 도는 공허한 이야기가 오고갈 것입니다. 

헤르메스학의 입장에서는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아스트랄계를 비롯한 상위 차원의 세계는 분명히 실재하며 우리는 그곳에 가서 그 세계 나름의 고유한 구역들을 경험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아니, 그 세계가 오히려 본질에 가까운, 원인적 세계에 가까운, 그리고 훨씬 크고 광범위한 세계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물질계에서 우리 육체와 두뇌의식이 경험하는 수많은 일들은 그 세계에서 비롯되며 이어져 있음을 확언합니다.

물론 “가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지” 또는 “가보면 알아” 라는 말이 정답입니다. 그러나 이론적 배경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 가보지 않아도 실재하는 세계에 대해 이해하고 납득하여, 그곳에 가보고 싶어 열심히 수행을 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대부분 프란츠 바르돈이 <헤르메스학 입문>에서 자세하게 설명을 해놓았지요. 저는 그저 부연 설명을 덧붙이려 합니다. 그런데 뭣부터 얘기한다지요? 허허허 정말 많은 이야기가 필요한데, 요약 집중 능력을 발휘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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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라는 헤르메스학 정언은 대부분 알고 계실 겁니다. 여기서 위는 하늘이고 아래는 땅이라고 생각하실 분은 없겠지요? 적어도 <헤르메스학 입문>을 일독하셨다면 말입니다. 우리의 두뇌의식 및 감각이 인지할 수 있는 우리의 물질계는 현현된 세계 중에서 극히 극히 극히 일부이며, 그것도 가장 낮은 단계인 말쿠트 중의 말쿠트입니다. 그러나 신 즉 모든 것의 시초이자 본질인 ‘본질적 우주 에너지’의 창조 의지를 가장 복잡하게 구현해낸 열매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인식으로 추적 가능한, 그리고 추적 불가능한 모든 진화의 단계가 담겨 있는 마지막 열매지요.

이 모든 과정이 그대로 상응-투영된 존재가 소우주인 우리 인간입니다. 우주=세계와 동일한 질료로 만들어졌으며, 모든 진화와 발전 단계를 고스란히 내포하고 있는 존재입니다. 이것이 곧 ‘아담 카드몬’입니다. 이렇게 우주(물질 우주는 이 중의 극히 일부입니다)의 구조와 인간의 구조는 동일합니다. 우주의 특정 속성 및 영역이 인간의 특정 속성 및 영역과 상응합니다. 수많은 스펙트럼을 갖는 밀도 차이가 인간 안에 그대로 구현되어 있습니다. 무수한 스펙트럼은 고유한 속성으로 그룹핑되어, 아스트랄계-아스트랄체, 멘탈계-멘탈체, 원인적 세계(아찔루트계)-신성으로 각각 구분됩니다. 또한 우주 에너지가 집약되고 증식하는 특정 센터와 인간의 특정 에너지 센터가 서로 상응합니다.    

우주의 구조는 헤르메틱 카발라를 통해 자세하게 공부하시기를 권합니다. 여기서는, 다이온 포춘이 <미스티컬 카발라>에서 설명한 말을 잠시 인용해 보겠습니다. 우선 벽돌 쌓듯 한켜씩 쌓아올려진 구조를 생각하시면 곤란합니다. 내가 앉아 있는 방안에 모든 계의 진동이 겹쳐 있습니다만, 그것이 모든 세계라고 단정지어도 곤란합니다. 

다이온 포춘이 말했듯이 모든 창조의 원인인 힘 즉 아카샤는 어디나 중심이며 경계가 없는 무한입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현현의 과정은 설탕물의 온도가 낮아져 결정이 생기는 과정을 떠올리면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여기서 키워드는 ‘수렴’입니다. 그렇다면! 수렴을 통해 만들어진 마지막 결정에는, 설탕물이 설탕 결정이 되기까지의 모든 밀도가 겹쳐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단계적 특성은 설탕 결정입니다. 물이 아니고요.) 지금 결정화된 설탕 결정 주변에는 막 결정이 생기기 전의 밀도부터 그 전 단계의 밀도가 에워싸고 있습니다. 각각 진동수, 진동폭이 다른 무수한 스펙트럼이 존재합니다.

(물론 이 예는 단순화를 통해 ‘생각의 단초’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우주 에너지는 수렴의 과정을 거치면서 진동 수와 폭이 낮아져 조밀도가 낮아집니다. 설탕 결정과는 다르지요? 기억하셔야 합니다.)

힘의 수렴 과정을 거친 이러한 결정들이 밀도의 수준별로 존재합니다. 결정화된 하나의 세계는 다시 동일한 진행과정을 거쳐 또 다른 결정을 만듭니다. 이들을 고유한 속성별로 그룹핑한 3중 세계 및 원인적 세계에 대해서는 위에서 말씀 드렸지요?

여기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우리 물질계에서 그 전 단계의 조밀도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우선 우리 자신의 문제는 다음 생각꺼리로 제쳐놓고 생각해 봅시다. 신화나 전설을 보면, 저 세상으로 모험을 떠나는 영웅들은 동굴을 지나든지 회오리바람을 타고 날아 오릅니다. 땅속으로 깊이깊이 들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상징들은 결정화된 물질계에서 ‘저 세상’ 즉 가장 가까운 상위 차원으로 가는 방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길은 여러 갈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구체를 에워싼 더 넓은 구체로 가는 거니까요.

한편, 아까 말씀드렸듯이, 대우주의 이러한 구조와 단계는 소우주인 우리 인간 안에 고스란히 재현되어 있습니다. 밀도, 즉 에너지의 진동 수와 폭에서 각 단계별 고유 스펙트럼이 같다는 말입니다. (물론, 개인에 따라 그 스펙트럼 범주 안에서 다양한, 엄청난, 밀도 차이가 존재합니다.) 그 세계들의 스펙트럼은 내 육체에 겹쳐 있으며 각 매트릭스가 그것을 육체와 단단하게 묶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가 수행을 하면, 이 매트릭스가 느슨해집니다. 원래 우주의 구조대로 아스트랄체는 육체 밖에까지, 멘탈체는 육체는 물론 아스트랄체 밖에까지 뻗쳐나가게 됩니다. 그러나 여전히 매트릭스로 고정된 상태겠지요.

진짜 아스트랄 여행은, 이 매트릭스의 인력을 벗어나 육체와 아스트랄체-멘탈체를 분리시켜 그 세계로 가는 것입니다. 이때 아스트랄체-멘탈체는 한데 묶여 있는 상태지요. 왜 육체에서 분리시켜야 하냐구요? 물질계의 고유한 진동 영역과 맞춰져 있는 우리 육체는 진짜 아스트랄계에 갈 수 없습니다. 스쿠버들이 깊은 바다에 들어갈 때 압력을 못견뎌 더 들어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고유 진동수와 폭이 아스트랄계와 맞춰져 있는 아스트랄체는 아스트랄계에 갈 수 있겠지요. 멘탈체는? 아스트랄계보다 밀도가 높으니까 아스트랄계에 가도 압력이 문제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스트랄체는 멘탈계는 물론이고 그 상위 차원까지는 갈 수 없습니다.(프란츠 바르돈이 아스트랄 여행이 아니라 멘탈 여행을 연습시키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더 세분화시키면, 어떤 존재의 아스트랄체 밀도가 다른 개별자에 비해 좀 낮다면, 그는 아스트랄계의 밀도 높은 영역에는 갈 수 없습니다. 압력을 견딜 수 있는 정도까지만 갈 수 있다는 얘깁니다. 죽어서 우리의 영-혼(아스트랄체-멘탈체)이 정해진 곳에 가게 된다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러나 딱히 매트릭스를 느슨하게 하는 수행을 하지 않고도 우리는 아스트랄계를 맛보기하며 삽니다. 바로 꿈입니다. 특히 잠재의식이 과도하게 의식을 누르고 뛰쳐나오려는 경향이 있는 사람이라면, (현대의학은 이것을 정신질병이라고 규정합니다만), 눈을 뜬 채로 백일몽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꿈은 물질계에 겹쳐 있는 낮은 단계의 아스트랄계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우리 아스트랄체는 육체가 잠들거나 활동을 멈추었을 때, 매트릭스가 약간 느슨해진 틈을 타, 잠재의식을 통해 자신의 활동을 발현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잠재의식은 꿈-현상을 통해 아스트랄체의 활동을 구현합니다. 낮은 단계의 아스트랄계에 가서 온갖 경험을 하기도 하고, 아스트랄계 존재들을 만나기도 하고, 아스트랄계의 아카샤 기록을 읽어오기도 합니다. 마지막 것이 바로 예지몽이지요. 

사실 정상적으로 육체를 입은 인간은 두뇌의식의 인지-판단을 통해 활동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또한 우리가 꿈에서 경험할 수 있는 세계는 물질계와 겹쳐 있는 낮은 차원의 아스트랄계입니다. 그러나 아직 미숙한 초보 수행자들에게 이러한 경험은 멋진 촉발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아스트랄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에 제시된 방법들은 바로 이러한 것들입니다.

아스트랄-멘탈 여행의 또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아스트랄체 전체가 아니라 우리의 의식만 이동하는 ‘의식 전이’입니다. 종종 듣게 되는 질문 중 하나가 “나는 아스트랄 프로젝션을 하다가 누가 건드려도 아무렇지도 않던데, 바르돈은 웬 호들갑인가요? 잘못 건드리면 은선이 끊어져 진짜로 육체적 죽음을 맞는다는 건 허풍 아닌가요?” 입니다. 이런! “나는 진짜 아스트랄 여행을 못해 봤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인데… 어쨌든 이 방법은 참 매력적이고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할 수 있긴 합니다만, 할 수 있는 일이 한정적입니다. 우리가 만나서 직접 얼굴을 맞대고 할 수 있는 일과 전화로 할 수 있는 일이 다르듯 말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많은 궁금증이 풀리셨기를 바라며…



– 까페 아르고나우트에서, ‘마법아티클’ 칼럼 발췌 (정은주, 좋은글방 대표)



본 칼럼은 네이버 까페 ‘아르고나우트’에서 연재된 칼럼으로써, 오컬트를 공부하고 수행하는 여러분을 위해 준비된 것입니다. 게시된 글을 퍼갈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셔야 합니다. 원문을 그대로 또는 수정 및 가감하여 강의 및 저작에 이용하는 경우 법적으로 대응할 수 있음을 분명히 밝힙니다.

[칼럼] 헤르메스학은 폐기처분된 듣보잡인가?


“헤르메스학은 폐기처분된 형이상학이며, 잘못 수행하면 몸도 마음도 망가진다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ㅇㅇ이라는 분이 그러는데, 헤르메스학 입문은 미국에서는 시대에 뒤떨어진 듣보잡 취급을 받는다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 글은 몇 분이 쪽지로 보내오신 유사한 몇몇 질문에 대한 공개 답글입니다.
그런 이야기들이 오고가기도 하는군요. 저희가 다른 오컬트 그룹에 대한 관심이 적어 리뷰를 하는 일이 거의 없기에 미처 알지 못하던 내용입니다. 안다고 해도 그다지 흥미를 끄는 대목은 아닙니다만.^^ 진지하게 고민하고 질문하신 회원분들께는 답을 드려야겠기에 이 글을 씁니다.

헤르메스학이 절대 진리입니까?

우선, 오컬트에 호의를 가진 사람이 헤르메스학 자체에 대한 비판 또는 비난을 한다면 이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조금 더 공부가 필요하겠지요. 이 문제에 대해 간단히 말씀 드리겠습니다.

전 세계를 통틀어 오컬트, 비의적 학문, 신비주의는 물론이고 철학과 종교와 문화 전반의 토대를 이루는 세 가지 뿌리가 있습니다. 이집트의 비의적 학문인 ‘헤르메스학’, 근동(유대)의 비의적 학문인 ‘카발라’, 힌두의 ‘요가’. 이들 체계는 우주의 창조와 구성 원리, 소우주인 인간의 진면목, 에너지(힘)를 다루어 우주 전체의 에너지, 즉 신성을 체득하고 하나가 되기 위한 훈련방법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들 체계에서 다양한 가지가 뻗어나가 세계 각지에서 문명이라는 꽃을 피웠습니다.

그러나 각 체계의 가장 기본이 되는 고대 체계를 조금만 공부해 보면, 이들 세 체계가 서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훈련법(methods)에서 힘의 방향과 관련해서만 차이를 갖고 있음을 금방 알게 됩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서로 교류한 흔적도 보입니다. 아무튼 세상의 모든 정신적 체계는 이 뿌리에서 뻗어나온 가지(지나친 과장이 아닙니다.)이므로, 어떤 가지를 선택하든 오롯이 진지하게 탐구하는 경우 그 뿌리에 가 닿게 됩니다. 그리고 비의(mystics)를 만나게 됩니다.

따라서 그 비의에 이르러 삶의 비밀을 알게 되는 길에는 헤르메스학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카발라에서 뻗어나온 종교와 문화와 학문도 있고, 요가에서 뻗어나온 종교와 문화와 학문도 있습니다. 제도권 종교 체계 안에서 신실한 믿음으로 그곳에 가 닿는 분도 있고, 심지어 물리학을 통해 이르는 분도 있으며, 인문학과 예술을 통해, 평범한 삶의 고통을 극복한 뒤에 이르는 분도 있습니다. 아마도, 모든 인류에게 기회를 주고자 한 신의 섭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한편 이러한 고대의 비의가 시대착오적이라거나 용도 폐기되었다는 말을 한다면, 단순하게 일반적 학문의 관점에서 보자면 고전이 갖는 힘을 모르는 무지함이고, 오컬트적으로 말하자면 스승과 제자의 관계와 구전을 통해 손상 없이 전해지던 고대의 비의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말하자면 입문을 해보지 못한 탓일 것입니다. 어떤 분이 질문하신 것처럼, 아스트랄계를 비롯한 상위 세계의 존재들이 가르침을 전수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 존재와 소통할 능력이 없으면 배울 수 없지만, 이 또한 고대부터 내려온 비의의 전수 방식입니다. 

바르돈 체계는 다양한 방법론 체계 중 하나, 즉 선택사항입니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어떤 체계를 만날지는, 윤회를 거듭하며 만들어진 영의 수준과 타고난 혼의 특성, 육체를 입고 태어난 공동체의 환경과 사회화에 따라 결정될 것입니다. 기회의 많고 적음과 깊이는 이 세 가지 요인에 따라 결정될 것이고요. 그러나 진지하고 성실하게 숙고하며 파고들어가는 것은 각자의 자유의지입니다. 여러 가지 기회 중에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도 각자의 선택사항입니다. <헤르메스학 입문>이라는 책에 수록된 바르돈 체계는 이러한 선택사항 중 하나입니다. 방법론과 원리를 구별하지 못하는 바보가 아니라면, 이 방법론을 유일한 진리라고 말할 사람은 없습니다. 바르돈 자신도, 이 책에서 힌두 체계나 카발라 체계와 비교하며 이론과 실천을 정리했습니다.

바르돈의 체계는 각자의 선택사항입니다. 단, 두리뭉실한 것을 견디지 못하고 명료함을 좋아하는 특성의 혼을 가진 분들에게 몹시 적당합니다. 원리를 탐구해야 직성이 풀리는 분들은 감탄하게 될 것입니다. 성실하게 정진하는 것이 타고남을 이긴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높은 성취를 이룰 수 있습니다. 인문학이나 물리학을 공부하면서 근원이 궁금해 찾고 또 찾았던 분들이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체계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거나 몸과 마음이 망가진다는 이야기에 대해서도 한 마디.

어떤 수행 체계는 그 체계를 만든 사람이 아카샤에 등록을 해 놓은 ‘상승 경로’입니다. 바로 이 때문에 어떤 체계로 수행을 시작하면 에너지가 작동되고 길 안내가 시작되는 것이지요. 많은 사람이 수행을 하면 할수록, 그 경로는 잘 닦여진 길이 됩니다. 홀로 어떤 경로를 개척하려면 잘 닦여진 체계를 통해 높은 경지에 이르른 다음에야 가능합니다. 또 다른 경로의 위험을 예상도 하고 극복하면서 길을 닦을 수 있으니까요. 초심자에게는 해당되지도 않을 뿐더러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바르돈 체계는 검증을 거쳐 확립된 것입니다. 바르돈이 수십 년 동안 제자들을 훈련시키며 검증된 것을 책으로 썼으니까요. 물론 그 검증과정을 제가 직접 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체계를 직접 몸으로 검증했습니다. 또한 아노니미를 운영하며 실증적으로 검증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영/혼/육을 가진 개인적 특성에 따라 어떤 결과가 도출되는지 데이터가 쌓이고 있습니다. 이 데이터는 앞으로 이 체계로 수행할 결심을 하시는 분들께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바르돈과 그의 제자들이 닦아 놓은 길의 덕을 보는 셈입니다.

한편 다른 수행 체계를 전전하다가 찾아오신 분들의 경우 몸과 마음이 망가진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 결과는 그 체계 자체의 문제는 아닌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완벽한 지식이나 경험 없이 이것저것 섞어 해본 경우 문제가 발생해도 누구를 탓할 수 없겠지요. 혹 그 체계 자체의 문제라 하더라도 그것은 오롯이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데 대한 결과일 뿐입니다. 바르돈 체계는 독학을 하시는 분들도 위험하지 않게 잘 구성되어 있습니다. 다만 독학하는 경우 오래 걸립니다. 지루해져서 중도 포기하는 분들이 많을 뿐더러, 각 단계마다 고도의 장애물들을 뛰어 넘어야 합니다. 강력한 결과치가 산출되니, 이 체계를 정립한 사람으로서는 당연한 일이었겠죠.

출판사가 왜?

사실, 무엇에 끌리며 무엇을 선택하는지는 각자 타고난 깜냥에 좌우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은 각자의 의지가 작용합니다. 헤르메스학은, 마법은, 오컬트는, 타고난 깜냥을 이겨내는 의지를 중시합니다. 이것이 카르마를 극복하는 방법입니다.

밥그릇을 뺏길까 두려워 비난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 사실, 많은 분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고민하던 것을 명료하게 정리해준 이 책에 찬사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마케팅 측면에서는 많은 분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분서갱유 하겠다는 격한 반응을 보인 분도 있다면서요? 각자 알아서 판단할 일입니다. 저는 서양의 철학과 신화를 공부하다가 이 책을 만나게 되었고, 부정확한 자투리 번역을 들고 전전긍긍하는 분들이 안타까워 번역과 출판을 결심했습니다. 오랫동안 광고 홍보 쪽에서 일해온 경험 상, 마케팅 면에서는 말도 되지 않는 일을 시작한 것이지요.

강좌를 개설한 데 대해서도 말이 좀 있다면서요? 저도 별로 탐탁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저는 물질계에도 아스트랄계에도 스승이 계시고, 그러니 저 혼자 수행하는 것이 편합니다. 그러나 일반 분야의 책이 아닌 오컬트 책을 출판하는 경우,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검증된 내용을 텍스트로 대중에게 알리는 일과, 그것을 다시 검증하는 일이 맥을 같이 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말입니다. 아마도 지난 시절 정신세계사-정신세계원이 역시, 경제적으로 타당성이 없는 이같은 일을 진행한 것도 같은 맥락이셨으리라 짐작합니다. 

앞서도 이야기했듯, 각양각색의 사람이 다양한 가치 판단과 욕구를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타고난 깜냥대로 말이지요. 그러나 솔직하게 말해서 헤르메스학이나 바르돈 체계를 선택하는 사람은 많을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대놓고 말하자면 장사하실 분들은 손댈 일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좋은글방이 수업료를 받고 강좌를 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겠습니다만, 경제적 문제만 놓고 볼 때 강좌 특히 아노니미 수업료는 훈련 장소 유지비도 대지 못합니다. 사업이나 마케팅 일을 해보신 분들은 바로 알아차리시더군요. 만성 적자가 불 보듯 뻔하다는 것을. 그러니, 밥그릇과 관련한 두려움으로 자신의 무지를 만천하에 드러내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마시길. 그대들이 뜻하는 그곳에 들어설 고객과 겹칠 일이 없으니! (좀 흥분했습니다. 하하하)

깜냥대로, 그러나 자신의 의지에 따라!

어쨌든, 그렇습니다. 선택은 각자의 깜냥대로이며, 어떤 분야에서 어떻게 정진할 것인지는 각자의 의지대로 할 일입니다. 단! 각자 깜냥대로 정진하는 다른 분들을 비난하지는 말 일입니다. 반도체 공장의 조립라인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있다고 칩시다. 또 이론 물리학이나 열역학 연구에 골몰하는 물리학자가 있다고 칩시다. 이 경우 둘의 삶과 일 자체의 옳고 그름은 따질 수 없습니다. 질문 자체가 어리석지요. 그러나 각자의 일에 대한 성실함과 성취에 대해서는 가치 판단이 가능합니다. 반도체 공장 조립라인의 노동자가 이론물리학자를 가리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을 한다고 손가락질을 한다면? 물리학자가 노동자를 가리키며 하잘것없는 일을 한다고 손가락질을 한다면? 비웃음을 살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떤 아이템을 가리키며 근본도 없는 심리학 분야의 아류 아이템이라고 비난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처음 접해서 성실하게 탐구하다가 ‘근원의 빛’과 만날 분들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컬트의 대중성?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잣대는 그것이 아닙니다

이와 관련해 반드시 짚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오컬트 학문에서 ‘대중성’과 관련한 이야기로 넘어가기 때문입니다.

오컬트occult라는 단어는 숨겨진, 소수의 라는 뜻으로, 감추어진 비의라는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대중적 오컬트’라는 말 자체가 모순을 품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인간은, 아무리 구체적이거나 물질적인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해도, 너나 할 것 없이 우주와 신과 삶의 비밀에 대해 가끔씩이라도 고민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각자 깜냥대로 어디에선가 그 욕구를 풉니다. 그래서 저잣거리의 점집부터 길거리 마술사, 신비주의 문화, 각종 오컬트 상징을 동원한 예술, 사이비 종교에 이르기까지, 대중적 오컬트가 가능해집니다. 인간의 욕구 저 밑바닥에 있는 오컽트 욕구가 꿈틀거리기 때문이죠.

대중적 오컬트는 딱히 오늘날에만 득세한 ‘트랜드’가 아닙니다. 고대부터 오늘날까지, 동양과 서양 모두, 동서고금에 걸쳐 늘 있어온 일입니다. 엘리트주의와 대중성은 시대적 흐름, 조류에 따라 변증법적으로 ‘양-음-합’의 대세를 가로지르며 발전할 수는 있어도, 결코 한쪽만 존재한 적은 없습니다. 한쪽이 사라지면 다른 한쪽도 존재기반을 잃기 때문입니다.

또한 동서고금에 걸쳐 늘 존재한 것은, 두 영역 모두 ‘제대로’도 있고 ‘사기꾼’도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가치 판단의 대상입니다. 위대한 마법사들이 쓴 대부분의 마법서 서문에는 거짓 마법사와 협잡꾼이 신성한 학문인 마법이라는 이름을 더럽히고 있다고 통탄합니다. 문화비평이나 인류학 연구서에는 인간의 오컬트 욕구에 편승해 대중을 현혹하다 사라진 오컬트 대중문화와 관련한 대목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어디 속할 것이냐?

타고난 깜냥대로입니다. 힌두 문화권의 카스트제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우리는 태어나기 전, 영의 수준과 혼의 특성과 육체적 인자를 부여받아 태어납니다. 그러나 타고난 깜냥의 틀을 벗어나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특권, ‘자유의지’입니다.

단순하게 기능적으로 빵 굽는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 보죠. 처음에는 그저 먹고 살기 위해 주어진 레시피에 따라 빵을 굽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렇게 빵을 굽다가 마는 사람도 있고, 기능적으로 어떤 경지에 이르러 달인이 되는 사람도 있고, 밀가루와 물의 양과 불의 온도에 대한 탐구를 거쳐 물질의 속성을 터득하는 장인이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빵굽는 일을 하는 것은 육체적 환경 인자로 결정된 카르마겠지요. 일에 임하는 태도나 어떤 식으로 일하기를 좋아하는지는 혼에 부여된 특성이자 카르마겠지요. 우주의 에너지들이 충동질하는대로 타고난 특성에 따를지 말지는 개인의 의지입니다. 그것에 따라 각자의 불멸하는 영이 갖게 될 카르마가 결정되겠지요.

쪽지로 질문하신 분들께 답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내색은 안했지만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던 회원님들께도 실마리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건투를 빌며, 그리고 신의 섭리가 함께하시길!

P.S. 아 참, 이런 말투를 보고 종교집단이라고 비난하는 분들도 있다면서요? 하하하.
마법, 헤르메스학, 카발라, 요가, 그밖에 타로나 점성학 같은 오컬트 분야를 공부하고 수행하면서 우주의 절대법칙, 즉 신의 섭리에 대한 경외심이 깊어지지 않는 경우, 그건 가짜를 판가름하는 기준입니다!



– 까페 아르고나우트에서, ‘마법아티클’ 칼럼 발췌 (정은주, 좋은글방 대표)



본 칼럼은 네이버 까페 ‘아르고나우트’에서 연재된 칼럼으로써, 오컬트를 공부하고 수행하는 여러분을 위해 준비된 것입니다. 게시된 글을 퍼갈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셔야 합니다. 원문을 그대로 또는 수정 및 가감하여 강의 및 저작에 이용하는 경우 법적으로 대응할 수 있음을 분명히 밝힙니다.

[칼럼] 명상록 : 바르돈의 체계가 영>혼>육 순서대로 수행하는 이유


헤르메스학은 신성마법의 핵심으로서, 신성의 에너지는 ‘영>혼>육’의 순서로 우리에게 영향을 가합니다. 따라서 수행 순서도 동일합니다.

우리의 영은 신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우리의 3중 체계 중 조밀도가 가장 높은 몸입니다. 따라서 신성 에너지를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밀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의 수준은 제각각 다릅니다. 그것이 바로 각자의  성숙도입니다. 자신의 의지를 통해, 신의 섭리에 따라 영의 성숙도를 바꾸는 작업이 바로 헤르메스학을 토대로 하는 마법입니다.

영(멘탈체)은 혼(아스트랄체)에 질료를 제공해 생존과 상태를 결정합니다. 물론 영적 성숙도에 따라 혼에게 수준이 다른 질료를 제공합니다. 이때 질료는 빛과 진동으로서 영의 수준에 따라 각각 다른 조밀도를 갖게 되며, 감정이라는 형태를 띱니다. 아스트랄체는 이렇게 형성된 조밀도에 따라 육체에 질료를 제공하며, 여기서 물질적 몸의 수준이 결정됩니다. 

바르돈이 각 단계별로 영>혼>육의 구조로 훈련 체계를 짠 것은 이러한 원리에 따른 것입니다.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라는 정언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나 우리의 3중의 몸은 서로에게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아스트랄 매트릭스와 멘탈 메트릭스로 3중의 몸이 연결되어 진동을 통해 조밀도에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때는 순서가 상관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의 몸에 치중하지 말고 3중의 몸이 균형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훈련할 것을 바르돈은 강조하고 또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훈련 초기 단계에 우리는 육체만을 지각하기 때문에, 멘탈체부터 훈련하는 체계는 속도가 느립니다. 영 훈련이 어려운 이유입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수준에 이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육체를 훈련하여 육체의 진동폭을 바꿔 혼과 영에 영향력을 미치는 체계도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앞에 이야기한 것처럼, 지각할 수 있는 육체의 진동을 이용해 아스트랄 매트릭스를 통해 아스트랄체의 진동을 바꾸고, 같은 과정을 거쳐 멘탈체의 진동에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초기에 신성마법의 원리를 소화하기 어려운 경우 이 방법을 쓰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어찌됐든, 바르돈의 체계는 물론, 헤르메스학에 기초를 두고 있는 모든 체계는 멘탈체의 밀도와 진동수를 바꾸는 작업부터 시작합니다. 그래서 바르돈이 자신만만하게 밝히듯, 이 체계로 훈련한 마법사는 영적 성숙도를 갖추어 결코 헛된 길로 나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 까페 아르고나우트에서, ‘마법아티클’ 칼럼 발췌 (정은주, 좋은글방 대표)



본 칼럼은 네이버 까페 ‘아르고나우트’에서 연재된 칼럼으로써, 오컬트를 공부하고 수행하는 여러분을 위해 준비된 것입니다. 게시된 글을 퍼갈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셔야 합니다. 원문을 그대로 또는 수정 및 가감하여 강의 및 저작에 이용하는 경우 법적으로 대응할 수 있음을 분명히 밝힙니다.

[칼럼] “호흡 통제의 힘을 느껴라!”

좋은글방에서 2010년 봄에 출간한 <아스트랄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Astral Projection, Edain McCoy지음, 박재민 욺김)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정말 재미있고 친절하게 아스트랄 프로젝션의 비법을 소개하고 있는데요.

아스트랄 프로젝션 준비 11단계 중 호흡 통제 부분입니다.

멕코이. 역시 친절한 마법사입니다. 그래서 초보자에게 더할 나위 없는 안내서입니다.



호흡 통제의 힘을 느껴라!
모든 명상 훈련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을 꼽으라면 호흡 통제를 들 수 있다. 동아시아나 인도의 신비주의 전통에서 호흡 통제는 고도의 영적 기예에 도달하는 비법이다. 이 비법을 익히 기 위해서는, 자기 호흡의 자연스러운 리듬을 따르면서 명상할 때처럼 깊은 변위 상태에 들어가야 한다.

오늘날에 와서야 적절한 호흡이 정신적 자극을 증진시키고 그 밖에 건강에도 유익하다는 사실이 재발견되고 있다. 아마 이 기법에 정통한 몇몇 사람들이 적절한 응용 방법을 발견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요즘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산소 바에 들러 최근 회사에 불시 단속이 들이닥쳤다는 얘기를 나누면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것이 유행이다. 프로 운동선수들은 호흡 코치를 구하느라 난리다. 호흡 코치는 호흡 방법을 바꿔 몸이 최고의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비법을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총체적 피트니스 분야의 강사인 팸 그라우트Pam Grout의 저서 『호흡의 힘을 통해 신진대사에 시동을 걸자Jump Start Your Metabolism with the power of Breath』 (스킬패스, 1997)에서는 적당한 심호흡을 배우기만 해도 환상적으로 체중을 감량할 수 있다고 호언한다.

실생활에 유익한지 아닌지 여부를 떠나, 올바른 호흡은 아스트랄 프로젝션이라는 현재 목표를 이루는 데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초보자들의 경우 의식 변위 과정에서 발전이 더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잘못된 호흡 때문이다. 호흡이란 자연스러운 것이지 누가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이런 개념은 우스꽝스럽게 들릴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건강한 호흡은 가슴에서부터 비롯되지 않는다. 횡격막으로부터 자연스럽고 깊게 들이쉬고 내쉬는 것이 건강한 호흡인 것이다. 횡격막은 허파 아래에 길게 가로놓여 있는 근육으로, 허파를 팽창시키고 수축시키는 일을 담당한다. 따라서 깊은 호흡을 할 때 우리가 움직이고 있는 것은 허파 자체가 아니라 횡격막 근육인 것이다.

지금 잠시 동안 자신의 호흡 방식을 관찰해 보자. 숨을 쉴 때 횡격막 부분이 움직이는가, 그렇지 않으면 호흡이 얕고 위쪽 가슴에 집중되는가? 좀더 천천히, 깊이 숨을 들이마셔 보자. 횡경막 부근의 중간부가 팽창을 주도하고 있는지, 가슴이 부자연스럽게 팽창되는지 살펴 보라. 어깨의 동작은 어떠한가? 서 있거나 앉은 자세에서 숨을 쉴 때마다 어깨가 오르락내리락하면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 숨쉴 때 어깨는 전혀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

유치원에서부터 우리는 이렇게 헉헉거리면서 깊은 호흡을 한다고 잘못 배웠다. 아이들에게 깊이 숨을 쉬어보라고 하면, 가슴을 부풀리고 뺨에 공기를 잔뜩 넣어 볼록하게 하면서 허세를 부린다. 전혀 쓸데없는 곳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잘못된 습관에 기댄 채 어른이 되면 그 허세는 점점 커진다. 남자든 여자든 숨쉴 때 배를 납작하게 줄어들게 하면서 가슴은 강조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사실 횡격막 근육이 강해지면 배 근육을 나오게 하지 않고 끌어당겨준다.

평평한 바닥에 등을 대고 누우면 대부분 제대로 숨을 쉴 것이다. 자신이 횡격막을 통해 숨을 쉬는지 확인하고 싶다면 딱딱한 바닥에 누워 배 윗부분이 어떻게 되는지 살펴 보라. 가슴이 아닌 배의 윗부분이 오르락내리락 할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부분 수면 중에 제대로 호흡을 한다. 질병을 앓고 있거나 몸에 이상이 있지 않은 이상 모든 사람이 제대로 숨을 쉬며 잔다. 잠자는 사람이 어떻게 호흡하는지를 관찰해보라. 가슴이 아니라 태양신경총을 통해 천천히 깊게 숨을 들이마시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전문 가수들도 올바른 호흡법을 알고 있다. 노래를 마음 먹은대로 조절하고 힘있는 목소리를 만들려면 반드시 횡경막 호흡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명상을 통해 의식 변위를 하려고 하는데 집중이 잘 안 되는 경우, 숨을 쉴 때마다 호흡 수를 헤아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숨을 내쉬면서 이 방법을 시도한 다음, 들이쉬면서도 같은 방법을 반복하고 차이를 느껴보라.

오컬트 수행에서 깊은 호흡을 훈련할 때는, 코를 통해 들이쉬고 입을 통해 내쉬는 게 기본이다. 인도나 동아시아의 오컬트 훈련에서는 이 호흡법을 보편적으로 사용한다. 그들은 이 호흡법을 통해 몸 전체에 에너지의 흐름이 거침없이 관통하게 만들고, 아스트랄 프로젝션 같은 훈련에 적용한다. 이런 방식의 호흡은 건강에도 좋다. 코 안의 모낭과 막이 공기 속의 불순물을 걸러주고 공기를 따뜻하게 덥혀서 허파로 보내기 때문이다.

호흡법을 바꿔가면서 호흡이 의식에 미치는 영향을 실험해볼 수도 있다. 여기서 ‘호흡법’이란 들숨, 멈춤, 날숨, 다시 멈춤으로 이어지는 호흡의 ‘박자’beat와 횟수를 말한다. 깨어있고 이완된 상태에서 우리는 2박자로 들이쉬고 반 박자 멈추고, 다시 2박자로 내쉰 다음 반 박자 멈추고 다시 들이쉬는 방식으로 숨을 쉰다.

박자마다 시간 간격이 특별히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다들 그것이 무엇인지 대강 감으로 알고 있다. 무대나 텔레비전 스크립트의 무대 지시사항을 보면, 배우에게 대사나 연기 사이사이의 시간 간격을 나타낼 때 ‘비트’ 즉 박자라는 용어를 쓴다. 특히 코미디 같이 한방에 웃겨야 하는 경우 타이밍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비트는 아주 정확하게 맞아 떨어져야 한다. 내 기준에서 1비트는 1초보다 짧다고 생각하지만, 1초 반 정도까지는 정상 범위 내에 있다.

일반적인 명상 호흡법에는 5박자 동안 들이쉬고 3박자 멈추고, 다시 5박자 내쉬고 3박자 멈추는 것이 있다. 4-1-4-1 방식도 해봤는데, 영적 세계를 탐험하는 아스트랄 프로젝션에 활용하기 매우 좋은 박자였다. 3-1-3-1이나 2-2-2-2 방식은 마음속에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 아스트랄 탐험에 대한 기대감을 부풀게 하는 박자다. 특히 3-1-3-1은 요정이나 존재의 기본 구성요소가 살고 있는 원소 왕국을 탐험할 때 나타나는 호흡법이다. 한편 2-2-2-2는 오래된 아스트랄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마음 속 한 장면 안으로 들어갈 때 쓰인다.

아스트랄 프로젝션에 깊이 빠지면 빠질수록 호흡법의 맥락을 놓치게 된다. 대신 아스트랄계에서 무엇을 하는지에 따라 알아서 균형을 찾는다. 따라서 아스트랄 프로젝션의 전체 과정을 거치는 동안 호흡을 어떻게 할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전에 명상에 대한 책을 읽다가 호흡법을 가지고 실험하지 말라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호흡법은 사이킥 암호 같은 것이어서 원하지 않는 에너지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필요 이상으로 불안을 조장하는 사상은 오컬티즘에 발붙일 자리가 없어져야 한다. 대부분의 고대 문화는 호흡이 신성한 것이라고 가르쳤다. 부족 주술사의 손아귀에 들어간 호흡은 생명을 유지하고 보존하는 수단이었다. 작동될 암호가 있다면 오직 자기 내부에 존재하는 암호뿐이다. 그래서 아스트랄 프로젝션을 배우겠다는 자신의 의지와 제대로 공명하는 호흡 방식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실험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현재 호흡법이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더 좋은 것으로 바꾸면 그만이다.

정상적인 깊은 호흡과, 활용을 위해 선택한 호흡법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유념하라. 이 둘은 개념 자체가 다르다. 정상적인 깊은 호흡은 횡격막을 통한 심호흡으로 의식 변위를 잘 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전문적인 호흡법은 많은 수행가들에게 유용하기는 하지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 특히 서양인들에게는 호흡법이 방해가 되는 경우가 많다. 천식이나 호흡기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더더욱 어렵다고 느낄 것이다.

– <아스트랄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 中



– 까페 아르고나우트에서, S.S. 칼럼 발췌 (정은주, 좋은글방 대표)



본 칼럼은 네이버 까페 ‘아르고나우트’에서 연재된 칼럼으로써, 오컬트를 공부하고 수행하는 여러분을 위해 준비된 것입니다. 게시된 글을 퍼갈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셔야 합니다. 원문을 그대로 또는 수정 및 가감하여 강의 및 저작에 이용하는 경우 법적으로 대응할 수 있음을 분명히 밝힙니다.

[칼럼] 10세피로트와 32경로



카발라라는 학문은 배워도 배워도 여전히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카발라는 우리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세계 너머의 원천과 원리에 대해 생각하는 방법을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하나에 집착하다 보면 그 하나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전체를 볼 수 있으면, 하나를 알면 열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이온 포춘은 이해가 가는 부분까지 놓아두고 다른 것이 다른 것을 설명할 수 있도록 전체를 파악하라고 강조합니다. 카발라를 공부하는 우리 역시, 이 사실을 잊으면 안되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카발라의 개요를 설명하는 두 번의 강의 모두, 전체를 보는 방법과 공부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지난 강의도 그랬죠? 이번 강의에서는 카발라의 전체 개요를 파악하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그 열쇠는 ‘그림 그리기’입니다. 카발라라는 학문은 대우주의 창조 원리와 소우주의 진보 경로를 단 하나의 다이어그램으로 표현합니다. 카발라 생명나무가 그것입니다. ‘그림’이란 말이지요!
카발라를 공부하는 경우 가장 일반적으로 접하게 되는 카발라 생명나무는 다음과 같습니다. (여러분은 이 그림을 적어도 50번씩은 그려서, 아주 익숙하게 그릴 수 있어야 합니다. 아노니미 학생들은, 이 과제를 ‘나무 심기’라고 불렀답니다.)
 
<그림1> 카발라 생명나무

자, 이 그림부터 살펴 봅시다. 우선 열 개의 구체(Sphere 공 모양이라는 말입니다)가 있고, 그 구체들을 연결하는 길이 있지요. 히브리어 알파벳을 읽을 줄 아는 분은, 각 구체 안에 적힌 이름을 읽어 보세요. 히브리어 밑에 음역된 영어가 있으니, 읽을 줄 몰라도 실망할 필요 없습니다.
 
이왕이면, 히브리어 알파벳 정도는 익혀 두면 좋습니다. 의식마법(ritual magic)에서 쓰는 신의 이름이나 주문 중에는 히브리어가 대다수를 차지합니다. 의식 마법이 카발라 개념을 토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이죠. 영어에 신성한 힘이 있다고 영어로 주문을 외워야 한다고 떠드는 창피한 분들도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 힘의 원천은 히브리어로 알려져 있는 ‘신의 이름’이랍니다. 나머지는 어떤 언어로 해도 아무 상관 없습니다. 히브리어 알파벳을 익혀 두면, 신의 이름(신성 명칭)을 제대로 발음할 수 있겠지요? 바르돈의 세 번째 저서는 ‘카발라 마법’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어떤 ‘음’이 어떤 파동의 에너지와 공명하며, 그것이 어떻게 하여 ‘산도 옮길 만한’ 힘을 발휘하게 되는지 알려주는 책입니다. 히브리어로 된 신의 이름은 이러한 원리로 작동됩니다. 물론, 의식 마법에서 쓰는 각 신은 카발라 생명나무의 열 구체, 즉 10세피로트에 상응합니다. 뿐만 아니라, 인류가 이름 붙여 섬기는 모든 신은 모두 이 생명나무 위 10세피로트에 상응합니다. 왜냐 하면, 인류가 이름 붙여 섬기는 신들은 맨 첫 근원인 ‘무한자=아카샤=근원’의 ‘모든 것’이 속성별로 차례대로 드러난 하나의 단계이며, 그 에너지의 순수 속성 자체이며, 하나의 진화 단계이며, 따라서 힘의 위계를 나타내는 수직적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열 개의 구체를 ‘10세피로트’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열 개를 통틀어 말할 때는 히브리어로 ‘세피로트’라는 복수를 쓰고, 하나의 구체를 가리킬 때는 ‘세피라’라는 단수를 씁니다. (이왕 알파벳을 공부하는 김에, 히브리어에서 단수나 복수 개념이 어떻게 쓰이는지도 알아보세요. 특히 성서의 정확한 개념을 파악하고 싶은 분들은 꼭 필요하므로 반드시 알아두셔야 합니다.) 각 세피라의 명칭은, 어차피 로마자 표기 역시 음역이니, 저는 그냥 한글 음역만 쓰겠습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각 세피라는 절대 음(-), 아카샤가 현현하는 단계이자 (따라서) 에너지의 위계이므로 수직적으로 배열되어 있습니다. 지난 강의에서 설명한 것을 돌아보겠습니다. 현현의 단계란, 수원(水原)에서 솟아난 물줄기가 흐르고 흐르면서 거대한 강을 이루는 과정에 빗댈 수 있습니다. 하나의 수원에서 연속적으로 흐르는 물줄기에, 우리는 무슨 개울, 무슨 천, 무슨 강이라고 이름을 붙입니다. 같은 물줄기여서 물이라는 보편적 속성은 같이하지만, 단계에 따라 물줄기의 양상이 다르고 따라서 물로서의 속성 중 주로 드러나는 것도 다릅니다. 개울과 개천과 강은 다르지 않습니까? 그뿐인가요? 같은 강이라도 상류와 하류는 물의 양도 속도도 다릅니다. 이 비유는 많은 점을 깨닫게 해줍니다. 그러나 양이나 속도를 나타내는 개념은 아닙니다. 에너지가 현현하여 진화하는 단계는 에너지의 진동 수와 폭의 차이입니다. 자, 물줄기는 점점 넓고 깊어집니다. 또한 주변의 여러가지 물질을 쓸어 담아 탁해집니다. 그러나 그 정도를 열 개로, 스무 개로 딱 잘라 말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쪼개도 쪼개도 모자라는 수많은 스펙트럼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지점부터 어느 지점까지는 내린천이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는 소양강입니다. 각 세피라는 이렇게 수많은 스펙트럼을 하나의 속성으로 묶는 특정 ‘영역’입니다. 무슨 기준으로 묶느냐구요? 그 비밀은 매트릭스에 있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설명하겠습니다.)
 
조금 더 엇비슷한 비유를 대자면, 각 세피라는 에너지의 흐름을 담는 그릇입니다. 하나의 그릇에 에너지 흐름이 흘러 들어 가득 차면 흘러 넘쳐 다음 그릇을 채우게 됩니다. 카발라 생명나무 다이어그램은, 모두 열 개의 그릇을 보여줍니다. 다시 말하면, 아카샤라는 에너지 덩어리가 현현의 과정을 시작하여 열 가지의 속성을 단계별로 드러내며 진화해 간다는 이야기지요. 이 역시 비유일 뿐입니다. 그릇에 집착하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이제, 이런 의문이 들겠지요? 열 개의 그릇을 다 채우고 난 에너지는 흐름을 멈추나요? 그것으로 우주의 생성과 진화는 끝인가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럴 리가 없지요. 마지막 단계인 말쿠(후)트는 현현의 마지막 단계로서, 모든 것을 품은 4극 자석입니다. 또 하나의 아카샤, 또 하나의 시작점인 케테르인 것이지요. 또 다른 창조-진화가 시작되는 겁니다. 거꾸로 이야기하자면, 하나의 세피라 안에는 또 다른 생명나무 다이어그램이 들어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아까 물줄기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여러 개의 스펙트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언급했습니다. 바로 이 뜻입니다.
 
이제 우리는 10세피로트가 창조 및 진화의 단계이며 에너지의 위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생명나무 다이어그램에 그 순서가 표시됩니다. <그림1>의 각 구체 안에 적힌 숫자가 그 순서입니다. 순서대로 따라가 보니, 다음과 같은 그림이 그려집니다. 이것을 ‘번개의 길’이라고 부릅니다. 창조 및 진화의 순서를 나타내는 그림이랍니다.


<그림2> 번개의 길

이제 열 개의 구체, 10세피로트를 바라보는 전체적 시각이 좀 잡혔나요? 각 세피라에 대한 각론은 수많은 자료와 책에 세세하게 적혀 있습니다. 그러한 책이나 자료를 볼 때도 하나에 집착하지 말고, 전체적인 시각을 견지해야 한다는 점,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시 <그림1>로 돌아가 봅시다. 이 그림에는 열 개의 구체를 연결하는 통로가 그려져 있습니다. 한 세피라에서 하나의 길만 나 있는 것이 아니지요? 서로를 연결하는 선은 모두 22개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경로(path)라고 부릅니다. 이 경로는 신성한 힘의 방출 통로입니다. 그러나 번개의 경로 이외에도 여러 가지 경로가 있지요? 각 세피라는 이처럼 여러 개의 경로를 통해 다른 세피라와 연관되며, 이 경로를 통해 다른 세피라와 균형을 유지합니다. 즉, 각 에너지는 서로 다른 속성을 가진 에너지와의 관계성 속에서 존재하고 있다는 말이지요. 경로는 그 관계성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사방으로 경로가 뻗어 있는, 무려 여덟 개의 경로가 뻗어 있는 티페레트는 말 그대로 균형의 세피라입니다. 모든 세피로트가 티페레트와의 관계성 속에서 균형을 잡고 있다는 뜻입니다.
한편, 헤르메틱 카발라에서 경로는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다이온 포춘은 ‘경로’를 ‘주관적’이라 규정하고, 이와 대비해 세피로트를 ‘객관적’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대우주적 관점에서 드러난 힘의 속성은 만물에 보편적으로 해당됩니다. 객관적이지요. 그러나 경로는 실천적 의미에서 전혀 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개별 영의 수준에 따라 성취할 수 있는 힘의 균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즉, 어떤 사람(영)은 아무런 힘의 균형을 이루지 못해 말쿠트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나 예소드 속성의 힘과 말쿠트 힘의 속성 사이의 힘의 균형을 성취한 사람은 말쿠트와 예소드를 잇는 32경로를 경험합니다. 그리고 히브리 랍비들이 32경로라고 이름 붙여 포함시킨 하나의 세리파, ‘예소드’를 맛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입문의 비밀입니다. 예를 들어, 말쿠트 단계에 입문한 입문자는 32번 경로, 31번 경로, 29번 경로를 경험하며, 각 경로의 문지방 수호자와 조우하게 되며, 이 경로를 통해 맞닿아 있는 세 개의 세피로트 언저리를 맛볼 수 있습니다. 각 세피라가 ‘영역’을 의미한다는 이야기, 앞서 언급했지요?
 
이와 같이 헤르메틱 카발라에서 32경로는 각 세피라를 잇는 ‘힘의 균형’이자, 이를 통해 성취하게 되는 힘의 단계(각 세피라)를 가리킵니다. 결국 각 사람(영)의 수준에 따른 주관적 개념이지요. 또한 말쿠트에서부터 위로 상승하는 통로이기도 합니다. 이 경로를 ‘뱀의 길’이라고 부릅니다. 그림이 여기 있습니다. 이 또한 비유입니다. 그러나 아주 실제적이고 실천적 비유입니다. 의식 상승을 해보신 분들은, 왜 하필 뱀인지 알 수 있을 거예요.

<그림3>뱀의 길

자,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을 겁니다. 번개 경로도 그렇고, 뱀의 길도 그렇고, 어째서 똑바로 직선으로 내려오거나 올라가지 않는 것인지! 이 지그재그는 무엇 때문에 필요한 것인지? 그 답은 첫 강의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강조해 왔던 우주보편법칙, 양극성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지난 강의에서 이야기했던 아카샤, 즉 아인-아인소프-아인소프오르의 3겹 구조를 기억하시나요? 일단 그 개념도를 살펴보겠습니다. 수평적 2차원 단면입니다.

<그림4> 아카샤 및 현현세계의 수평적 단면의 개념도



그리고 또 하나, 이와 연계되는 수직적 개념도가 있습니다.

<그림5> 아카샤 및 현현세계의 수직적 개념도


(이 두 그림을 만든 이는 제 스승이신 움브라님입니다. 여기서 여러분께 죄다 공개하기에는 아직 어려운 부분도 많고 복잡하기도 하여, 저 나름대로 소화하여 간략하게 새로 그린 것입니다.)

누누이 설명했듯이, 아카샤는 확장(+)과 수축(-)의 에너지가 하나로 통합(±)되어 있는 에너지 덩어리입니다. 우리의 지적 능력으로는 알 수 없기에, 그것의 현현물을 통해 미루어 짐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위에 설명한 카발라 생명나무 다이어그램은, 아카샤가 어떤 단계를 거쳐 현현-진화하면서 우주를 창조하는지 보여줍니다. 현현 단계, 즉 힘의 방출의 수직적인 구조인 것이지요. 현현세계에 대한 이 다이어그램은, 우리로서는 알 길 없는 ‘무’, 절대법칙의 세계, 아카샤에 대한 실마리를 던져 줍니다. 계곡물이든 개울물이든 개천이든 강이든 호수든 바다든 그 물을 한 바가지 떠서 겪어보면 ‘물’이라는 근본 속성을 알 수 있습니다. 수원에서 솟아오른 ‘물’이 무엇이었을지 짐작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이처럼, 현현한 세계는 그 근원인 에너지의 속성을 미루어 짐작하게 해준다는 말입니다.

한편, 수평적인 단면(그림4)은 단계와 위계라기 보다는, 여러 가지 속성의 에너지가 어떤 식으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통합되는지 판단하기 위한 개념도입니다. ‘아카샤’라는 근원의 동일 속성이 수직적 구조의 어디에나 적용되는 것입니다. 즉, 이 단면은 아카샤의 것이며 동시에 말쿠트의 것이기도 하다는 말입니다. 물론 에너지의 진동 수와 폭은 달라지겠지요. 우리가 아카샤의 빛(아인소프오르)을 통해 투시를 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아카샤의 어디나 현존함(편재) 덕분이라는 사실, 기억하시지요?
이렇게 하여 우리는 이 단면을 통해, 아카샤의 개념적 구조, 그리고 동시에 현현한 세계의 모든 층위에서 아카샤가 현존하는 방식을 알 수 있는 겁니다.

자, <그림4>를 봅시다. 우선 세 개의 살이 달린 바퀴가 돌아갑니다. <창조-유지-파괴> 라는 한 세트의 바퀴 둘이 있지요. 낮(선)-밤(악)의 각 세트에는 창조(+), 유지(±), 파괴(-)의 날개가 있습니다. <그림5>의 수직적 개념도에 나타낸 세 기둥은 곧 이 날개들입니다. 두 그림의 연관성이 희미하게 잡히시나요? 수직적 개념도에만 사로잡혀 있는 경우, 고정된 축으로 보이겠지만, 이렇게 살펴보면, 운동하고 있는 에너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렇죠? 이 날개를 돌리는 ‘흐름’이 바로 <아카샤의 빛 = 무한의 빛 = 아인소프오르> 입니다. 이때 아인소프오르를 움직이는 동력은 아카샤의 ‘의지’(아인소프)입니다. 즉, 아카샤의 의지에 따라, 에너지는 양/음양/음의 순서로 움직인다는 말이지요. 이 두 개의 바퀴를 꿰고 있는 축은 [‘다르마’=법=절대법칙}입니다. 이것이 곧 ‘아인’입니다. 이때 각 영의 개별적 다르마와 인종적 다르마가 겹쳐 있습니다.

각각을 지나 한 세트의 바퀴가 모두 돌면, 하나의 시대가 끝납니다. 이것이 곧 힌두 체계에서 말하는 ‘브라만의 한 호흡’인 것이지요. 이 한 호흡은 어떤 시대일 수도 있고, 어떤 세계일 수도 있습니다. 수직적 개념도를 함께 살펴보면 이해가 더 쉽겠습니다. [케테르>호크마>비나] 라는 한 호흡, 한 바퀴는 어떤 시대의 종말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 세계의 아득한 과거, 황금시대나 은의 시대 등등을 상정하는 분들은 그렇게 생각할 것이고요. 한편, 이 한 바퀴는 어떤 세계의 완성일 수도 있습니다. 진화의 단계는 순차적 시간의 흐름이라고 한정 지어 생각할 수 없으니까요. (공존한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근원과 가까운, 진화의 단계에서 각 단계이자 위계인 ‘4계’는 이런 식으로 생각해야 하는 개념입니다. (4계에 대해서는 <미스티컬 카발라>를 찾아 읽으시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단지, 이 세계와 그 다음에 순환 반복하는 또 다른 한 바퀴의 세계 사이에는 심연=베일이 가로막혀 있습니다. 이것이 곧 대우주의 매트릭스입니다.

이미 <미스티컬 카발라>를 열심히 읽으신 분 중에는 이렇게 질문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저 밤(악)의 바퀴는 또 무엇입니까? 클리포트입니까?”
네, 맞습니다. 아카샤 층위에서 본다면 잠재적 클리포트이고, 현현한 세계의 층위에서 본다면 클리포트입니다. (클리포트에 대해서는 <미스티컬 카발라>를 읽어보시면 되겠습니다.) 양극성은 우리 우주(세계)의 절대법칙입니다! 대립자를 통해 에너지의 운동과 변화가 가능해집니다!

한편, 바퀴의 각 날개에는 카르마가 매달려 있습니다. 인과의 법칙이지요. 바퀴가 돌아가면서, 이 카르마는 조금씩 닳아 소진됩니다. 한 바퀴가 모두 돌 때쯤이면 모두 소진됩니다. 이때, 하나의 영이 지닌 개별적 카르마와 집단적 카르마가 겹쳐 있습니다. 자, 이제 한 세계의 진화 과정이 조금 더 손에 잡힐 듯 합니까? 한 영의 진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진화를 시간적 개념(특히 우리 물질계의 시간 개념)으로 이해하면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림5>의 각 기둥이 무엇을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미스티컬 카발라>를 읽어보시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이 기둥을 휘감고 도는 흐름이 바로 아카샤의 빛, 아인소프오르 라는 사실은, 수평적 단면을 통해 알 수 있게 되었죠? 또한 각 삼각형=4계 사이의 베일에 대해서도 알 수 있게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보라색 점선이 각 단계의 세계 사이에 가로놓여 있지요? 이 대우주의 매트릭스는 4계(원인계/멘탈계/아스트랄계/물질계)를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개념입니다. 반드시 이해하시고 다음 강의를 들으셔야 합니다.

자, 앞서 이야기한 것을 보면, 압력=에너지의 밀도(진동)의 변화 과정에는 수없이 많은 스펙트럼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의 세피라 안에서도 다시 똑 같은 생명나무 다이어그램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도 이야기했습니다. <그림5>를 이런 시각에서 다시 살펴본 것이 <그림6>입니다.

<그림6> 압력의 변화 과정

원인적 에너지가 압력에 의해 확장 – 균형/유지 – 수축 과정을 거쳐 어떤 결과를 내는지, 즉 현현물을 낳는지 그 과정을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에너지의 밀도는 차례대로 낮아지며 그 수준은 수많은 스펙트럼으로 나눌 수 있는데, 각 세피라는 그 수많은 스펙트럼 중 하나의 국면으로 그룹핑된 것입니다. 각 국면은 하나의 속성으로 특징 지워지며, 각각 매트릭스를 통해 다른 것과 구별됩니다. 매트릭스가 무엇이라 했지요? 네, 4극 자석입니다. 그러나 하나의 진화 과정은 대우주의 완결적 4극 자석, 즉 ‘말쿠트’에 이르러 하나의 대 국면을 마무리 짓습니다. 그 사이를 4계라는 또 다른 개념의 베일(매트릭스)로 구분해 특징 지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를 들어 아스트랄계=예찌라계(엄밀히 말하면 앗시야계의 예찌라계)에는 수많은 구역이 존재합니다. 밀도가 낮아 물질계와 겹쳐 있는 구역이 있는가 하면, 매우 밀도가 높은 구역도 있습니다. 전혀 속성이 다른 구역들이 공존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구역은 아스트랄계 고유의 진동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의 매트릭스로 구별되는 하나의 국면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이러한 구분들은, 매트릭스의 실체를 아는 분들이 나눈 것이지요. 이러한 구분은 여러 측면에서 우리의 세계를 인식할 수 있게 해줍니다. 또한 대우주와 상응하는 소우주, 즉 우리 자신과 직결됩니다. 대우주의 모든 것, 모든 국면, 모든 상태가 우리 자신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카발라 강의는 여기서 마칩니다. 이 강의만으로 카발라를 모두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절대로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일단, 국내에 나와 있는 카발라 교과서로서는 <미스티컬 카발라>를 추천할 수밖에 없으니, 이 책의 세부적인 설명과 함께 이 강의를 읽으시면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헤르메스학, 마법, 타로, 점성학을 공부하는 분들은 카발라를 소홀히 하는 경우 겉핥기에 그칠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강의가 카발라 공부와 명상의 방향잡이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카발라라는 학문의 세계는 참 무궁무진합니다. 인용하는 응용 분야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 멋진 세계에 동참하는 분들이 많아지길 기대하며, 조금 더 자세한 세부 강의는 틈나는 대로, 가끔, 펼쳐 보겠습니다. 제가 아는 한 국내 최고의 카발리스트인 움브라님의 카발라 강의도 한 번 보채보겠습니다. 

다음 강의는 <헤르메스학 입문> 이론편의 물질계-육체 부분입니다. 이제 4계의 구분 원리를 이해했으니, 조금 쉽게 강의를 풀어나갈 수 있겠지요?



– 까페 아르고나우트에서, ‘오컬트마법강좌’ 칼럼 발췌 (정은주, 좋은글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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